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테이너, 길을 잃고 방황하다
OSEN 기자
발행 2008.03.30 06: 48

방송가의 재간꾼 아나테이너들이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아나테이너란 아나운서와 엔터테이너를 결합한 신조어다. 요즘 아나테이너들은 뉴스 전달 기능의 아나운서 보다 MC나 개그맨 역할에 더 치중하면서 진정한 언론인으로서의 의미를 잃어 가고 있다. 그러나 예능 프로 진행에서는 연예인들에게 밀리고, 뉴스 프로에서는 정통 아나운서들에게 치이는 중이다. 아나운서로도, 엔터테이너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아나테이너, 그들은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아나테이너의 등장은 방송 환경이 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인기 있는 몇몇 스타 MC들의 출연료가 천정부지로 뛰어 오르고, 그들의 섭외 마저 어려운 현실적 이유 때문에 방송사 입장에서는 소속 아나운서들의 ‘아나테이너화’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 지원해왔다. 실제로 SBS 예능총괄 CP로 새로 부임한 박정훈 프로듀서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SBS 아나운서들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계속될 것이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엔터테이너 같은 아나운서가 등장하면서 방송과 시청자의 거리를 좁혔다는 의견도 있다. 또한 방송 언어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은 연예인 MC 문제를 일정 부분 해결했다는 순기능도 거론된다. 하지만 문제는 아나운서들의 잦은 오락 프로그램 출연은 그들이 전달하는 정보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언론인으로서의 정체성 논란을 불러 일으킨다는 데 있다. 전 MBC 아나운서였던 김성주는 프리랜서를 선언하며 가진 기자회견에서 “아나운서가 예능오락 프로그램 MC로 활동하는 것은 정말 힘들다”고 고백해 예능프로에서 연예인 MC와 경쟁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표현했다. 실제로 24일 종영한 MBC TV ‘지피지기’는 김성주의 고민이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피지기’는 MBC 대표 아나운서 4인방 서현진 최현정 손정은 문지애 아나운서를 앞세워 방송 초반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이 4명의 아나운서들은 결국 무성한 열애설 만을 남긴 채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지피지기’뿐 만이 아니다. SBS TV ‘기적의 승부사’에 출연한 김주희 정미선 아나운서와 KBS 2TV ‘하이파이브’의 이정민 아나운서 역시 연예인 MC에 묻어갈 뿐 그 속에서 아나운서만의 특별한 활약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부진 속에서도 아나운서들은 그들만의 색깔을 찾고자 노력한다. KBS 2TV 생방송 다큐 ‘사미인곡’과 MBC TV ‘네버엔딩스토리’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미 신뢰도를 잃어버린 아나운서들의 시사 교양 프로그램으로의 복귀도 그리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KBS 2TV 생방송 다큐 ‘사미인곡’이 봄 개편으로 인해 프로그램의 형식을 대폭 수정하는 과정에서 아나운서들의 스튜디오 촬영이 없어질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사미인곡’의 담당 프로듀서는 OSEN과의 통화에서 “봄 개편으로 방송 시간대를 옮기면서 형식에도 큰 변화를 줄 예정이다. 기존의 생방송에서 보던 아나운서들은 이제 볼 수 없게 됐다”면서 “아나운서들이 진행하는 장면은 아예 없애고, ‘인간극장’과 같은 ENG형식으로 바꾸고, 하루에 2개의 이야기를 전할 생각이다”고 밝혔다. 또 방송 속 내레이션은 기존의 아나운서들이 맡게 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직 확실히 결정하지는 못했지만 아나운서를 기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나운서 보다는 성우나 신뢰감을 주는 목소리를 가진 연예인에게 내레이션을 맡길 예정이다”고 말했다. 앞으로 ‘사미인곡’과 같은 형식의 새 프로그램이 기획되지 않는 한 당분간은 MBC의 ‘네버엔딩스토리’ 만이 아나운서들의 자존심을 간신히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네버엔딩스토리’는 어느 날 갑자기 TV에서 사라진 스타들이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건 속 주인공들을 MBC 아나운서들이 직접 만나 그들과 생활하며 경험하는 리얼리티 토크쇼다. 나경은 아나운서의 ‘남극, 아직 못다한 이야기’편을 시작으로 첫 방송을 시작한 ‘네버엔딩스토리’는 그 후로 ‘사라진 팝페라의 여왕 키메라’, ‘외국인 청년 브루노와 보쳉’의 최근 모습과 방송에서 밝힐 수 없었던 사연들을 공개하면서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시청자들은 ‘아나운서들이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할 때와는 다른 솔직하고 꾸밈없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아나운서들의 차분한 내레이션이 방송을 더 윤택하게 만드는 것 같다’ ‘아나운서들의 장점을 십분 발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탄생한 것 같다’ 등 아나운서의 시사 교양 프로그램으로의 복귀를 환영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렇듯 아나운서는 예능 오락이 아닌 시사 교양에서 더욱 더 빛을 발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비록 답을 찾기는 어려우나, 답이 없는 것이 아니다. 아나운서들 스스로 언론인과 연예인의 경계, 시청자의 기대 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때이다. ricky337@osen.co.kr KBS,M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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