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진화할 뿐
OSEN 기자
발행 2008.04.30 07: 04

세월이 흐르고 강산이 바뀌어도 사람들에게 변함없이 사랑 받는 캐릭터가 ‘바보’다. ‘바보’들은 시청자들에게 친근함으로 다가와 웃음을 선사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해 준다. 바보들이 웃음만을 전달한 것은 아니다. TV에서 쉽게 표현하기 힘든 사회 부조리나 권위에 도전하고 비틀어주는 역할을 하며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때문에 대중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오락거리인 TV 속에는 각 시대를 대변해 해학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해주는 대표 바보들이 존재했다. 1970년대, 바보 캐릭터의 시초이자 시대의 비극 ‘여로’ 영구 바보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영구는 1970년대 방송된 국민적인 드라마 ‘여로’의 남자 주인공이다. 1972년 방영된 ‘여로’는 70%의 경이로운 시청률을 기록했다. 당시 전국적으로 TV가 보급되는데 큰 역할을 할 만큼 범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주인공 영구(장욱제 분)와 그의 아내 분이(태현실 분)은 시대가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일제 강점기부터 5.16까지 배경으로 하는 이 드라마에서 분이는 가난 때문에 돈에 팔려 바보 영구와 결혼해 굳은 집안일과 모진 시집살이를 견디면서도 남편을 극진히 보살폈다. 분이는 격동기를 살아온 대한민국의 강인한 여성상을 묘사했으며 영구를 통해 그녀의 비극도 웃음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영구는 주변 상황과 관계없이 슬플 때 울고 기쁠 때 웃으며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사람들은 영구를 보면서 억눌렀던 감정을 분출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천재 코미디언 바보 심형래가 평정 영화감독으로서 심형래에 대한 평가는 분분할 수 있지만 코미디언으로서 그의 재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KBS 1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그는 ‘여로-영구’를 패러디해 영원한 개그 캐릭터 ‘영구’를 만들었고 ‘띠리리리리’ ‘영구 없다’ 등의 유행어를 남겼다. 심형래는 ‘유머 1번지’ ‘쇼 비디오자키’ 등에서 슬랩스틱 코미디의 진수를 선보였을 뿐만 아니라 ‘영구와 땡칠이’ ‘영구와 황금박쥐’ 등 영구 시리즈 영화로 흥행 배우로도 우뚝 섰다. 과거 코미디가 요즘의 그것과 가장 다른 점은 단순히 웃음만 주는 것이 아니라 풍자와 해학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심형래의 영화에서 악당을 물리치는 것은 항상 바보 영구와 아이들이었다. 권위적이기만 한 어른들에 대한 조롱과 풍자를 엿볼 수 있다. 1990년대, 대한민국을 웃긴 바보 콤비 맹구와 오서방 ‘개그콘서트-봉숭아 학당’의 원조인 ‘한바탕 웃음으로-봉숭아 학당’은 맹구(이창훈 분)와 오서방(오재미 분)이 대표적인 캐릭터였다. 지금 보면 유치하고 촌스러울 것 같은 유머지만 당시 맹구와 오서방의 인기는 ‘개그콘서트’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드높았다. ‘하늘에서 눈이 내려와요~’ ‘선생님 저요, 저요, 저요’ ‘배트맨’ 등 우스꽝스럽게 얼굴을 변형시키며 맹구가 만든 유행어 한번 안 따라해 본 사람이 없었다.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바보 맹구와는 달리 오서방은 과묵한 바보였다. 맹구의 바보 놀음에 맞장구를 쳐주면서 웃음을 배로 만들었고 서로의 캐릭터가 너무 튀지 않고 자연스러운 웃음을 만들 수 있도록 추임새를 넣어주었다. 2000년대, 과장 사라지고 변화한 모습을 대변하는 정준하 요즘엔 시대를 대변하는 바보 캐릭터를 보기 힘들다. 개그맨들이 코미디뿐만 아니라 MC, 연기, 가수까지 하는 경우가 많아 바보 이미지가 굳어버리면 연예활동 하는데 큰 제약이 따른다. 개그맨뿐만 아니라 모든 연예인들이 특정 이미지에 자신을 가둬버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된 ‘바보 캐릭터’로 사랑 받고 있는 사람이 정준하다. 정준하는 MBC ‘코미디 하우스-노브레인 서바이벌’에서 문천식과 함께 바보로 등장해 인기를 얻었다. 정준하와 문천식은 과거 바보 캐릭터가 몸짓으로(슬랩스틱) 웃긴 것과 달리 말로 웃음을 전했다. 또 ‘무한도전’에서는 어눌하고 조금 부족한 모습을 보여 시청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갔고 SBS 드라마 ‘우리 집에 왜 왔니’에서는 7살 지능을 가진 정신지체아의 모습을 리얼하게 연기해 호평 받고 있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바보는 과장된 모습이 아니라 평범한 모습에서 발견되는 허점을 매력으로 한다. miru@osen.co.kr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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