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탬파, 김형태 특파원] 김병현(29)은 다시 자유의 몸이 됐다. 지난달 26일(이하 한국시간) 피츠버그 유니폼을 입은지 정확히 30일 만이다. 피츠버그는 27일 보도자료를 통해 김병현을 조건없는 방출(release)로 풀어줬다고 공식 발표했다. 돌이켜보면 김병현과 피츠버그의 만남은 처음부터 어긋났다. 스프링캠프 시작 후 열흘이 지난 뒤에야 김병현은 플로리다주 브래든턴의 피츠버그 선수단에 합류했지만 실전 경기에 등판하기까지 13일이 더 필요했다. 정작 경기에 나서서는 홈런을 잇따라 허용하며 불안한 모습을 노출했다. 4경기(4이닝) 9피안타(5홈런) 8실점으로 방어율 18.00. 그리자 피츠버그는 미련없이 결별을 통보했다. 김병현과 피츠버그는 처음부터 '동상이몽'이었다. 최근 3년간 선발투수로 활약한 김병현은 불펜에서 던지던 과거의 김병현이 아니었다. 김병현의 몸은 이미 선발체질로 바뀌었다. 운동 패턴, 생활 습관이 하루 등판, 4일 휴식의 선발형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피츠버그는 과거 내셔널리그를 호령하던 김병현의 모습 만을 기억했다. 과거에 해봤으니 구원전업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 영입의 주된 요인이었다. 캠프에 임해서도 양측의 생각은 달랐다. 김병현은 성적에 관계 없이 마운드에서 자신의 구위를 테스트하는 데 치중했다. 불펜투구와 실전등판을 통해 점차 구위를 끌어올릴 생각이었다. 큰것을 맞더라도 직구 위주의 승부에 치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정규시즌 개막 전까지 불펜 투수 명단을 확정해야 하는 구단의 시각은 달랐다. 존 러셀 감독은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한 가운데에 직구를 던지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며 종종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결국 시범경기를 통해 '셋업맨' 김병현의 위상을 확인하고자 했던 의도는 물거품이 됐다. 구단의 시각이 차츰 차가워지고 있다는 것을 김병현도 감지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달라진 구단 분위기에 아랑곳 않고 구위와 새로운 투구 템포를 시험하면서 자신 만의 공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경기서 난타를 당한 뒤에도 "성적 부진은 구단이 신경 쓸 부분"이라며 시범경기는 시범경기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지난 20일 뉴욕 양키스전에서 또 다시 홈런 2개 포함 1이닝 4실점하자 김병현을 바라보는 구단 시각은 '한계'에 도달했다. 바이아웃금액 30만 달러를 포기하고 김병현을 버릴 수도 있다는 분위기가 매케니필드에 팽배했다. 24일 양키스와의 3번째 대결에서 1이닝 무실점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면서 구단 분위기는 다소 누그러졌지만 전날 김병현이 예정된 등판을 소화하지 못하자 마침내 '중대 결심'에 이르렀다. 26일 미네소타전은 구단이 김병현을 평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김병현과 우완 셋업맨 경쟁을 하는 재럿 라이트의 계약 문제가 걸려 있어 구단 입장에선 놓칠 수 없는 경기였다. 라이트는 26일까지 본인의 피츠버그 잔류 여부를 결정할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피츠버그는 라이트에게 결정을 이틀만 늦춰달라고 요청해 허락을 받았다. 김병현이 나설 27일 경기를 지켜보고 누구를 점찍을지 '최종판단'을 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을 벌어야 했다. 그러나 김병현은 갑작스레 몸이 아파 등판을 소화하지 못했고, 이것으로 구단의 방출 결정은 굳어졌다. 시범경기 방어율 4.50에 불과했던 라이트도 마뜩치 않던 피츠버그는 결국 27일 애틀랜타에서 또 다른 우완 타일러 예이츠를 트레이드로 영입하며 '김병현 방출, 라이트 마이너리그 강등'이라는 조치를 동시에 단행했다. 예이츠 영입 작업이 수일 전부터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김병현을 포기하기로 한 구단 방침은 이미 이번주 초에 윤곽이 드러난 셈이다. 닐 헌팅턴 단장은 "김병현을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설명했지만 30만 달러라는 돈 문제가 걸려 있지 않았다면 결정은 훨씬 쉬웠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피츠버그와의 인연이 여기에서 중단된 것은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김병현은 캠프 기간 내내 "짤릴 수도 있어요. 나가라면 나가야죠"라며 피츠버그라는 구단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칼날'이 구단에 있다는 현실을 인정한 표현이지만 다른 곳에서 새 출발이 가능하다는 기대감도 엿볼 수 있었다. 김병현은 최근 "만약 구단이 나를 쓰지 않겠다고 결심한다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다만 13일 전 그가 에이전트를 제프 보리스로 전격 교체한 것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보리스는 "조건에 관계 없이 LA 다저스와 계약해달라"고 한 박찬호(35)의 요구를 들어준 인물이다. 김병현이 하고 싶은 것은 여전히 메이저리그 안에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workhorse@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