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탑 데뷔전에서 보기 좋게 승리를 따낸 황선홍식 '즐기는 축구'가 확실한 변신을 꾀하는 부산 축구의 원동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 9일 부산 아시아드 주 경기장에서 열린 2008 삼성 하우젠 K리그 개막전에서 황선홍 신임 감독이 이끄는 홈 팀 부산 아이파크는 전북 현대에 2-1 역전승을 거두며 경쾌한 출발을 알렸다. 전반 11분 만에 전북 미드필더 김현수에 선제골을 내줘 끌려다니던 부산은 전반 종료 직전 한정화가 동점골을 뽑아낸 데 이어 후반 13분 한정화의 도움을 받은 김승현이 역전골을 꽂아넣으며 승점 3점을 따냈다. 황선홍 감독의 '즐기는 축구'가 큰 힘이 됐다는 평가다. 대단히 부담스러웠던 첫 판서 꼭 이기고 싶었지만 황 감독은 선수들에게 부담을 줄 수 없었다. 대신 "90분간 그라운드에서 신명나게 즐겨라"고 주문했다. 이날 부산 아시아드 경기장서 열린 개막전 사상 최다인 3만2725명의 구름 관중들도 황 감독을 더욱 긴장시켰다. 킥오프를 앞두고 취재진과 만난 황 감독은 "승리보다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상황별 전술적 움직임이 그려진 여러 장의 종이들이 붙여진 선수 대기실에서 황 감독은 "축구를 즐기자. 경기 후 집에서 '정말 재미있었다'고 느끼면 그걸로 만족하자"고 선수들에 당부했다. 정말로 부산은 재미있는 축구를 펼쳐냈다. 리드미컬하고 템포 넘치는 부산의 공격 앞에 호화 선수 진용을 갖췄던 전북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전체 슈팅 숫자 13-9도 부산의 경기력이 우세했다는 증거다. 쉽게 선제골을 내주며 불안한 출발을 했던 부산이지만 끝까지 경기를 지배하면서 볼 점유율을 높여갔고, 미드필드 싸움에서도 상대를 압도했다. 예전 같으면 첫 골을 허용한 뒤 그대로 무너졌을 부산이다. 황 감독은 "패배 의식이 많았다. 자신감을 되찾아주는 게 무엇보다 시급했다"고 부임 초기를 회상한 뒤 "앞으로 2~3경기가 시즌 전체 판도를 좌우할 것으로 본다"며 의지를 다졌다. 그리고 가벼운 첫 걸음을 뗐다. '즐기는 축구'는 황 감독에게 익숙하다. 한국 축구 스트라이커 계보의 중축을 담당했던 황 감독은 2002 한일월드컵에서 국가대표팀을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당시 히딩크 감독은 폴란드와 조별리그 첫 경기를 앞두고 미팅을 소집, "너희들을 위한 축제의 시간이 다가왔다. 마음껏 즐기고, 결과를 기다려보자"고 격려했다. 한국은 당연히 승리했고, 4강까지 승승장구했다. 터질 것 같은 긴장 속에서 선수들이 부담없이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큰 형'처럼 격려하고, 다독여 줄 수 있는 황 감독의 모습. '부산벌 르네상스'의 도래가 머지 않았음이 느껴진다. yoshike3@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