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소설로 유명한 체코의 작가 밀란 쿤데라는 글머리에 ‘역사는 반복 된다’는 화두를 제시한다. 폭력 혹은 전쟁과 관련된 것으로 철학자 니체로부터 ‘영원한 재귀’를 인용한 것이다. 성(性) 풍속과 관련해서도 ‘역사는 반복 된다’고 하는 주장은 화두가 될 만하다.
모든 경우에 적용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문명이 발달하고 사회가 안정되면 성 풍속은 혼외 정사, 강간, 매매춘, 동성애, 근친상간 등 극단적으로 자유분방해진다. 그리고 섹스 산업도 발달한다. 그랬다가 전쟁이나 기아, 자연 재해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발생하면 인륜과 철학적으로 깊이 반성된다. 성 풍속은 극단적으로 억압되고 성 담론은 음지에서나 가능해진다.
로마의 퇴폐한 성 풍속이 중세의 암흑기를 불러온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카마수트라가 경전일 정도로 성애의 의미와 기술이 극치를 이루었던 인도에서는 오늘날까지도 고행과 수도가 미덕이 되고 있다. 우리의 경우도 비슷하다. 신라나 고려시대에는 남녀간에 연애사건이 아주 자유스럽게 이루어졌다. '서울 밝은 달 아래 밤늦도록 노닐다가 들어 와 자리 보니 가랑이가 넷이어라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뉘 것인고...'로 이어지는 처용가는 그 시대의 사회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자유분방한 성 풍속은 조선조 500년 동안 깊은 어둠에 묻혀 버리게 된다.
오늘날의 성 풍속에는 다시 그런 금기와 억압의 시대를 불러올 요소가 없을까. TV나 잡지 등 현대의 매체에서 성적 퇴폐를 읽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지상파 방송에서는 불륜, 외도, 이중적 애정관계 등 일탈 행위가 아주 일반화된 것처럼 미화되고 있기까지 하다. 인터넷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언제 음란성 스팸메일이 안방까지 날아 들어올지 모르며 사이버 성폭력과 스토킹, 채팅, 원조교제 등 권유가 일상화되고 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각종 성 정보를 접하는 개개인의 입장이 진지하고 건전하다면 그런 암흑의 시대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발전하는 성 의학과 지식을 잘만 이용한다면 삶의 질을 업그레이드시키는데 한몫 거들게 할 수 있다. 간단한 알약 하나로 이미 한 시대 전보다 발기가 잘 되게 하며, 수술법의 발달로 사이즈 콤플렉스 같은 문제가 해결되어 일상의 섹스를 훨씬 더 즐겁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얼마 전 외신 보도에 따르면 대니얼 아랍 모이 케냐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당분간 성생활을 하지 말자’고 권고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것을 두고 성이 억압될 전조중의 하나라고 말한다면 너무 확대 해석한 것일까? 에이즈가 창궐하는 후진국이지만, 그의 권고는 무심히 듣기 어려운 시사점이 있다고 본다. ‘바쁘다’ ‘귀찮다’는 이유로 섹스리스 상태의 부부들이 증가한다는 보고도 증거가 될 수 있다. 향락지상주의로 치닫고 있는 지구촌 한편에서는 금욕을 주장하는 고행과 수도가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는 세상이다. 금기와 억압, 해방과 방종의 역사가 반복될지 안될지는 좀 더 관심을 갖고 주의 깊게 지켜볼 일이다.
/강남 유로탑 비뇨기과 이선규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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