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스러운 류현진, 사상 최고의 괴물
OSEN 기자
발행 2008.05.01 08: 11

[OSEN=이상학 객원기자] 영화계에서는 전편만한 속편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속설을 깬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그 유명한 시리즈였다. 는 ‘전편을 능가하는 최고의 속편’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러나 16년 후 등장한 는 뛰어나지만 1·2편과는 비교될 수가 없다는 혹평을 받았다. 아무리 시리즈라 할지라도 3편까지는 작품성을 이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프로야구의 괴물은 전편만한 속편에 이어 3부까지 흥행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사상 최고의 괴물, 바로 한화의 ‘괴물 에이스’ 류현진(21)이 주인공이다. 류현진은 데뷔 66경기에서 40승을 달성했다. 프로야구 사상 가장 빠른 기간에 거둔 40승이었다. 공포스러운 괴물 3편 어이가 없을 정도로 놀랍다. 2006년 류현진은 데뷔 첫 해부터 30경기에 등판해 18승6패1세이브 방어율 2.23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남기며 프로야구 사상 첫 MVP-신인왕 동시석권이라는 대업을 이루었다. ‘2년차 징크스가 시작될 것’이라던 지난해에도 30경기에 선발등판, 17승7패 방어율 2.94로 변함없이 괴물스러운 피칭을 거듭했다. 2년차 시즌에는 오히려 전 시즌(201⅔)보다 투구이닝(211)이 9⅓이닝이나 더 늘어났다. 류현진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경외감마저 흘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데뷔 후 2년간 국내외에서 무리한 투구를 한 만큼 한 번쯤 고비가 찾아올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류현진은 지난 3월초 베이징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부진을 거듭하고, 시범경기와 시즌 개막전에서도 기대이하 투구내용으로 우려를 샀다. 여기저기서 류현진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한화 김인식 감독은 정신자세와 체중을 지적했고, 지난 2년간 무리한 투구의 후유증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류현진은 바로 다음 등판에서 올 시즌 프로야구 1호 완투승을 거두며 주위의 우려 가득한 시선을 잠재우더니 이후 4승을 더 추가했다. 개막전 패배 후 5연승. 단숨에 다승 부문 공동 1위로 올라섰으며 방어율 5위(2.52), WHIP 3위(1.14), 투구이닝 3위(39⅓), 탈삼진 2위(30개) 등 투수 주요 부문에서 모두 상위권으로 발돋움했다. 세부기록에서도 류현진은 단연 돋보인다. 2006년 류현진이 기록한 방어율(2.23)·WHIP(1.05)·피안타율(0.211)·투구이닝(201⅔)은 최정상급 투수들만이 기록할 수 있는 성적이었다. 2007년에도 방어율(2.94)·WHIP(1.25)·피안타율(0.251)·투구이닝(211)은 전해보다는 떨어졌지만 정상급 수준이었다. 오히려 기록에서 나타나지 않는 완급조절 및 위기관리능력이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 시즌에도 마찬가지다. 류현진의 방어율은 변함없이 2점대(2.52)이고, 이닝당 출루허용률(1.14)도 최소화하고 있다. 피안타율은 아예 2할밖에 되지 않는다. 선발등판시 평균 투구이닝도 6.56이닝. 야구판 괴물은 속편을 거듭할수록 흥행성에다 작품성까지 갖추고 있다. 무엇이 또 달라졌나 류현진은 지난해부터 완급조절에 맛을 들였다. 데뷔 첫 해였던 2006년 류현진은 좌완으로서 최고 150km 가까운 빠른 공으로 승부하는 전형적인 파워피처였다. 당시 선발투수임에도 불구하고 9이닝당 탈삼진이 무려 9.1개에 달했다.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하지만 이듬해 류현진은 2년 연속 탈삼진왕을 차지했지만 9이닝당 탈삼진은 7.6개로 다소 떨어졌다. 그리고 올 시즌 류현진의 9이닝당 탈삼진은 6.9개까지 떨어졌다. 그 대신 맞혀잡는 재미에 푹 빠졌다. 류현진은 “삼진보다 맞혀 잡고 싶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고 있다. 하지만 류현진은 “위닝샷을 던질 때에는 빠른 공으로 승부한다”고 말했다. 주자가 있는 상황만큼은 탈삼진이 최고 해결책이다. 류현진은 이제 겨우 3년차이지만 마운드에서는 30년 된 능구렁이처럼 승부하고 있다. 류현진은 체인지업뿐만 아니라 슬라이더로도 완급조절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지난달 30일 대전 SK전에서 류현진의 투구 분석표에는 121~124km 커브가 표시돼 있었다. 하지만 경기 후 류현진은 “커브를 던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류현진은 “슬라이더를 커브처럼 느리게 던졌다”고 이를 설명했다. 슬라이더도 빠른 것과 느린 것으로 분류해 던진 것이다. 고속 슬라이더만큼 느린 슬라이더로 타자들의 타이밍을 모조리 빼앗았다. 타자들을 삼진으로 처리할 때에도 변화구로 카운트를 잡은 뒤 몸쪽으로 승부하거나 반대로 직구로 카운트를 잡고 변화구로 헛스윙을 유도해냈다. 위기에서 대처하는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30일 SK전에서 류현진은 두 차례나 1사 만루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3회초에는 몸쪽 낮은 직구 승부로 박재홍의 내야 땅볼을 유도해 5-4-3 병살타를 이끌어냈다. 6회초에는 정상호를 3루 파울플라이로 처리한 뒤 나주환을 헛스윙 삼진으로 잡았다. 류현진은 “3회에 병살타를 유도한 만큼 6회에는 병살보다 삼진을 잡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상황에서 같은 방법보다는 또 다른 방법으로 타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바로 정교한 제구가 이루어졌기에 가능했다. 과감한 몸쪽 승부는 이날 경기의 백미였다. 지난해 준플레이오프 직후 삼성 선동렬 감독은 류현진에 대해 “어린 투수지만 위기관리능력이 정말 좋다. 구위도 좋지만, 제구력은 더 좋다”고 극찬했다. 당시 15차례 득점권에서 류현진은 탈삼진만 무려 9개나 잡아냈다. 득점권 피안타율은 1할3푼3리. 하지만 올 시즌 류현진의 득점권 피안타율은 단기전이었던 준플레이오프보다도 더 뛰어난 1할1푼5리밖에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류현진은 마무리투수가 아니라 선발투수다. 30일 경기 승리 후 김인식 감독도 “류현진이가 사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데에도 상대에 점수를 덜 줬다. 그래서 이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진정한 에이스 면모 30일 승리는 거칠 것 없이 질주하던 SK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한판이었다. 사실 류현진은 지난해 SK를 상대로 2패 방어율 7.94로 매우 부진했다. 최고의 상승세를 타고 있는 팀이자 지난해 재미를 보지 못한 팀을 상대하느라 한수 접고 들어갈 수 있었지만 류현진은 달랐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SK 타자들을 눌러앉혔다. 류현진은 최근 상승세의 SK를 상대로 지난해 부진했지만 전혀 부담이 없었다. “그런 건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예전에 못 던졌다고 계속해서 못 던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항상 이긴다는 생각으로 던진다”는 것이 류현진의 말이었다. 에이스라면 물러섬이 없어야 한다. 류현진은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류현진은 그라운드 안팎에서 ‘에이스’ 면모를 쌓아가고 있다. 류현진은 ‘맞혀잡는 피칭을 하는 이유’에 대해 “야수들이 힘들지 않게 빨리빨리 끝내고 싶다”고 답했다. 투수는 마운드 위에서 혼자다. 그러나 그 뒤에는 7명의 수비수가 있다. 류현진은 그들을 믿고 또 배려했다. 또한, 이날 경기에서 류현진은 3회 3루수 이범호의 송구실책이 빌미가 돼 1실점했다. 공수교대 후 덕아웃에 앉아있는 이범호의 표정은 시들어 버린 꽃처럼 시무룩했다. 하지만 류현진은 그런 이범호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이범호의 표정은 금새 밝아졌다. 류현진은 “(이)범호형이 실책한 것을 미안해 해 다음에는 홈런을 쳐달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범호는 홈런을 치지 않았지만 대신 김태완이 5회초 1사 후 김강민의 우익수쪽 타구를 다이빙캐치로 잡았다. 사실 다이빙이 필요 없는 타구였다. 타구방향을 잘못 잡은 김태완의 수비는 불안했다. 하지만 류현진은 웃음과 하이파이브로 김태완을 맞이했다. 3년차가 아닌 13년차 베테랑의 모습이었다. 경기 후에도 류현진은 “내가 잘했다기보다는 타자들이 점수를 많이 내줘 편하게 던질 수 있었다”고 공을 돌렸다. 실제로 류현진이 등판한 6경기에서 한화는 경기당 평균 6.0득점을 올렸다. 하지만 류현진이 잘 던졌기에 타자들도 힘을 낼 수 있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류현진과 한화의 궁합은 딱이다. 올 시즌 류현진은 코칭스태프로부터 철저히 관리받고 있다. 철저하게 5일 휴식 후 선발등판 일정을 거쳤다. 2006년 데뷔 첫 해 류현진은 4일 쉬고 선발등판한 경우가 무려 10차례나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후반기부터 5일 휴식 후 선발등판하고 있다. 시즌 초반에도 류현진은 팔꿈치 상태가 좋지 않아 선발 일정을 뒤로 미루기도 했다. 이후 한화 코칭스태프는 류현진의 투구수를 100개 이하로 못 박았다. 류현진의 상태도 많이 나아졌다. 시즌 초에만 하더라도 “참을만하다”고 말하던 류현진은 “팔꿈치가 아프지 않다. 밸런스도 좋아졌다. 살도 찌지 않았다. 안 좋은 건 없다”고 웃어보였다.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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