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영화도 충무로 답게 만들고 싶다. 아니 더 뛰어난 영화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 8일 오후 '장감독 VS 김감독'의 기자간담회가 끝난 뒤 가진 인터뷰에서 한 김정우 감독의 말이다.
영화 ‘구세주’와 ‘최강로맨스’를 연출한 김정우 감독은 영화‘라이터를 켜라’ ‘불어라 봄바람’ 등을 연출한 장항준 감독과 함께 각각 케이블 영화 2편씩을 제작, 국내 최초 무비 배틀이라는 이례적인 시도에 나섰다.
두 사람은 스크린뿐만이 아니라 케이블 영화 채널 OCN을 통해서도 동시에 상영한다. 결국 관객수와 시청률을 놓고 대결을 벌인다.
최근 형식은 다르지만 이 같이 충무로 영화감독들의 케이블로 향한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박수칠 때 떠나라’ ‘다섯개의 시선’등을 연출한 장진 감독은 지난 1일 OCN에서 4분짜리 3부작으로 구성된 스페셜 단편극 ‘U-Turn’ 을 선보였고, 8일부터 E채널에서 전파를 탄 ‘기담전설’은 10인의 영화감독이 함께 해 화제를 모았다.
‘천군’을 연출한 민준기 감독과 ‘투사부일체’ ‘마이파더’의 조감독이었던 이정우 감독을 비롯,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세븐데이즈’의 김성관 조명감독과 ‘극락도살인사건’ ‘라디오스타’의 동시녹음기사 강성봉 등 화려한 충무로 스태프가 참여했다.
OCN 관계자는 이를 두고 “비단 오늘 내일의 문제가 아닌데 최근 들어서 그 양상이 확연히 눈에 띄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영화감독들의 이 같은 케이블 진출은 2000년대 중반 케이블 TV의 성장과 함께 눈에 띄게 늘어났다. 봉만대 감독이 지난 2005년 ‘TV영화’라는 장르로 선보인 ‘동상이몽’ 이후, ‘알포인트’의 공수창 감독과 여러 독립 영화감독들이 함께한 옴니버스 공포물 ‘코마’를 비롯해 ‘색시몽’ ‘이브의 유혹’ ‘정조암살미스터리 8일’등 충무로 감독이 연출한 많은 케이블 영화들이 있어왔다.
영화업계에서는 최근 이처럼 영화계 감독들이 TV로 이동하는 현상을 놓고 영화계의 불황과 케이블TV의 자체제작 붐이 맞물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일반 상업영화에서는 시도할 수 없는 장르들이 케이블에서는 가능하다는 점이다.
제작사 입장에서도 케이블TV 영화는 지상파에 비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제작비나 위험부담을 줄일 수 있어 매력적인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반면 혼란스러움도 존재한다. 케이블의 경우 시청률을 목적으로 자극적인 소재를 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김정우 감독은 이날 자리에서 "브라운관으로 오니 ‘섹시코드’가 필요하더라"는 말을 했다. 그는“자정이 넘긴 시간 케이블 주 시청자층는 30대 남성이다. 할 수 없이 시청률을 위해선 선정성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며 영화에 섹시한 장면을 넣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김 감독은 “케이블 영화하면 배우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이 상징적으로 생각하시는 것들이 존재하더라”고 운을 뗀 뒤 “하지만 충무로 영화 10분의 1수준인 예산으로 얼마든지 충무로 영화보다 더 뛰어난 영화를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무비배틀을 통해 보여주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영상콘텐츠의 중요성과 관련 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다양한 차원의 영화적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은 충분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 목적이 장르적 고민이 아닌 국내 영화 시장의 침체를 뚫기 위한 돌파구로서의 방편에 있다면 영화감독들의 케이블화는 매체간 교류가 아닌, 불가피한 선택이 될 여지도 있다. 영화 관계자들은 이 같은 고민을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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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준 감독이 연출한 '전투의 매너'와 김정우 감독이 연출한 '색다른 동거'의 한 장면(위). 아래 사진은 '유턴'과 '기담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