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고작 시범경기인데...” 한화 김태균(26)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었다. 지난 19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우리 히어로즈와 시범경기에서 김태균은 연타석 홈런을 쳤다. 연타석 홈런은 프로생활을 통틀어 한 번밖에 없다. 하지만 한 경기 2홈런은 9번이나 있다. 김태균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날 홈런 2방으로 김태균은 시범경기 4호 홈런을 마크, 이 부문에서 단독선두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김태균 같은 선수에게 시범경기는 컨디션 점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김태균은 긴 터널에서 벗어난 듯 초연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온실 속 화초에서 벗어나 들판의 야생화로 달라져 있었다. 대우는 없다 김태균은 명실상부한 한화 간판타자다. 지난 2001년 고졸신인으로 데뷔하자마자 후반기에만 15홈런을 몰아치는 등 고졸신인 두 번째로 데뷔 첫 해 20홈런을 때려내며 신인왕을 차지할 때부터 간판타자였다. 지역 연고 천안북일고 출신으로 일찌감치 장종훈의 뒤를 이을 ‘프랜차이즈 4번 타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김태균은 은퇴한 장종훈의 라커룸을 차지했고 구단은 매년 초고속으로 상승한 연봉으로 그에 걸맞는 대우로 보상했다. 가장 최근에는 송진우·류현진과 함께 한화그룹 사보 표지모델로 나섰다. 김태균은 한화를 대표하는 얼굴이다. 그러나 한화의 ‘온실 속 화초’였던 김태균에게도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지난해 후반기 극심한 부진으로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자 시즌 후 연봉삭감이라는 아픔을 겪었다. 3억1000만 원에서 2억9000만 원으로 연봉이 깎였다. 데뷔 후 처음있는 일이었고, 팀 내 타자 고과 1위였다는 점에서 충격이었다. 김태균은 초심으로 돌아갔다. 스스로 온실 속에서 벗어나 의지를 다졌다. 하와이 전지훈련에서 맹훈련을 받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힘들게 훈련했다”는 것이 김태균의 말이다. 김인식 감독도 “팀 타선이 터지지 않지만 김태균이는 열심히 하고 있다”고 기대했다. 초심으로 돌아가 특별대우를 거부하지만, 그래도 한화 팀 타선의 중심은 누가 뭐라해도 김태균이다. 김인식 감독은 시범경기 3연승 후 “김태균이 감을 잡아가고 있어 매우 고무적이다”며 화색을 띄었다. 지난해 김태균이 홈런을 친 20경기에서 한화는 15승5패라는 높은 승률을 기록했다. 김태균의 홈런은 곧 한화의 승리였다. 특별대우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왕년의 홈런왕’ 장종훈 타격코치도 이범호와 함께 김태균을 집중적으로 지도하고 있다. 지난 15일 SK와의 대전 시범경기가 종료된 후 장종훈 코치는 두 선수를 따로 남겨 특타훈련을 시켰다. 이날 김태균은 3타수 무안타로 경기를 마쳤고,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나머지 훈련’을 소화했다. 방망이 무게 김태균은 방망이 무게에 그 어느 선수보다도 민감하다. 시즌 중에도 수시로 방망이를 바꿀 정도다. 김태균은 무거운 방망이를 선호한다. “1kg짜리 방망이를 쓰면 타구가 쭉쭉 뻗어나간다”고 말할 정도로 1kg 방망이 예찬론자다. 시범경기에서도 1kg짜리 방망이를 쓰고 있다. 연타석 홈런도 1kg짜리 방망이로 때려낸 것들이었다. 하지만 김태균은 잘 알고 있다. 지난 2년간 무거운 방망이로 고전한 것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꼈다. “1kg 방망이로 스윙할 때 무게를 못 느낄 정도로 방망이를 돌릴 수 있다면 더없이 좋지만 시즌이 들어가면 힘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힘이 떨어졌을 때가 문제”라는 것이 김태균의 말이다. 홈런에 대한 부담이 많았던 김태균은 장타를 위해 의도적으로 무거운 방망이를 썼다. 그러나 결과가 좋지 못했다. 지난해에도 전반기에는 MVP급 활약을 펼쳤으나 후반기에는 죽을 쒔다. 그런 사이 김태균의 가장 큰 장점이었던 정확성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김태균 하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대다수 한화 타자들이 한 방을 노리는 큰 스윙으로 정확성이 결여된 타격으로 일관했다. 지난 3년 연속 팀 병살타 1위가 바로 한화였다. 김태균은 지난 3년간 리그에서 가장 많은 병살타(49개)를 치며 한화의 팀 병살타 1위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김태균은 정확한 타격을 위해 시즌이 시작되면 방망이를 930g짜리로 쓸 예정이다. “개막전에 바로 930g 방망이로 무게를 줄일 것이다. 장종훈 코치님과 약속한 부분이다. 시범경기가 끝나는 대로 새로 구입한 방망이가 온다”고 밝혔다. 김태균은 장종훈 타격코치의 조언에 따라 930g짜리 방망이를 쓰기로 약속했다. 방망이 무게를 놓고 고민하는 것보다 타격의 기술적인 부분을 더욱 신경을 쓰겠다는 의도이기도 하다. 무거운 방망이로는 타구를 멀리 보낼 수 있으나 배트 스피드가 느려지고, 배트 컨트롤도 힘들어 정확성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소박한 목표 김태균은 올 시즌 목표를 밝히는 것에 조심스러워했다. 2006년 40홈런, 2007년 30홈런을 목표로 설정했지만 모두 다 실패하고 말았다. 김태균은 “30홈런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이)대호도 30홈런은 못 쳤다. 2003년 31홈런을 치고 조금씩 늘어날 줄 알았는데 스윙이 커져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올해는 홈런보다 안타와 타율에 포커스를 맞췄다. “올 시즌엔 안타를 많이 치는 데 중점을 둘 생각이다. 연타석 홈런도 치려고 친 것이 아니라 안타를 치려다보니 홈런이 된 것”이라며 “3할 타율에 복귀하면 홈런은 25개 정도 따라올 것이다. 타율 3할·25홈런·100타점을 목표로 잡겠다”고 어렵게 목표를 설정했다. 김태균이라는 이름값을 고려하면 지극히 소박한 목표지만 그만큼 정신자세가 달라졌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시범경기지만 김태균은 대단히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시범경기 8게임에서 26타수 9안타, 타율 3할4푼6리·4홈런·8타점·6득점을 기록 중이다. 홈런 4개와 2루타 2개로 장타율은 무려 0.885. 정확한 타격을 하고 있지만, 장타가 자연스레 따라오고 있다. 안타 분포도도 이상적이다. 안타 9개 가운데 우측으로 날아간 타구가 5개다. 홈런 4개 중 3개가 밀어쳐 넘긴 우월 홈런이었다. 완전히 잡아당긴 좌측 안타는 2개밖에 없다. 욕심부리지 않고 정확성에 중점을 두고 타격한 결과였다. 김태균뿐만 아니라 이범호도 마찬가지다. 이범호는 19일 히어로즈전 좌월 홈런에 대해 “특별한 구질을 노린 게 아니라 안타를 치려고 했는데 넘어가 버렸다”고 말했다. 김태균은 “장종훈 코치님께서 특별히 주문한 건 없지만 오버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전반기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도 후반기 최악의 시즌을 보낸 것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한 시즌 페이스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김태균은 꾸준한 타자 중 하나였지만, 지난 2년은 이상하리만큼 전·후반기 기복이 심했다. 하지만 김태균은 새로 설정한 목표와 함께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의지도 내심 드러냈다. 지난해 1차 아시아예선에서 줄곧 예비엔트리에 포함되다 최종엔트리에서 탈락한 아픔이 있는 김태균은 “최종예선을 보니 뛰고 싶더라. 베이징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속내를 밝혔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군 문제를 해결한 김태균이지만, 태극마크를 달고 싶은 마음을 감추지는 않았다. 실력이 떨어져 대표팀에 탈락했다는 ‘불편한 현실’ 때문이다. 김태균은 ‘동갑내기 친구’ 이대호(롯데)에 대한 라이벌 의식도 드러냈다. 연타석 홈런을 친 후 “오늘 (이)대호는 잘 쳤는가”라며 대뜸 이대호의 성적을 물었다. 이날 이대호의 롯데는 LG와의 사직경기가 우천으로 취소됐다. 김태균은 미소를 띄며 “라이벌 의식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내 친구 잘했냐’하고 물어보는 것”이라며 진화했지만, 은근한 라이벌 의식을 감추지 않았다. 온실 속 화초에서 들판의 야생화가 된 김태균은 조금 더 의욕적으로 변해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