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프로야구가 개막했다. 이맘때 연례행사처럼 떠도는 말이 있다. ‘롯데가 달라졌다’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정말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롯데는 한화와의 개막 2연전을 싹쓸었다. 개막전에서 11-1 대승을 거뒀고 이튿날에도 9-8로 1점차 재역전승했다. 과거 롯데는 10점차로 한 번 이기고 1점차로 열 번 지는 팀이었지만, 올 시즌은 시작부터 일방적인 경기와 접전에서 모두 승리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사상 최초의 외국인 사령탑 제리 로이스터(56) 감독이 자리하고 있다. ▲ 차별화된 리더십 지난 29일 개막전을 앞둔 대전구장. 올해 롯데 신임 주장이 된 정수근은 팀 분위기에 대해 “너무 좋다. 최고다. 최고”라고 엄지를 들었다. 정수근은 로이스터 감독을 누구보다 환영했다. “새롭게 야구를 배우는 입장이다. 선수들이 눈빛부터 달라졌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선수들이 시간가는 줄 모르고 훈련한다”는 것이 정수근의 말이었다. 물론 주장으로서 모범도 보이고 있다. 정수근은 새벽에도 방망이를 돌릴 정도로 어느 때보다 열성을 보이고 있다. 정수근은 “선수들 스스로 알아서 하는 분위기를 유도한 감독님 덕분에 분명 좋아질 것이다”고 말했다. 롯데 서정근 홍보팀장도 거들었다. 서 팀장은 “작년에는 쭉 처지는 분위기였는데 올해는 선수들이 전부 ‘한 번 해보자’는 분위기로 뭉쳤다”며 “예전 감독들은 선수들 위에서 군림하는 스타일이었지만 로이스터 감독은 직접 선수들하고 다정다감하게 어울리는 스타일이다. 선수들에게 충분히 공정하게 기회를 주고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선수들도 잘 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롯데 야구를 누구보다 잘 꿰뚫고 있는 KNN 이성득 해설위원도 “감독이 선수들을 믿고 있고 선수들도 자발적으로 따르고 있다”며 달라진 롯데 분위기를 매우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로이스터식 리더십은 30일 경기에서 잘 나타났다. 1회초 2사 1루에서 카림 가르시아 타석 때 로이스터 감독은 갑자기 득달같이 달려나왔다. 주심이 혼잣말을 한 가르시아에게 경고를 주는 순간 즉각적으로 뛰쳐나왔다. 가르시아는 치기 좋은 공을 놓친 것에 대해 혼잣말로 자신에게 화를 낸 것이었는데 주심이 이를 판정 불만으로 오해한 것이다. 로이스터 감독은 흥분한 가르시아를 떼어 놓고 심판에 격렬하게 항의했다. 가르시아 대신 심판과 실랑이를 벌였다. 경기 후 로이스터 감독은 “오해가 조금 있었다. 내가 원래 잘 흥분하는 편이지만 선수 보호와 사기 고취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가르시아는 7회초 역전 결승 홈런으로 화끈하게 보답했다. 하지만 진짜 백미는 8회초였다. 8년 만에 돌아온 마해영은 복귀 첫 경기 마지막 타석에서 승부에 쐐기를 박는 솔로 홈런으로 복귀신고를 했다. 마해영이 그라운드를 돌고 홈을 밟아 덕아웃으로 들어올 때 로이스터 감독은 환한 미소로 맞이했다. 그리고 마해영을 살갑게 껴안으며 포옹했다. 페넌트레이스 경기에서 감독이 선수를 얼싸안고 함께 기뻐하는 건 그동안 국내 정서에서 기대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태평양에서 건너온 미국인 감독은 스킨십에 거리낌이 없었다. 마해영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들에게 이런 식으로 직접 다가가고 있다. 그러나 지적할 부분은 지적하고 야단을 칠 때는 야단도 친다. 로이스터 감독은 “선수들에게 부족한 것이 있으면 직접 얘기한다. 때때로 야단을 칠 때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적과 야단을 납득이 가게끔 한다는 점에서 선수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2군에 가게 되더라도 감독으로부터 직접 고쳐야 할 부분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격려를 받으니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다. “선수들과 의사소통에는 문제없다. 눈빛으로도 통한다”는 게 로이스터 감독의 말이다. 그는 “야구는 항상 즐겁게 해야 한다”는 신조도 밝혔다. 롯데는 지금 즐겁다. ▲ 다양한 상황 연출 이제 겨우 개막 2경기에서 승리했을 뿐이다. 지난해에도 롯데는 현대와의 수원 개막 3연전을 싹쓸이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야구는 4월에만 하고 마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팀들이 10월 말까지 야구하기를 바란다. 126경기 가운데 2경기를 치른 것뿐이지만 전반적인 롯데의 야구 스타일은 많이 달라졌다. 지난해와 비교할 때 선수 구성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다. 물론 김주찬이 급성장했고 조성환이 군복무를 마치고 복귀한 것을 무시할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큰 전력 보강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팀컬러의 변화라는 점이 돋보이는 이유다. 가장 먼저 주루 플레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롯데는 개막 2경기에서 연이틀 도루를 2개씩 성공시켰다. 지난해 롯데의 일주일치 도루가 3.2개였다. 일주일치 것을 주말에 다 해결한 것이다. 김주찬이 2개의 베이스를 훔쳤고, 박기혁과 조성환이 1개씩 기록했다. 로이스터 감독은 “모든 작전은 내가 지시한다. 선수들 마음대로 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선수 스스로가 판단할 수 있게 유도하고 있다. 그 부분에 대해 선수들과 계속해 의사소통하고 있다”고 밝혔다. 언제든 달릴 수 있는 주자들의 존재로 롯데를 상대팀들은 더 이상 타자와의 승부에만 신경 쓸 수 없게 됐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주루 플레이는 다양한 상황을 연출한다. 굳이 번트가 아니더라도 주자를 득점권으로 보낼 수 있다. 실제로 롯데는 한화와의 개막전에서 선취점과 2득점째를 안타 하나 없이 얻었다. 볼넷과 도루에 실책까지 겹쳤다. 이튿날에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한화 선발 정민철은 나란히 3안타를 기록한 정수근과 김주찬이 나가 있을 때마다 연속해서 1루에 견제구를 뿌리는 등 압박감을 느낀 나머지 타자에 전력투구하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로이스터 감독은 “무사 1루라고 무조건 번트를 대지 않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 번트를 댈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며 다양한 상황 연출과 득점 루트를 강조했다. 주루 플레이 다음으로 로이스터 감독이 강조하고 있는 수비도 전체적으로 많이 나아졌다는 평이다. 로이스터 감독이 키플레이어로 지목한 유격수 박기혁은 빠르고 유연한 타구 처리와 군더더기 없는 송구로 내야진을 지켰다. 조성환도 넓은 수비 범위로 2루를 커버했다. 3루수 이대호는 3년 전에도 괜찮은 3루수였다. 3년 만에 다시 3루수로 복귀한 것치곤 기대이상으로 좋은 수비력을 보여줬다. 정수근·김주찬·가르시아의 외야수비도 좋았다. 가르시아는 뛰어난 파워 못지않게 좋은 어깨를 과시했다. 김주찬은 외야 전 포지션에다 1루까지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 다재다능하다. 공수 양면에서 쓰임새가 아주 많은 선수라는 것을 다시 입증해 보이고 있다. 타격은 사실 지난해에도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장타와 집중타가 부족한 것이 고질적인 문제였다. 하지만 개막연전에서 롯데는 무려 20점을 기록했다. 홈런은 무려 5개나 터뜨렸다. 4강을 향한 가장 큰 관건은 역시 마운드가 될 전망이다. 에이스 손민한이 건재한 데다 임경완이 마무리로 성공적인 첫 발을 떼었지만 제2선발 마티 매클레리가 불안했다. 로이스터 감독은 주루·수비와 함께 투수력 강화를 3대 지상과제로 삼고 있다. 투수는 로이스터 감독의 전문 분야가 아니다. 주루와 수비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마운드다. 투수력을 어떻게 잘 살리느냐가 3월 반짝 돌풍으로 그칠지 아니면 10월까지 계속되는 대폭풍이 될지를 가를 관건이 될 전망. 올 한해도 롯데에 많은 이목이 집중되고 있고 그 중심에는 역시 로이스터 감독이 자리할 것이다. 일단 출발은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