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초반부터 야구판이 후끈 달아올랐다. 그런데 야구 경기 자체에서 느끼는 박진감 때문이 아니다. 야구 경기 외적인 문제가 더 야구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고 있다. LG 김재박 감독의 심상치 않은 발언이 발단이 됐다. 김 감독은 지난 22일 잠실 한화전을 앞두고 SK 2루수와 유격수가 2루 커버 수비에 나설 때 규정에 어긋나는 비신사적인 방법으로 상대 주자를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런 점이 쌓여 지난 19일 잠실 SK전에서 두산 김재호가 2루로 발을 높게 들고 슬라이딩하는 빌미가 됐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 김 감독은 SK의 일본인 수비코치가 그런 것을 가르친 것이 아니냐는 추측성 멘트까지 곁들였다. 그러자 야구계가 이곳저곳에서 크게 요동쳤다. 김 감독의 발언 자체는 차치하더라도 그 말의 진의를 둘러싼 들썩임이었다. SK 구단과 일부 야구인들은 김 감독의 이번 발언을 놓고 크게 세 가지 시각을 드러냈다. 아직 한국야구는 멀었다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언제든 물어봐달라". 23일 경기를 앞두고 덕아웃에서 기자들 앞에 선 SK의 일본인 후쿠하라 미네오 수비코치의 표정에는 자신감과 열의가 넘쳤다. 김 감독의 발언에 대해 조목조목 따지며 설득에 나섰다. 후쿠하라 코치는 직접 시범을 보이며 김 감독의 말을 반박했다. "작년부터 우리들은 2루 베이스에서 도루를 시도하는 상대 주자를 잡기 위해 0.1초라도 줄이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것이 바로 기술이다. 그렇지만 경험이 따르지 못하면 쉽지 않다". 후쿠하라 코치의 설명은 그야말로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것이었다. 빠른 태그를 위해서는 우선 빨리 2루 베이스를 선점해야 한다. 다음에는 공을 잡은 글러브를 최단거리로 주자의 몸에 대야 한다. 이 때 베이스 위의 유격수와 2루수 위치는 포수를 바라본 상태에서 오른발은 포수, 왼발은 우중간쪽에 위치해야 한다. "그렇지만 유격수와 2루수는 한 가지에만 신경쓸 수 없다. 들어오는 주자, 날아오는 공, 베이스 위치를 동시에 파악해야 한다. 여기에는 포수의 공 방향, 스타트 등 여러 가지 요인까지 가미된다. 이것을 완벽하게 소화하기란 쉽지 않다". 이에 SK 전력분석팀 김정준 과장은 "이 모든 것을 다 갖춘 선수는 삼성의 박진만과 KIA의 발데스 말고는 한국에서 보지 못했다"며 "그런 비신사적인 행위를 가르친다면 부상은 우리 선수들이 더 빨리 당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 말은 곧 정상적인 플레이도 경기에서 제대로 써먹기 힘든 판에 무릎으로 가로막는 등의 고의적인 행위를 계속할 수 있다면 박진만, 발데스 만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를 보는 시선은 한국프로야구 수준이 아직 미국이나 일본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 베스트 오브 베스트가 맞서는 국가대항전에서는 수준차가 나지 않을 지 몰라도 각국 리그 수준은 확실히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라는 의견이다. 후쿠하라 코치는 몇차례나 "이기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훈련했다"며 "기술적으로 조금씩 성장해 가고 선수들의 기를 꺾지 말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역시 성적 지상주의'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감독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성적을 내지 못하면 두 말 없이 유니폼을 벗어야 하는 부담을 안은 감독들이 찾는 돌파구 중 하나다. 이런 방법을 통해 자신에게 쏟아질 비난의 여론을 잠시나마 외부로 돌려놓을 수 있다. 시즌 초반이지만 공교롭게도 SK를 직접적으로 공략한 두산 김경문 감독과 LG 김재박 감독은 이런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김경문 감독은 팀 성적(6위)과 함께 안경현, 홍성흔 문제가 불거져 팬들로부터도 미움을 샀다. 김재박 감독은 7위에 머물고 있는데다 작년과 비교해 나아진 모습이 없다는 냉정한 평가를 팬들로부터 받고 있다. '1위팀이 겪는 당연한 견제'라는 관점도 결국에는 성적 지상주의에 귀결된다. '아니면 말고'식의 말은 상대를 흔드는 당연한 기본 전략이라는 것이다. 매년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은 새까맣다"는 감독들의 푸념이 다른 방식으로 터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견해다. 선배 감독에 대한 예의는 어디로 "감독간, 선후배간에 최소한의 예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이 사라진 기분이다". 지난 3월 올 시즌을 앞두고 개최한 미디어데이에서 이광환 감독이 한 말이다. 야구계의 한 인사는 이번 김 감독의 발언에 대해 "야구인들 스스로 뭔가 착각 속에 빠져 있는 것 같다. 밖에서는 옛날처럼 야구인을 그렇게 대단하게 여기지 않고 있다. 그런데 정작 야구인들은 스스로가 아주 높은 지위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감독들의 부정적인 말 한마디가 결국 야구계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것인가"라며 "당장은 이슈가 되고 화제가 돼 관중을 끌어들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야구팬들을 떠나보내고 말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야구인은 "한 번 고정돼 버린 생각은 바꾸기 힘든 것 같다"고 한탄한 뒤 "내가 쏜 화살이 언제가 다시 돌아온다는 걸 다 경험한 사람들이 왜 자신의 직장에 생채기를 내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씁쓸한 웃음을 내보이기도 했다. 물론 선배 감독이라고 해서 무조건 후배 감독들에게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선배 감독도 후배 감독들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도 필요하다. 야구계에서는 김성근 감독이 지난 시절 후배 감독들의 행위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문제를 삼았던 것에 대한 인과응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선후배간에 기본적인 예의가 필요한 한국야구계이다. letmeout@osen.co.kr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