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대전, 이상학 객원기자] 지난 4일 대전구장. 홈팀 한화가 KIA를 상대로 개막 5연패 탈출에 안간힘 쓰는 동안 한 남자가 구장밖 버스에서 짐을 챙기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은은하게 웃는 얼굴이었다. 묵묵히 짐을 챙기고 마지막까지 경기를 다 관전했다. 구단 관계자 하나하나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 그는 극적으로 연패를 탈출한 동료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고 정들었던 대전구장을 뒤로 했다. 이날 삼성 내야수 이여상(24)과 1대1 맞트레이드된 한화 포수 심광호(31)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 13년 정든 한화 “13년차입니다.” 비교적 동안이지만 심광호는 프로 13년차 베테랑이다. 그는 상무에서 군복무하며 보낸 2년을 제외한 나머지 11년을 한화에서만 보냈다. 한화는 그에게 고향팀이다. 천안남산초-천안북중-천안북일고를 졸업하고 지난 1996년 한화에 2차 우선지명돼 입단했다. 한화는 전통적으로 포수자원이 약했다. 심광호에게 거는 기대도 적지 않았다. 1996년 당시 계약금 8500만 원은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심광호는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심광호는 아쉬운 기억을 더듬었다. “기회를 제대로 못살린 게 아쉽다. 2003년 군복무를 마치고 복귀했을 때 유승안 감독님이 기회를 많이 주셨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지난해에도 아쉬웠다. 시즌 초반 연타석 홈런도 치고 페이스가 좋았지만 감을 이어가지 못했다”는 것이 심광호의 말이다. 하지만 남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그는 “누구를 탓하기보다 내가 부족했다. 몸도 좋지 않았고 여러 모로 많이 아쉬움이 남는다”고 속마음을 드러냈다. 프로선수에게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운도 따라야 한다. 1996년 데뷔할 때부터 그는 부상으로 고생했다. 올 시즌에도 팔꿈치 부상으로 전지훈련을 다 마치지 못하는 등 악운이 따랐다. 하지만 심광호는 아쉬운 기억만큼 좋은 기억도 많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역시 2006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3차전. 심광호는 3차전의 깜짝 스타였다. 1-3로 뒤진 8회말 2사 1루에서 삼성의 ‘철벽 마무리’ 오승환을 상대로 가운데 백스크린을 강타하는 비거리 125m 동점 투런 홈런을 작렬시키며 대전구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심광호는 미소를 지었다. “야구를 하면서 그 때처럼 팬들로부터 많은 환호를 받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강렬한 기억만큼 작은 기억들도 그는 소중하게 생각했다. “한화에서 모든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불펜포수 때부터 송진우·구대성·정민철 등 대투수들의 공을 받은 것도 영광이었다”는 게 심광호의 진심이다. ▲ 삼성에 몸 바친다 시즌 개막 후 처음 성사된 트레이드였다. 심광호는 지난해부터 보이지 않게 트레이드 루머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때마침 삼성은 포수가 급했다. 진갑용의 백업포수로 활약이 기대된 현재윤이 지난달 18일 두산과의 시범경기에서 홈으로 돌진하던 유재웅과 정면으로 충돌, 쇄골이 부러지는 중부상을 당했다. 삼성은 개막 후 6경기에서 팀의 36이닝 중 35이닝을 진갑용 홀로 책임졌다. 현재윤은 전반기에 출장이 어려워졌다. 때마침 한화도 내야수가 필요했다. 한화 김인식 감독은 4일 KIA전을 승리로 이끈 후 트레이드 배경에 대해 “내야수가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갑작스런 트레이드. 데뷔 후 줄곧 한 팀에만 머물렀던 심광호에게는 낯선 일이다. 하지만 심광호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는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삼성이 나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트레이드한 것이다. 좋게 생각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표정은 만감이 교체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심광호는 고교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고교 때 경산에서 좋은 경기를 한 적이 많다. 삼성과 대구에 대한 이미지가 좋다”고 말했다. 한국시리즈에서 악연이 있는 오승환과 한솥밥을 먹게 된 것에 대해서도 “서로 잘 알고 있어 적응하는데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고 웃었다. 심광호는 첫 트레이드를 어색하게 생각했지만, 각오 하나는 확실했다. “당장 주전을 목표로 어떻게 한다기보다는 무조건 팀에 보탬이 되는 것이 목표다. 트레이드된 선수들이 으레 그런 말들을 많이 한다. 하지만 난 정말 이 한 몸을 다바쳐서 팀에 도움이 되고 싶다. 삼성은 좋은 팀이고, 좋은 투수들이 많다. 포수로서 최대한 투수들이 부담을 갖지 않도록 리드하고 싶다”는 것이 심광호의 각오. 그는 자신보다도 3살 많은 진갑용의 백업포수 역할을 맡을 전망이다. 하지만 심광호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 온 몸을 다바쳐 팀에 도움이 되겠다는 각오, 오직 그 하나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