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4885. 너지?" 보도방 포주인 중호(김윤석)가 접촉사고 상대의 차창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연쇄살인범 영민(하정우)에게 한 마디를 던진다. 자신이 관리하는 아가씨(서영희)를 뺏어간 경쟁업자나 인신매매범 정도로 영민을 오해할 때다. 4885는 영민의 핸드폰 번호 끝 네자리. 몇 마디 간단한 대화와 짜릿한 시선이 오간 뒤 영민은 도망가고 중호는 쫓는다. 무대는 서울 망원동의 산동네 골목길. 개봉 20일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한 '추격자'의 가장 숨가쁜 추격신은 이렇게 막을 올린다. 그 가운데서도 관객들의 입에서 탄성을 절로 자아내게 하는 장면이 있다. 골목길 꺽이는 지점을 돌던 영민이 옆으로 슬라이딩하듯 미끄러졌다가 순식간에 다시 일어나서 달리는 모습이다. 그 바로 뒤에는 중호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추격중이다. 예고편에 삽입된 당시부터 화제를 모았던 이 장면은 어떻게 찍었을까? 신예 나홍진(34) 감독은 "연출된 장면이 아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전력질주하던 하정우가 비에 젖은 맨홀 뚜껑을 밟으며 제대로 자빠졌고 , 나 감독을 포함한 스탭 전원은 찰나 '사고'를 떠올렸다. 실제 상영 영화 속 이 장면에서 카메라의 촛점이 잠시 흐려진 이유다. 나 감독의 증언에 따르면 하정우는 역시 프로였다. "그런데 갑자기 넘어졌던 하정우가 벌떡 일어나더니 냅따 달리는 거예요. 그래서 모두들 그냥 찍은 거예요. 순간 뒤를 쫓다가 멈칫했던 김윤석씨도 다시 달린거고요. 하정우씨 무척 아팠을텐데 내색도 안하더군요." '추격자'는 나 감독이 각본을 직접 쓰고 연출을 맡은 첫 장편 데뷔작이다. 신인 감독 데뷔가 어렵고 특히 스릴러 장르를 꺼리는 충무로 분위기에서 5년을 갈고 닦으며 준비했다. 그의 손때가 진하게 묻어나는 작품, 그래서 '추격자'는 김윤석 같은 베테랑 배우조차 "애드리브를 할 공간이 조금도 보이지않는 시나리오"라고 극찬을 했다. 여기에 하정우까지 가세하면서 최근 침체의 늪에 빠져있던 한국영화에 걸작 한 편을 탄생시켰다. 나 감독은 추격신 명장면에 대해 "배우들의 다리에 알이 배겨서 실제로 다리 올리는 것도 힘든 상황이었다. 뛰는 것만 일주일을 찍었다. 배우들이 촬영장에 오면 일단 계속 뛰어야 했다. 진짜로 몸이 힘들었을꺼다"며 "그 장면의 숨은 공신들이 있다. 배우와 카메라가 합을 맞춰야 해서 스태프들이 미리 뛰어야 했다. 그래서 연출부 스태프들이 계속 뛰었다. 슛 가기 전의 테스트를 위해서 연출부 스태프들이 수십 번을 먼저 카메라 감독과 함께 뛰었다. 스태프 10명이 함께 뛰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mcgwire@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