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겨울잠' 깨고 '비상' 시작하나
OSEN 기자
발행 2008.04.07 16: 10

[OSEN=이상학 객원기자] 산전수전 그리고 공중전까지 다겪은 한화 김인식 감독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겉으로만 그랬다. 지난 4일 대전 KIA전에서 뒤늦게 시즌 첫 승을 신고한 후 김 감독 특유의 빨간 볼은 더욱 붉어져있었다. 개인 통산 900승을 돌파한 명장이지만, 1승이 그렇게 참 어려웠다. 김 감독은 “1승이 참 어렵더라. 그래도 선수들한테 내색할 필요는 없었다. 화가 나더라도 참을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화는 지난 주말 KIA와 대전 3연전에서 2승1패를 기록하며 반전 계기를 마련했다. 잔뜩 웅크렸던 독수리는 겨울잠을 깨고 날개를 펼 조짐이다. ▲ 중심타선 부활 KIA와의 주말 3연전에서 가장 고무적인 건 ‘부동의 4번 타자’ 김태균의 부활이었다. 연패 탈출과 함께 김 감독은 “김태균이 생각이 많이 났다”고 털어놓았을 정도였다. 바로 그 다음날 김태균은 삭발을 한 채 복귀했다. 김 감독은 주저하지 않고 김태균을 1군 엔트리에 등록한 첫 날부터 4번 타자 겸 1루수로 선발출장시켰다. 김태균은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오른쪽 옆구리 부상 부위에 테이프를 둘둘 감쌌다. 표정은 결연했다. 김태균은 “팀 연패에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복귀 첫 날부터 KIA 윤석민을 상대로 중월 홈런포를 쏘아올리며 속죄포를 날렸다. 김태균은 주말 2경기에서 8타수 3안타, 타율 3할7푼5리·1홈런·4타점으로 제 몫을 톡톡히 했다. 5일 경기에서는 홈런포를 터뜨렸고 이튿날에는 결승타 포함 4타수 2안타로 멀티히트를 기록했다. 김인식 감독은 6일 경기를 승리로 장식한 후 “역시 김태균이가 들어온 게 크다”고 반색했다. 김태균뿐만이 아니다. 외국인 타자 덕 클락도 타율 3할3푼3리·1홈런·5타점·5볼넷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일 KIA전에서는 시즌 첫 도루까지 성공시켰다. 지명타자로 5번 타순을 꿰찬 이영우도 8경기에서 타율 3할4리·1타점·5볼넷으로 부활 가능성을 엿보였다. 여기에 6번 타자 이범호가 있다. 좌우좌우로 이어지는 ‘지그재그’ 타선 구성을 위해 6번 타순에 배치됐지만, 실상은 중심타자라 할 수 있다. 김태균과 함께 장종훈 타격코치로부터 집중지도를 받고 있는 이범호는 최소한의 목표로 타율 2할8푼을 설정했다. 2할8푼, 지금 딱 이범호의 타율이다. 홈런은 3개로 카림 가르시아(롯데)·박재홍(SK)과 함께 공동 1위. 이범호는 지난 2006년에도 6번 타자로 좋은 활약을 했다. 이영우가 5번 타자로 꾸준한 활약을 이어간다면 한화는 클락-김태균-이영우-이범호로 이어지는 공포의 좌우좌우 중심타선을 구성하게 된다. ▲ 달라진 스타일 김인식 감독은 “요즘 소설을 너무 많이 쓴다. 빅볼이고 스몰볼이고 야구에 그런 것이 어딨는가”라고 반문했다. 어쨌든 한화는 대세를 따르지 않고도 좋은 성적을 낸 거의 유일한 팀이다. 지난 몇 년간 프로야구에는 희생번트를 중심으로 한 작전과 기동력을 바탕으로 한 스몰볼이 떴다. 하지만 한화는 특유의 장타력을 앞세워 3년 연속으로 플레이오프 진출하는 성과를 냈다. 한화는 지난 3년간 희생번트가 185개로 8개 구단 중 가장 적은 팀이었다. 대신 홈런이 371개로 가장 많았다. 물론 도루도 175개로 지난 3년간 가장 적게 했다. 적어도 지난 3년간 한화는 전형적인 빅볼을 구사했다. 하지만 올해 한화는 조금씩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단 도루가 늘어났다. 홈런과 도루가 6개로 같다. 도루를 7번이나 시도해 딱 1번밖에 실패하지 않았다. 도루성공률이 85.7%로 리그 전체 1위에 올라있다. 한화의 도루는 허를 찌르는 일이다. 지난달 29일 개막전에서 3회말 신경현이 도루를 시도하자 롯데 포수 강민호는 전혀 예상치 못한 듯 어물쩍거리다 저지에 실패했다. LG에서 방출돼 한화 유니폼을 입은 새로운 톱타자 추승우가 도루를 2개나 성공했으며 클락·고동진·김수연이 도루를 하나씩 기록했다. 루상에서 적극적으로 달리고 훔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한화 특유의 고유한 스타일은 불변이다. 개막 후 8경기에서 희생번트가 단 하나도 없었다. 8개 구단 가운데 아직도 희생번트를 대지 않은 팀은 한화가 유일하다. 장타에 의존하는 팀 스타일 때문에 한화는 1점차 승부에 약하다는 인상이 강하다. 올 시즌 역시 한화는 1점차 승부에서 3전 전패했다. 하지만 타선의 힘이 부족했다기보다 마운드가 일찌감치 무너지거나 불을 저지른 탓이 컸다. 희생번트가 아니더라도 득점권 찬스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한화는 터득했다. 한화는 그렇게 패하고도 총 32득점으로 이 부문에서 3위에 올라있다. ▲ 마운드가 관건 김인식 감독의 고민은 타선보다 마운드에 있었다. 김 감독은 “타선은 오르막도 있고, 내리락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마운드는 그렇지 않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김 감독은 캠프에서도 마운드를 구성하느라 애 먹었다. 대개 캠프에서 투수 보직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으로 그려놓고 떠나지만 올해 한화는 그렇지 못했다. 김 감독은 “둘 다 잘해서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이것저것 부족한데도 자리가 남아 어쩔 수 없이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하나씩 부족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쪽수가 너무 부족하다”고 번민의 날을 떠올렸다. 물론 번민과 고민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단 ‘미래의 원투펀치’ 류현진과 유원상이 김 감독의 고민을 조금 덜어주었다. 류현진은 연패 사슬을 끊은 4일 KIA전에서 올 시즌 프로야구 1호 완투를 기록하며 팀을 직접 위기의 구렁텅이에서 구해냈다. 유원상은 KIA와의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6⅔이닝 무실점으로 시즌 첫 승을 따냈다. 김 감독은 두 선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류현진에게 당근보다 채찍을 아끼지 않고 있지만 꾸준히 1선발로 내보내고 있다. 5일 간 휴식도 세심히 조정하고 있다. 유원상에 대해서도 “첫 등판도 괜찮았다. 틀이 잡혀가고 있다”고 호평했다. 제2선발 정민철이 다소 부진하지만 그래도 믿음이 있다. 문제는 불펜 쪽이다. 마무리로 데려온 브래드 토마스는 공은 빠르지만, 제구는 꽝이다. 김 감독은 “볼이 자꾸 높게 형성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유보했다. 불펜은 실질적으로 안영명을 제외하면 믿을 만한 투수가 없는 실정이다. 김 감독은 결국 부상선수들을 기다리고 있다. 문동환과 구대성이 바로 그들이다. 특히 문동환은 조만간 1군으로 복귀할 예정이다. 문동환이 복귀, 선발진의 한 자리를 꿰차면 윤규진이나 송진우를 불펜으로 돌려 중간을 두텁게 할 수 있다. 구대성의 복귀는 뒷문 안정으로 이어진다. 한화의 시즌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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