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현, 세대교체 바람에 이대로 묻히나
OSEN 기자
발행 2008.03.03 08: 49

[OSEN=이상학 객원기자] 올 겨울 프로야구 노장선수들에게 한파가 몰아치고 있는 가운데 두산은 8개 구단 가운데 가장 급진적으로 세대교체 작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젊은 선수들을 대거 발굴하며 세대교체에 성공한 두산은 올 전지훈련에서도 30대 중후반 베테랑들을 모조리 제외했다. 그러나 그 중 가장 의외로 받아들여진 선수가 바로 17년차 베테랑 안경현(38)이었다. 지난 시즌에도 안경현은 주전 1루수로 공수양면에서 알토란같은 활약을 했다. 김경문 감독은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고참 선수들을 배제했다. 안경현을 전지훈련에 데려가지 않은 것도 정원석·김용의가 더 잘 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안경현의 가치 안경현은 두산에서만 지난 16년간 총 1665경기를 뛰었다. 통산 출장경기수 부문 역대 7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두산에서 안경현보다 더 많은 경기를 뛴 선수는 없다. 지난 1992년 연세대를 졸업하고 2차 4번으로 두산 전신 OB에 지명된 안경현은 데뷔 초에만 하더라도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1992년 입단 첫 해 OB 3루에는 임형석이 있었고 유격수에도 김민호가 있었다. 안경현이 들어갈 자리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입단 4년차가 된 1995년부터 조금씩 주전급 선수로 얼굴을 내밀었고, 1996년부터 풀타임 주전으로 자리매김했다. 김동주가 3루수로 전환한 1999년 이후에는 포지션을 3루수에서 2루수로 옮겨 활약을 이어갔다. 안경현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한 건 2000년대부터였다. 선수들이 대개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하는 30대가 된 시점에서부터 전성기를 맞이한 특이한 경우였다. 팔팔한 20대였던 데뷔 첫 8년간 타율 2할5푼1리·43홈런·215타점이라는 평범한 그지없는 성적을 냈지만, 만으로 서른살이 된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타율 2할9푼·75홈런·488타점으로 훨씬 더 좋은 활약상을 보였다. 심지어 출루율(0.314→0.364)과 장타율(0.369→0.419)까지 나란히 5푼씩 상승했다.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한 OPS로 치면 무려 1할이나 치솟은 결과였다. 2000년부터는 한 시즌도 타율이 2할7푼대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을 정도로 꾸준한 타격을 과시했다. 2000년대 이후 안경현은 꾸준한 타격의 대명사가 됐다. 특히 2006년에는 1루수로 포지션을 변경하며 타율 2할8푼4리·15홈런·70타점으로 ‘두점 베어스’라고 불린 팀 타선을 중심에서 든든히 이끌었다. 15홈런 중 10개가 잠실구장에서 터뜨린 것이었다. 지난 시즌에도 종아리·손가락 부상 등으로 고생하는 와중에도 109경기에서 타율 2할7푼4리·49타점으로 비교적 제 몫을 해냈다. 특히 승부처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 팀에서 두 번째로 많은 결승타(7개)를 쳐낼 정도였다. 그 중에는 지난해 5월27일 대전 한화전에서 왼 종아리 근육통으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가운데 9회초 2사 후 대타로 나와 구대성을 상대로 터뜨린 역전 2타점 결승타도 있었다. 하지만 타격은 안경현의 가치를 보여주는 빙산의 일각밖에 되지 않는다. 안경현은 20대 시절 내야 전포지션을 두루 섭렵한 경험으로 안정된 수비를 자랑한다. 1루수로도 최정상급 수비력을 갖추고 있다. 강습 타구를 잘 처리하고, 안타성 타구도 곧잘 건진다. 이는 2루수 고영민이 ‘2익수’ 수비를 할 수 있는 바탕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두산이 SK와의 한국시리즈에서 2연승 후 4연패한 것도 안경현의 2차전 손가락 골절 부상공백이 적지 않았다. 또한, 고압적이지 않은 유순한 베테랑으로서 젊은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아주는 최고참 역할도 빼놓을 수 없는 안경현의 가치다. ▲ 정말 자리가 없나 지난해 시즌 막판 가운데 손가락 골절상을 당해 수술하지 않을 경우 장애를 겪을 것이라는 우려에도 재활을 택하며 출장을 강행한 안경현은 그러나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SK 채병룡의 투구에 오른손 엄지를 맞아 골절상을 당하는 불운을 입었다. 당초 전지훈련에서 제외된 것도 재활과정에 있는 손가락 때문이라는 시각이 짙었다. 하지만 김경문 감독은 안경현 대신 정원석을 밀어주겠다는 의사를 거듭 밝혔다. 국내에서 2군 선수들과 훈련에 매진하고 있는 안경현으로서는 적잖은 아쉬움이다. 부상을 당한 와중에도 괜찮은 실적을 올렸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쉬움은 곱절이 될 수 밖에 없다. 김경문 감독이 주전 1루수로 낙점한 정원석도 유망주와는 거리가 멀다. 올해로 만 31살로 나이가 찬 중고참이다. 지난 1996년 2차 2번으로 지명된 이후 동국대를 거쳐 2000년 입단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안경현보다는 7살이나 젊고 괜찮은 스피드를 지녔다는 점에서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다. 지금은 두산의 없어서는 안 될 보배들이 된 이종욱·고영민·민병헌·김현수·채상병 등도 처음에는 무모하다는 지적이 없지 않았지만, 김경문 감독이 소신껏 밀어붙인 결과 기대이상으로 성장했다. 김 감독은 한 번 결심하면 뚝심있게 밀고 나간다는 점에서 정원석에게 충분한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몇 년간 세대교체 작업 중에도 기대이상으로 좋은 성적을 낸 두산은 올해로 세대교체 작업을 완료하겠다는 계획이다. 김경문 감독도 “이제 젊고 패기있는 팀으로 바꾸었다. 앞으로 수 년 동안 현재 체제로 운영될 것 같다”고 밝혔다. 물론 그렇다고 당장 안경현의 자리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두산은 분위기를 매우 중시하는 팀이다. 홍성흔이 사실상 팀 전력에서 제외된 가운데 두산에서 분위기를 주도할 인물은 안경현밖에 남지 않는다. 지난해 김경문 감독은 이경필 장원진 등 전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 베테랑 선수들도 1군에 데리고 다니며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주력했다. 김 감독은 “두산 팀 분위기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1982년 창단 때부터 전통”이라고 말했다. 물론 정원석을 비롯해 젊은 선수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안경현을 재중용할 가능성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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