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역대 프로야구에서 신인왕을 수상한 투수는 모두 14명이다. 이 가운데 2년차 시즌에 더 좋은 성적을 낸 투수로는 이승호(SK)·오승환(삼성)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신인 시절과 비교할 때 2년차에 필적할 만한 성적을 낸 투수로는 김건우(MBC)·박정현(태평양)·류현진(한화)이 있다. 그러나 나머지 선수들은 모두 2년차를 맞아 성적이 크게 떨어졌다. 이른바 2년차 징크스였다. 지난해 신인왕에 빛나는 두산 임태훈(20)도 올해 2년차 징크스를 극복하는 것이 지상과제가 됐다. 그러나 올 시즌 초반 임태훈은 부진했다. 25일 경기 전까지 임태훈은 10경기 모두 구원등판했으나 1패 방어율 6.43으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이닝당 출루허용률은 1.36에 달했으며 피안타율도 2할7푼3리로 높았다. 지난 12일 잠실 LG전에서 블론세이브·구원패를 동시에 기록하며 팀 역전패의 주범이 되고 말았다. 김경문 감독은 임태훈에 대해 ‘컨디션에 문제가 있나’라는 질문에 “컨디션이 곧 실력”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많이 맞으면서 성장하는 법”이라며 믿음을 거두지 않았다. 임태훈은 25일 대전 한화전에서 김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임태훈은 8회말 2사 1·3루 위기에서 등판했다. 웬만한 믿음으로는 나올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김태균을 볼넷으로 내보내 만루 위기를 자초했지만, 과감한 직구 승부로 이범호를 4구 만에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내며 위기를 넘겼다. 9회말에도 1사 3루 위기를 야기했으나 신경현-오선진을 연속해 스탠딩 삼진으로 잡아내며 위력투를 펼쳤다. 감히 방망이를 끄집어낼 수 없을 정도로 제구가 잘됐다. 임태훈은 11회말 2사에서 마무리투수 정재훈에게 공을 넘기기 전까지 3이닝 1피안타 1볼넷 4탈삼진 무실점으로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효과적으로 봉쇄했다. 직구 최고 구속은 148km였고, 평균 140km 중반대를 형성할 정도로 빠르고 힘이 있었다. 특히 부진했던 경기들과 달리 공이 낮게 제구된 것이 위력을 발휘했다. 이날 임태훈은 올 시즌 가장 많은 투구이닝을 소화하고, 최다 탈삼진까지 기록했다. 단연 올 시즌 최고의 피칭이었다. 임태훈은 “지금까지 성적이 좋지 않아 죄송했다. 하지만 작년처럼 기본으로 돌아가 초심으로 더 자신있게, 더 열심히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지난해 고졸신인으로 데뷔한 첫 해부터 임태훈은 무려 64경기에 구원등판해 101⅓이닝을 던져 7승3패1세이브20홀드 방어율 2.40으로 위력을 떨치며 당당히 신인왕을 차지했다. 하지만 초심만으로 거둘 수 있는 성적은 아니다. 그만큼 우수한 기량이 뒷받침된 결과물이었다. 이날 경기 전 김경문 감독은 “프로에서 영원한 제자리는 없다. 부진하면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프로는 이름이 아니라 실력으로 말한다. 우리팀에서는 특히 젊은 선수들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이 컸다. 이들의 부진의 이유가 해이해졌는지, 부상이 있는지 아니면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알아야 하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적어도 김 감독의 눈에 임태훈은 해이해진 선수는 아니었다. 임태훈은 이날 등판으로 이를 증명했다. 2년차 징크스도 무난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바로 여기서 비롯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