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우중 개막전, '비 와도 경기한다' 선례
OSEN 기자
발행 2008.03.30 09: 08

"홈, 원정팬을 떠나 당일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계획을 세워놓았던 팬들이 있다. 휴가까지 내며 원정경기를 보러 온 사람도 제법 있다. 그런 고마운 팬들에게 폭우가 아닌 다음에야 경기를 취소한다는 것은 실례 아닌가. 팬들은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투자하는데 우리는 그런 의지를 꺾고 있다. 눈앞에 '몇 백 만 관중'이라는 식의 수치를 목표로 할 것이 아니라 잠재적 관중들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흐린 날씨 때문에 2000~3000명 밖에 안 왔다고 한숨 짓지 않을 것 아닌가".
2007시즌 '일본 프로야구 관중은 비가 와도 왜 항상 많을까'라는 의문을 놓고 이야기하던 중 김성근 SK 감독이 한 말이었다. 경기 전 비가 올 때면 김 감독은 항상 이런 말을 되풀이하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곧 '웬만큼 비가 와도 야구는 한다'는 것을 팬들에게 인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김 감독은 팬들을 위한 프로야구가 되자고 백날이 넘게 떠들고 있지만 실상은 경직된 행정주의적인 사고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우천으로 경기를 연기하고 맑은 날 열게 되면 목표한 관중 수치를 맞출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대책 없는 주먹구구식 경기 일정 때문에 피해는 고스란히 돌아오기 마련이란 것이다. 사실 지난 시즌에도 때 아닌 늦장마 때문에 쉴 틈도 제대로 없이 포스트시즌에 돌입해야 했다.
이런 점에서 지난 29일 인천 문학구장서 열린 SK-LG의 우중 개막전은 승패를 떠나 올 시즌 프로야구의 좋은 선례를 남겼다.
이날 경기는 새벽부터 내린 비 때문에 사실상 경기가 취소될 가능성이 높았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프로야구 관례상(?) 당연히 순연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SK는 경기 시작 2시간 전 비가 그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경기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날 비가 예보되자 SK는 미리 방수포로 내야 전체를 덮어두었다. 김시진 경기감독관은 3시간 전부터 전 내야를 돌며 그라운드 상태를 살폈지만 경기에는 별 지장이 없다고 밝혔다.
방수포만 잘 구비해 이용해도 일단 시작한 경기가 비 때문에 노게임이 되는 일은 없다. 선수나 관중 모두 헛품을 팔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SK 구단 관계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스펀지를 이용해 그라운드에 고여 있던 빗물을 제거했다. 마운드와 타석에는 마른 흙을 뿌려 경기에 지장이 없도록 했다.
또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서는 경기장 상태를 찍은 사진을 수시로 올려 비가 와도 차질 없이 경기를 치를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믿게 했다. 회원들에게는 무조건 경기를 강행하겠다는 단체 문자메시지까지 날렸다.
이런 노력 끝에 막을 올린 개막전은 빗속을 뚫은 사상 첫 연장 대타 끝내기 홈런이라는 극적인 장면까지 연출해냈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내렸다. 하지만 지붕이 있는 경기장 2층과 그 아래에서 비를 피하며 경기를 지켜 본 1만1601명의 결코 적지 않은 관중은 환호하고 동시에 낙담했다. 승자와 패자만이 존재하는 스포츠의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비가 오면 관중들이 안올 텐데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을 하기보다 '비를 맞고 응원하는 관중들에게 무엇을 보여줘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전환점이 마련됐다. 이 고민은 결국 야구장의 배수시설을 포함한 인프라를 바꿀 것이고 정확한 일기예보의 필요성도 역설할 수 있을 것이다. 돔구장을 지어야 한다는 논리도 '비가 와도 야구는 계속돼야 한다'는 데서 시작했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스포테인먼트'에서 올해 '스포테인먼트 2.0'으로 한발 더 나간 모토를 내세운 SK는 분명 프로야구판의 마케팅·홍보 분야에서 확실한 리더역할을 하고 있다.
SK는 좋지 않은 날씨에도 경기를 강행함에 따라 개막전 만원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흐린 날씨에도 경기장을 찾아 줄 잠재적 관중 동원에는 분명 성공을 거뒀다.
신영철 SK 사장은 이날 오전 9시에 이미 "폭우가 쏟아지지 않는다면 그냥 경기를 강행하자"고 방침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소한 올 시즌 SK의 홈구장인 문학구장에서는 누가 봐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비가 쏟아 붓지 않는 한 야구는 예정대로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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