[OSEN=런던, 이건 특파원] "그런데 왜 로만 아저씨는 잘하고 있던 조세 무리뉴를 버리고 잘하지도 못하는 그랜트 감독을 데려왔어요?". "얘야. 버린 게 아니란다. 더이상 일을 같이 하지 않기로 생각을 모은 것이지. 그리고 그랜트 감독이 실수를 했지만 잘해낼 것이란다". 필드 플레이어 유니폼에 골키퍼인 '체흐(CECH)'의 이름을 단 여섯 살짜리 딜런은 불만이 많았다. 멋지고 성적이 좋은 조세 무리뉴(45) 감독을 실업자로 만들어버린 구단주 아저씨가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성(姓)인 아브라모비치보다 이름인 로만 아저씨라 부른 딜런은 여섯 살 인생 첫 첼시 스타디움 투어에서 가이드 할아버지에게 불만을 쏟아내고 또 쏟아냈다. 가이드는 그런 딜런을 달래며 그랜트 감독이 어려운 시기이지만 잘 이겨내고 첼시를 우승으로 이끌 것이라고 설명을 거듭해야만 했다. 지난달 27일 기자가 참가했던 첼시 스타디움 투어 도중 나왔던 한 장면이다. 여섯 살짜리 꼬마 딜런의 불만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첼시의 아브람 그랜트(53) 감독은 그리 인기 있는 감독이 아니다. 이미 많은 팬들에게 '조만간 경질되어야 할 감독' 으로 낙인이 찍혀있는 상태다. 칼링컵 결승에서 토튼햄에 패배한 후에는 팬들에게 살해 협박을 받기도 했다. 이스라엘 출신인 그랜트 감독은 이스라엘에서 잔뼈가 굵었다. 18세 때인 1972년 하포엘 페타 티크바에서 유스팀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1986년 1군 팀 감독으로 승격됐다. 1990년과 1991년 토토컵에서 우승한 그는 92년 리그와 이스라엘컵에서 우승하며 이스라엘 내에서 명 지도자로 발돋움했다. 이후 그는 마카비 텔 아비브와 하포엘 하이파를 거쳤고 2002년 이스라엘 대표팀 수장을 맡았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예선에서 프랑스, 스위스에게 밀려 조 3위를 차지해 아쉽게 본선 진출에 실패했지만 이스라엘은 무패행진을 달리며 그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것 역시 그랜트 감독의 지도 덕분이었다. 이런 그가 유럽으로 옮긴 것은 지난 2006년 6월이다. 대표팀 감독 계약이 끝난 후 쉬고 있던 그가 포츠머스의 기술이사를 맡은 것. 해리 레드냅 감독과 함께 포츠머스를 이끌던 그랜트는 이듬해인 지난해 7월 첼시의 경기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이로부터 2달 후 그랜트 감독은 조세 무리뉴 감독의 후임으로 첼시의 지휘봉을 잡게 됐다. 여기에서부터 그랜트 감독의 고민은 시작됐다. 전임자가 엄청난 역량을 보여주었다면 후임자는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기가 상당히 힘들다. 그랜트 감독의 경우가 그랬다. 전임 감독이었던 조세 무리뉴는 실력과 화려한 언변, 준수한 외모 등을 모두 갖추고 세계 축구계를 쥐락펴락했던 인물이다. 선수들 중 세계적인 스타는 여러 명이 있는 반면 감독들 중 다양한 방면에서 대중에게 크게 어필했던 인물은 무리뉴 감독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단순히 성적뿐만 아니라 독설과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무리뉴의 행동 하나하나에 전 세계가 주목했던 것이다. 이런 무리뉴의 뒤를 이었으니 그랜트 감독으로서는 잘해야 본전인 것이다. 성적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좋다. 29경기에서 22승 2무 5패면 나쁘지 않다는 평가로는 부족하다. 그러나 맡고 있는 팀이 첼시이기에 평가절하는 피할 수가 없다. 존 테리, 디디에 드록바, 조 콜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을 가지고 아스날과 맨유의 치열한 선두 싸움을 반발짝 떨어져 있는 모습을 보는 첼시팬들의 마음은 쓰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자연히 모든 비난의 화살은 감독인 그랜트에게 향할 수 밖에 없다. 초반부터 그랬다. 지난해 10월 열린 풀햄과의 경기에서는 홈경기임에도 불구하고 환호보다는 야유를 받아야만 했다. 무리뉴 감독을 내친 것과 무기력한 경기력에 실망한 홈팬들의 야유였다. 또한 한 선수는 그랜트 감독의 훈련 방식을 비난하며 "그랜트 감독이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팀을 떠날 것" 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이후 무리뉴 감독을 잊지 못하는 선수들이 팀을 떠날 것이라고 공공연히 선포했고 그랜트 감독은 그런 선수들을 다독이는 데 모든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어려움을 뒤로 하고 묵묵히 제 할 일을 한 그랜트 감독은 최근 선수단의 신임을 얻는 듯했다. 람파드가 지난달 언론과 인터뷰에서 "그랜트 감독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새로운 첼시를 만들어가고 있다" 며 지지하고 나선 것. 또한 계속 팀을 떠나겠다며 말해온 디디에 드록바 역시 "환상적인 첼시에 헌신할 것"이라며 그랜트 체제를 인정했다. 그동안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달려왔던 그랜트 감독으로서는 한숨돌리는가 싶었다. 어느 정도 팀을 정비한 그랜트 감독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칼링컵 결승전이었다. 토튼햄의 기세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객관적 전력에서 앞선 첼시에게 칼링컵 결승전은 최소한의 체면치레를 할 수 있는 장이었다. 그러나 첼시는 1-2로 역전패했고 시즌 첫 우승컵을 들 수 있는 기회를 날리고 말았다. 특히 그랜트 감독은 상대팀의 후안데 라모스 감독과 직접 비교당하며 다시 한 번 경질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여기에 이전에 있었던 올림피아코스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 0-0 무승부에 그치며 경질설은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는 것이다. 경질설이 설(說)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다시 그랜트 감독에게는 중대 고비가 찾아온 것은 사실이다. 바로 1일 오후 열리는 웨스트햄과 리그 경기, 그리고 6일 새벽 열리는 올림피아코스와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이 그것이다. 만약 여기에서 정말 만족하지 못할 성적을 거둘 경우 그랜트 감독의 경질설은 설에서 그치지 않고 '사실'쪽으로 자리 이동을 할 지도 모른다. 과연 그랜트 감독이 여섯살짜리 딜런의 신임을 얻을 수 있을까?. bbadagun@osen.co.kr 무리뉴 감독과 그랜트 감독에 대해 설명하는 첼시 가이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