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이 불혹' 양준혁의 위대한 도전
OSEN 기자
발행 2008.03.06 11: 05

[OSEN=이상학 객원기자] ‘살아있는 전설’ 양준혁(39·삼성)은 나이에 민감하다. 하지만 나이를 속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1969년생인 양준혁은 올해로 우리나이 마흔, 불혹의 나이가 됐다. 지금껏 한국 프로야구에서 우리나이 불혹의 나이까지 활약한 타자는 8명밖에 되지 않는다. 마흔 살까지 뛴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일이지만 욕심 많은 양준혁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불혹의 신화를 쓰겠다는 것이 양준혁의 의지다. ▲ 불혹의 성적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화려하게 불혹을 장식한 선수는 ‘전설의 4할 타자’ 백인천이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 백인천은 우리나이로 마흔이었다. MBC에서 감독 겸 선수로 뛴 백인천은 72경기에 출장, 타율 4할1푼2리·19홈런·103안타·64타점·55득점·11도루로 다방면에서 맹활약했다. 타격·최다안타·득점 모두 1위였다. 장타율(0.740)·출루율(0.497)도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장타율과 출루율을 합한 OPS(1.237)는 지금도 역대 최고 기록으로 남아있다. 가히 불후의 기록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당시 프로야구 체계가 잡히지 않은 시점이라는 점에서 간과되는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따지면 박철순의 22연승도 간과되어야 할지 모른다. 백인천을 제외하면 국내 타자들 가운데 마흔에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친 선수는 없었다. 윤동균은 만 40살까지 활약했지만 마지막 2년간 출장경기수가 41경기밖에 되지 않았다. 이만수도 1997년 삼성에서 39경기에서 타율 2할3푼1리·2홈런·9타점에 머물렀다. 이만수도 그해를 끝으로 아쉽게 은퇴했다. 김성래도 2000년 SK에서 29경기에 출장해 타율 2할6푼6리·2홈런·8타을 기록하고 유니폼을 벗었다. 마흔이 될수록 출장기회가 현저하게 줄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지난해 현대에서 우리나이 불혹에 주전 포수로 활약한 김동수는 비교적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111경기에 출장, 타율 2할7푼8리·4홈런·39타점으로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였다. 베테랑이었지만 포수 자원이 부족한 현대에서 주전으로 중용받았다. 전년도에 비해 출장경기수가 4게임만 줄었다. 윤동균·이만수·김성래는 우리나이 불혹 시즌 전년도보다 출장경기수가 평균 57.0게임이나 줄었다. 원년 72경기에 출장한 백인천도 MBC에서 중도퇴진하고 삼미로 옮긴 뒤에는 35경기(1983)-10경기(1984)로 출장기회가 줄어들었다. 가공할 만한 실적을 보이지 못하면 팀에서는 마흔의 나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했다. 외국인 타자로 눈길을 돌리면 ‘롯데의 전설’ 펠릭스 호세가 첫 손가락에 꼽힌다. 호세는 최고령 타자 출장 및 홈런 기록을 갖고 있다. 1965년생으로 2006년 우리나이 42살에 122경기에서 타율 2할7푼7리·22홈런·78타점으로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홈런·타점에서 2위에 올랐고, 장타율(0.487)·출루율(0.399)에서도 각각 4위·6위에 올랐다. 둘을 합한 OPS(0.886)는 전체 3위였다. 그러나 43살이 된 지난해 23경기에서 타율 2할5푼6리·1홈런·12타점에 그치자 시즌 중 퇴출됐다. 호세 전에는 훌리오 프랑코가 있었다. 2000년 삼성에서 뛴 프랑코는 132경기에서 타율 3할2푼7리·22홈런·110타점·79득점·12도루로 활약했다. 당시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등록된 프랑코의 생년월일은 1961년 8월23일생이었다. 우리나이 딱 마흔이었다. 하지만 뒷날 프랑코는 1958년생으로 밝혀졌다. 최고령 타자의 ‘진짜’ 기록은 당시 우리나이 43살이었던 프랑코가 정답일지도 모를 일이다. ▲ 양준혁의 도전 지난해 우리나이 39살이었던 양준혁은 123경기에 출장, 타율 3할3푼7리·149안타·22홈런·72타점·78득점·20도루라는 찬란한 기록을 남겼다. 장타율(0.563)·출루율(0.456)도 화려했다. 비록 개인 타이틀은 단 하나도 없었지만 타격·최다안타·출루율·장타율 등 무려 4개 부문에서 전체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한 수치인 OPS(1.019)도 이대호(롯데·1.053) 다음으로 좋았다. 우리나이 39살에 OPS 1.0을 돌파한 선수는 백인천을 제외하면, 양준혁이 유일하다. 2006년 호세와 2000년 프랑코도 OPS는 1.0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더군다나 지난해 프로야구는 투고타저의 흐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시점이었다. 양준혁은 올 초에 2년간 최대 24억 원을 받는 조건으로 삼성과 재계약을 맺었다. 지난 2005시즌 종료 후 FA가 된 양준혁은 2년간 최대 18억 원에 계약했다. 당시에는 보이지 않게 은퇴 압박도 있었다. 양준혁도 자칫했으면, 30대 후반 노장선수 퇴조의 물결에 휘말릴 뻔한 기억이 있다. 하지만 FA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올 겨울에는 훨씬 더 좋은 계약에 대형계약을 체결했다. 삼성은 지난 2년간 양준혁이 보여준 놀라운 실적과 함께 앞으로 기대치를 담아 2년이라는 짧지 않은 계약기간과 거액을 지불하기를 꺼리지 않았다. 그만큼 양준혁에 대한 믿음이 크고 굳건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우리나이 마흔은 큰 고비였다. 마흔까지 현역생활을 이어온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하지만 그 이상을 정복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양준혁은 마흔을 앞두고도 리그 전체에서 단연 돋보이는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왼쪽 발목 부상으로 전지훈련에 뒤늦게 참가했지만, 양준혁은 괴물 같은 회생능력으로 빠르게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있다. 부상 여파로 전지훈련 연습경기에서 3차례만 대타로 출전했으나 홈런 하나 포함 3타수 2안타로 변함없는 타격감을 뽐냈다. 지난해에도 양준혁은 전지훈련 막판 손목 부상을 당했지만 결국에는 이를 극복해냈다. 양준혁은 변함없이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발목 부상으로 잠깐 브레이크가 걸렸지만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고 있다. 무리하기보다는 조금은 피할 수 있는 강약 조절에 새로 눈을 뜨고 있다. 불혹의 나이에는 몸이 언제 고장날지 모르는 법이며, 항상 몸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양준혁은 “올해도 잘하면 홈런 20개는 칠 수 있다”며 특유의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그리고 “부상없이 전 경기에 출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할 정도로 경기 출장에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간 불혹의 타자들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기회조차 많이 얻지 못했다. 양준혁은 다시 편견에 도전하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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