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 있는 톱타자는 중심타자들에 타점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공격의 물꼬를 튼다. 23일 대구구장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두산 베어스전서 이종욱(28. 두산)과 박한이(29. 삼성)는 1번 타자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다. 이종욱은 이 경기서 4타수 3안타(볼넷 1개) 2득점을 기록하며 팀 승리(7-0)의 교두보를 놓았다. 특히 첫 타석서 상대 배영수의 체인지업을 끊어쳐 중전안타로 만든 것은 칭찬할 만한 타격이었다. 이전까지 다소 큰 스윙을 보여줬던 이종욱은 배영수의 날카로운 체인지업을 톱타자 다운 타격으로 안타로 연결하며 선두타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김경문 두산 감독은 경기 후 이종욱의 활약에 대해 "방망이를 짧게 잡고 잘 커트해내며 투수를 괴롭힌 모습이 좋았다. 최근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어 다행이다"라며 높이 평가했다. 단순히 결과론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타석서의 배팅 자세가 좋았다는 이야기다. 이종욱은 대구 원정 2경기서 9타수 5안타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반면 박한이는 5타수 무안타(삼진 1개)로 최근 6경기 연속안타 행진을 끝내며 후속타자들에 기회를 제공하지 못했다. 3회말 1사 1,2루서 친 우익수 앞 땅볼이 1루주자 김재걸의 주루 플레이 미숙으로 안타로 연결되지 못했던 점도 있으나 이는 우익수 유재웅가 낙구지점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이유가 컸다. 5타석 모두 좋은 모습이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박한이가 5타석에 나서는 동안 상대 투수들이 기록한 투구수는 11개에 그쳤다. 타석서의 빠른 승부가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누상에 주자가 있고 초구부터 볼을 얻은 유리한 상황(3회, 5회)서도 2구 째를 당겨쳐 범타로 물러난 것은 아쉬움이 컸다. 타석서의 긴 준비동작을 갖고도 정작 투수와 대결은 빨리 끝내버렸다. 선동렬 삼성 감독은 "한 경기서 모든 타자들이 4안타를 치고 이기는 걸 바라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라며 혀를 찼다. 선제점 획득을 중요시하고 후반 계투진을 앞세워 지키는 야구를 펼치는 삼성임을 감안했을 때 타선의 선봉이 된 박한이의 부진은 치명적이었다. 1번 타자의 주된 역할은 자주 출루해 득점 찬스를 만드는 것이다. 이종욱의 맹타와 박한이의 침묵. 이들의 엇갈린 활약은 23일 양팀의 승패를 갈라놓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chul@osen.co.kr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