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태(38.KIA)가 '100승 투수 이적 잔혹사'를 끊을 것인가. 우리 히어로즈에서 자유계약선수로 방출을 자청, KIA 유니폼을 입은 100승 투수 정민태가 첫 출격한다. 오는 18일 광주 한화전에 선발 등판, 이적 신고를 한다. 정민태 개인에게도 중요하고 팀에도 아주 중요한 경기이다. 호투를 한다면 재기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팀은 메이저리그 출신 선발 호세 리마가 불안한 가운데 선발진은 새로운 동력원을 얻을 수 있다. 정민태가 경험이 풍부한 고참투수로 이대진과 함께 선발진에서 자리잡는다면 유형무형의 힘이 생긴다.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는 정민태가 '100승 투수 이적 잔혹사'를 고쳐 쓸 수 있느냐다. 프로야구 출범 이후 100승을 올린 투수가 이적한 이후 모두 부진했기 때문이다. 물론 100승 투수 이적생들은 많지 많았다. 김시진 조계현 이강철 뿐이었다. 가장 처음 100승 이적생은 김시진(전 현대유니콘스 감독)이었다. 그는 삼성시절인 지난 88년 말 롯데로 트레이드됐다. 당시 111승(49패)을 올리고 있던 삼성의 간판투수였다. 그러나 선수협회 파동을 일으킨 최동원과 맞트레이드돼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나이는 만 30세. 그러나 이후 92년까지 4년 동안 13승(24패)에 그쳤고 유니폼을 벗었다. 100승은 아니었지만 롯데에서 96승(45패)을 따내고 삼성 유니폼을 입은 최동원(한화 2군감독)은 89년, 90년 2년 동안 9승(7패)을 올리고 은퇴했다. 최동원 역시 만 30세에 이적했지만 워낙 선발 중간 마무리 관계없이 많이 던졌기 때문에 전성기는 지나 있었다. 아쉽게도 두 투수는 당시 불펜이나 소방수 개념이 없었던 시대의 투수였다. 등판 간격도 지금처럼 4일 또는 5일이 아니었다. 시도 때도 없이 마운드에 올랐고 세심한 관리를 받지 못했다. 지금이면 최전성기라고 말할 수 있는 30세에 이적했지만 결과적으로 단명하게 되는 이유가 됐다. 최동원의 지난 84년 한국시리즈 4승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김시진 이후 100승 투수 이적생은 싸움닭 조계현(삼성 코치)이었다. 그는 89년부터 97년까지 106승(70패)를 올린 해태의 간판투수였다. 97시즌을 마치고 삼성으로 현금 트레이드됐고 부진 끝에 두산으로 다시 이적했다. 98년부터 2001년까지 4년동안 18승(22패)를 올렸다. 조계현은 이적 당시 나이는 만 33살로 서서히 지는 해였다. 그래도 두산 시절 2000년 한국시리즈에서 맹활약을 펼치는 등 나름대로 제 몫을 했다. 세 번째 100승 투수 이적생은 특급 잠수함 이강철(KIA 코치). 그는 89년부터 98년까지 10년 동안 무려 132승(96패)를 올린 최고의 서브마린 투수였다. 무릎부상으로 99년을 쉬었지만 FA 자격을 얻어 삼성으로 이적했다. 그러나 부상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2000년 1승4패로 부진했고 다시 KIA로 복귀해 주로 미들맨으로 활약했다. 정민태는 네 번째 100승 이적생이다. 요미우리 시절 2년(2001~2002)을 제외하고 태평양과 후신 현대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124승(89패)을 따냈다. 그의 나이는 38살. 앞선 세 명의 100승 이적생들과 비교하면 나이가 훨씬 많다. 그러나 각별한 몸관리를 해왔기 때문에 상황은 다를 수 있다. 100승 투수들은 이적 후 1년 평균 3승을 따냈다. 승률도 3할1푼6리에 그친다. 승리보다는 패수가 훨씬 많았다. 팀이 그리 보탬이 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정민태는 어떤 성적표를 낼지 궁금해진다. 과연 정민태는 잔혹사를 끊고 새로운 역사를 쓸 것인가. sunny@osen.co.kr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