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차승-류제국, 한밤중 빅리거들의 수다
OSEN 기자
발행 2008.04.11 07: 01

[OSEN=탬파, 김형태 특파원] "이게 얼마 만이야. 1년 만이네". 칠흙같은 탬파의 밤하늘 아래에서 두 명의 건장한 청년들이 조우했다. 백차승(28.시애틀 매리너스)과 류제국(25.탬파베이 레이스). 각각 소속팀 불펜에서 활약하는 이들이 지난해 5월 이후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여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이야기 꽃을 피웠다. 이날 만남은 '절묘한 타이밍' 덕분에 가능했다. 10일(한국시간) 류제국이 메이저리그 구단에 합류하면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시애틀이 1년에 한 두번 밖에 없는 탬파베이 원정을 온 시점에 류제국은 빅리그의 호출을 받았다. 트로피카나필드 야간 경기를 마치고 이들은 탬파의 한 식당으로 이동, 늦은 저녁을 먹었다. 소갈비와 닭갈비 돌솥비빔밥과 떡볶이 등을 놓고 신나게 떠들었다. 마침 팀에 합류하자마자 등판한 류제국이 호투한 뒤여서 분위기는 더욱 밝았다. "형, 그거 아이폰 아냐? 이렇게 좋은 걸 가지고 다녀? 나도 바꾸고 싶어". 활달한 성격의 류제국이 먼저 입을 열자 과묵한 백차승은 웃었다. "아이폰을 쓰고 싶으면 통신회사를 바꿔야 해. 아이폰은 AT&T 독점이라더라". 직업은 못속인다. 곧바로 야구 얘기가 이어졌다. "선발만 하다가 중간계투로 대기하니까 쉽지 않더라. 등판 간격이 들쭉날쭉해서인지 투구감을 잡기가 쉽지 않아. 지난번 볼티모어전은 8일 만에 던진 거였어. 공이 제대로 가겠나. 그리고 지금까지 5일 동안 또 기다리고만 있지". "나도 선발로 나서고 싶은데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르겠어. 감독은 다음 선발을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하던데 기다려 봐야지. 그러고보니 2년 전 시카고 컵스에서 딱 한 번 선발로 등판한 다음 계속 불펜에서만 나왔네". "오늘 잘 던졌더라. 팀에 합류해서 바로 던졌는데도 잘 막았어". "사실 수비 도움도 받았어. 3루수 윌리 아이바가 안타성 타구를 잘 처리해줬잖아. 9회 1아웃 1루에서 더블플레이가 성공했어야 했는데. 그래도 걱정은 없었어. 다음 타자가 '막스윙'하는 리치 섹슨이었거든. 결국 삼진으로 끝냈잖아". "형 우리팀에 내 '후견인'이 하나 있다. 뉴욕 양키스에서 벤치코치를 오래한 돈 짐머 할아버지가 우리팀 고문이잖아. 그런데 회의 때면 항상 'JK(류제국의 팀내 애칭)를 선발로 기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데.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나를 귀엽게 봐준 것 같아. 평소 짐머 할아버지만 보면 인사를 잘했더든". "그나저나 불펜이 확실히 선발보다는 쉽지 않은 것 같아. 1년 내낸 등판을 준비해야 하는 것도 그렇고. 트레버 호프먼 같은 선수는 어떻게 선수 생활 내내 마무리만 했지(샌디에이고 마무리 호프먼은 빅리그 16년간 등판한 868경기 중 선발 경험은 한 번도 없다)". "호프먼 정도면 자기 만의 노하우가 있을 거야. 그리고 그 정도 경력의 베테랑이면 5회 이전에는 클럽하우스에서 나오지도 않아. TV 보면서 놀다가 경기 후반 쯤에 나와서 상황을 지켜보지. 우리 같은 '쫄병'들이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밖에서 기다리지만". "한 번은 이치로가 나한테 심각한 표정으로 묻더라. '두렵지 않냐'고. 뭐가 두려우냐고 물으니 '현지 기자들과 영어로 인터뷰하는 게 두렵지 않냐'고 하데. 그래서 컨디션이 어떻고, 오늘은 뭐가 좋았다고 내 생각을 확실히 말하면 된다고 했지. 일본 선수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이치로도 아직까지 통역을 두고 있거든. 이치로가 나한테 물어본 것은 아마 빈틈을 보이기 싫어하는 일본 선수 특유의 성향 때문일 거야. 혹시 말실수를 하면 파장이 있을까봐 걱정하는 것일테지". "형 웬지 모르겠는데. 우리 팀 선수들은 나만 보면 즐겁나봐. 메이저리그 호출 받아서 간다니까 더램(탬파베이 산하 트리플A) 애들이 '앞으로 심심해서 어떻게 사냐'고 아쉬워 하더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나만 보면 그렇게 웃긴데. 이유를 모르겠어. 내 말투가 그렇게 재미있나?". 도란도란 얘기가 진행되자 어느덧 테이블 위의 음식 그릇이 깨끗해졌다. 시간 가는줄 모르고 수다를 떨자 밤 12시가 훌쩍 넘었다. 다음날 낮 경기를 위해 자리를 떠야 할 시간. 탬파 3연전이 끝나면 백차승은 선수단과 함께 곧바로 시애틀로 이동한다. 밖으로 나오자 탬파 시내는 쥐죽은 듯 고요했다. "함께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자"는 다짐을 하고 이들은 세인트피터스버그의 숙소로 함께 떠났다. 다시 만날 그날을 기약하면서. workhors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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