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인' 조윤환, 한국 축구 '현장'에 돌아오다
OSEN 기자
발행 2008.03.31 08: 09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과거 잘 알고 있던 그 사람이라고 하기엔 너무 변해 있었고, 그를 잘 알던 사람들도 긴가민가하는 표정이었다. 그의 이름은 조윤환(47). FC 서울과 대구 FC의 정규리그 경기가 벌어진 지난 30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을 찾은 그를 만났다. "2005년 6월 전북을 떠난 뒤 2년간 국내 구장을 피했다. 그리고 유럽, 브라질 등을 떠돌며 축구와 나 자신의 인생을 돌아봤다. 한때는 중국 하얼빈의 총감독(2007년 4월~6월)으로 일하기도 했지만 내가 있을 곳은 역시 내 나라 한국이었다. 이제는 새롭게 배운 축구를 가지고 현장에 돌아올 시기라 판단했다". 전북 현대의 사령탑을 끝으로 축구판을 떠난 지 4년이 지난 조윤환 전 감독의 고백이다. 한때 부천 SK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선수이자 감독이었던 조 감독은 그렇게 축구팬의 곁으로 돌아왔다. 조윤환 감독은 아기자기한 패스로 한국 축구의 부흥을 이끌었던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의 후계자. 그는 1999년부터 2001년까지 부천(현 제주 유나이티드)을 맡아 대한화재컵 우승, 정규리그 준우승 등을 기록하며 감독으로서 첫 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장밋빛으로만 보였던 그의 지도자생활은 2001년 부천을 떠난 후 전북에서 하나은행 FA컵 우승만을 손에 거머쥔 채 믿었던 서포터들의 비난 속에서 쉼표를 찍었다. 그런 조윤환 감독에게 4년 만에 돌아온 K리그는 어떤 느낌일까. 그는 감탄 반 아쉬움 반을 담아 속내를 풀어냈다. "오랫만에 본 선수들은 전체적으로 준비가 잘된 것 같고, 승부에 대한 의지가 남달라 보였다. 아쉬운 것은 승부에 대한 의지가 너무 강하다 보니 오히려 경기 내용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데 있다. 짜임새 있는 축구보다는 단순한 플레이가 너무 많다. 예를 들어 미드필드를 생략하고 경기를 풀어가는 뻥 축구 말이다". 너무 단호한 대답이 아닐까 싶었지만, 그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지금 이런 말을 듣지 않을 팀은 성남과 박항서 감독 시절의 경남 외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등 다양한 해외축구를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상황이라는 데 있다. 관중들의 눈은 이미 높아졌건만 아직 그 눈높이를 우리 한국 축구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그는 서상민, 조동건 등 놀라운 신예 선수들의 등장에는 반색하는 모습이었다. 조 감독은 "신인이 많이 나오는 것은 프로 축구 발전에 긍정적인 일이다"며 "그래야 우리 축구의 질적 발전이 가능하게 된다"고 강변했다. 과거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이기에 가능한 말이리라. 과거를 떠올리며 현재를 풀어가는 수다는 부천 SK 아니 현 제주 유나이티드의 연고지 이전으로 이어졌다. 인터뷰 내내 활기찬 모습이던 조윤환 감독도 그 순간만큼은 잠시 눈을 감았다. "안타깝다. 그 이상 무슨 말을 할까. 연고지 이전보다는 분명히 기존의 연고지에서 발전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다. 연고지를 떠난 팀에게 팬들이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리 있는가. 그래도 부천에는 K3리그 팀(부천 FC 1995)이 오랜 진통 끝에 창단됐기에 기대가 크다. 무럭무럭 자라 K리그까지 올라왔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다". 여기까지 온 이상 조윤환 감독에게 부천 FC 1995의 감독을 맡을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단호히 말했다. "난 부천에서 선수생활을 했고 지도자를 시작했습니다. 그런 내 마음 속에 부천이 대한 사랑이 남아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감독이요?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부천 시절이 지도자로서 가장 행복했고, 절 성원해줬던 서포터 헤르메스도 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저한테 제안이 온다면 '봉사'차원에서 감독을 맡을 겁니다". 그러나 조 감독의 희망과 달리 부천이 K리그로 올라오는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우선 3월 초 유일한 희망이었던 내셔널리그의 승격제는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무산됐다. 행정적으로 충분히 준비가 되지 못한 상황에서 희망만 앞세웠던 우리 축구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그 희망마저도 간절했던 K3팀에게 승격제 포기는 야속스러운 일이다. 이에 대해 조 감독은 또 한 번의 솔직한 고백을 밝혔다. "우선 K3, K2리그(공식 명칭은 내셔널리그) 경기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승격제가 없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아쉬운 마음이 한 가득이었습니다. 국민은행, 현대미포조선의 승격 포기가 아쉬운 것은 이번 일로 한국 축구의 선순환의 고리가 끊어졌다는 데 있습니다. K리그 팀은 팬들에게 줄 수 있는 흥미요소 한 가지를 잃은 셈이고, 하위리그 팀들에게는 승격이란 꿈이 사라진 셈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축구에 대한 열변을 토했다. "어떤 축구를 하고 싶냐고요? 전 결과에 집착하는 축구가 아닌 찬스를 만드는 축구를 하고 싶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아스날같은 스타일의 축구를 하고 싶습니다. 긴 패스 한 번으로 연결하는 축구가 아닌 짧은 패스를 반복하며 골을 만드는 축구가 제 목표이자 꿈입니다. 그리고 이런 축구가 제가 부천에서 배우고 펼쳐온 축구이기에 연장선이라고 봐도 되지않을까요?". 우리는 프로팀 감독에서 일반 축구인이 된 '전 감독'에게 '야인'이라는 칭호를 붙인다. 화려한 프로팀 감독과 달리 야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한국 축구의 '현장'으로 돌아온 조윤환 감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대학팀의 지방 전지 훈련지를 돌아다니며 일일 축구 선생님으로 뛰고 있는 그에게 필요한 것은 열정이었고, 축구사랑에 대한 확신이었다. 31일 그는 광양만으로 떠난다. 어딘가 그를 필요로 하는 꿈나무들을 위해서다. 조윤환 감독은 "프로를 꿈꾸는 선수들이 많습니다. 그런 선수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전 어디로도 갈 겁니다"는 말과 함께 미소를 지었다. stylelomo@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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