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이상고온으로 더운 요즘, 롯데의 초반 상승세를 이끌었던 카림 가르시아가 야구장을 찾은 팬들에게 시원한 헛스윙으로 선풍기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외국인선수 판도도 바뀌고 있다. 올 시즌 최고의 외국인선수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바로 한화의 좌타 외야수 덕 클락(32)이다. 댄 로마이어, 제이 데이비스, 제이콥 크루즈로 이어지는 한화표 외국인 타자 성공 스토리는 클락의 영입으로 정점에 다다랐다. 가공할 만한 클락 효과는 한화 전체를 확 바꿔놓았다. 시즌 전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팬들의 눈을 주목시켰다. 진정한 스타들은 원래 조용히 등장해 서서히 빛을 보는 법이다. 로또가 아니다 지난해 한화에서 활약한 제이콥 크루즈(삼성)는 리그에서 다섯손가락에 꼽히는 특급 타자였다. 그러나 후반기부터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장타력이 실종됐고 지명타자로만 출장해 수비에서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한화는 결단을 내렸다. 크루즈와 재계약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무턱대고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이미 한화의 영입 리스트에는 클락의 이름이 있었다. 클락은 2007시즌 전 한화가 크루즈 전 영입을 시도한 선수였다. 그러나 클락이 메이저리그 도전을 이유로 고사해 일이 틀어졌다. 1년 뒤 한화는 이고초려 끝에 클락을 모셔올 수 있었다. 결코 로또가 아니었다. 사실 마이너리그 시절 객관적인 타격 기록만 놓고 볼 때에는 특급 수준은 아니었다. 31살까지 마이너리그에서 전전하다 한참 어린 선수들에게 ‘아버지’로 불릴 정도였다. 하지만 수비와 주루 하나는 좋았다. 한화가 기대한 부분도 바로 이 같은 대목이었다. 타격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수비와 주루에서 확실한 도움이 되길 기대했다. 한화 김인식 감독도 “타격은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와이 전지훈련에서도 클락보다는 광속구를 뿌려대던 브래드 토마스가 각광받았다. 시범경기에서도 클락은 3홈런·8타점을 기록했지만 37타수 10안타로 타율은 2할7푼밖에 되지 않았다. 도루도 1개를 시도해 실패한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클락은 자세부터 남달랐다. 시범경기 때부터 상대 투수마다 스스로 메모하고 분석하며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김인식 감독도 시즌 전 클락에 대한 우려가 나오자 “아직 기대에는 못 미친다. 투수가 속이는 볼에 방망이가 기다리지 않고 너무 쉽게 나간다. 타격에서 크루즈보다는 떨어진다”면서도 “스스로 상대 투수마다 메모하고 분석하면서 익숙해지려는 모습은 좋다. 앞으로 차차 나아지지 않겠나”라고 기대했다. 시범경기부터 시즌 초반은 클락에게 어디까지나 적응과정이었다. 장종훈 타격코치도 “처음에는 클락이 잘할 수 있을지 우려를 많이 했는데 적응할 때까지 믿고 기다린 결과가 좋게 나왔다”고 설명했다. 사실 시즌 초반 부진도 말 그대로 잠깐이었다. 롯데와의 개막 2연전 무안타가 부진의 전부. 이후 클락은 단 한 차례도 2경기 연속 무안타를 기록하지 않고 있다. 5툴 플레이어 9일 현재까지 클락의 기록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올 시즌 35경기 모두 선발출장한 클락은 136타수 43안타, 타율 3할1푼6리·9홈런·27타점·37득점·11도루를 기록하고 있다. 타격은 12위지만 홈런은 공동 1위, 타점은 3위, 득점은 1위다. 심지어 도루까지 전체 6위에 랭크돼 있다. 도루실패는 딱 2차례. 도루성공률이 84.6%로 두 자릿수 도루를 기록한 선수 가운데 당당히 1위다. 홈런 9개를 비롯해 2루타 8개, 3루타 3개로 장타율 부문에서도 전체 2위(0.618)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게다가 리그에서 4번째로 많은 21개의 볼넷을 얻어 출루율도 타율보다 1할 가까이 높은 4할5리나 된다.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한 OPS는 리그 전체 2위(1.023). 가장 놀라운 부분은 장타 생산이다. 시계는 똑딱똑딱 움직이지만 클락은 장타를 뚝딱뚝딱 생산해냈다. 마이너리그 시절에도 최근 2년 연속으로 15홈런을 때려낸 것이 전부인 클락이기에 더욱 극적인 반전이다. 그렇다고 구장효과를 논할 수도 없다. 대전·청주구장에서 6홈런을 때려낸 클락이지만 홈런 평균 비거리는 118.3m로 홈런 10걸 중 3번째다. 그보다 더 긴 선수는 이범호(120.0m)·김태균(118.8m)밖에 없다. 그렇다고 홈런만 노리는 타격을 하는 것도 아니다. 내야안타도 8개나 될 정도로 특유의 빠른 발을 적극적으로 살리고 있다. 기습번트로 내야안타를 만들 정도로 상황에 맞는 타격을 할 줄 안다는 점도 클락의 강점이다. 또한 중견수로서 수비도 합격점이다. 펜스까지 굴러갈 타구를 미리 슬라이딩으로 캐치해 한 베이스 전진을 막는 것이 바로 클락표 수비다. 한화 4번 타자 김태균은 “클락이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김태균은 “클락이 홈런도 많이 때리지만, 뒷타자들에게 찬스를 많이 만들어준다. 1·2번 타자들이 부진해도 클락이 앞에 있어 찬스가 많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크루즈가 앞에서 타점을 다 쓸어간다며 ‘거지타령’ 하는 모습은 온데 간데 없어졌다. 한화 김인식 감독도 “클락이가 보이지 않게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김태균의 극적인 역전 끝내기 홈런으로 승리한 지난달 27일 대전 두산전 승리에 대해서 김 감독은 “클락이 볼넷으로 걸어간 뒤 상대 투수를 흔들은 것이 컸다. 그린라이트인 만큼 도루할 줄 알았지만 상황을 봐가며 도루를 하지 않았다. 타자를 도와준 것이다. 투수가 주자에 신경쓰는 바람에 타자와의 승부에 어려움을 겪었다. 제대로 된 팀플레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배우는 자세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외국인선수로 기억될 다니엘 리오스(야쿠르트)는 “한국야구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대개 외국인선수들은 우월주의가 있기 마련이다. 우월주의가 없어도 한국야구를 존경하며 배우는 자세를 갖춘 선수를 찾기란 만원관중이 된 사직구장에서 잃어버린 어린아이를 찾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하지만 클락은 처음부터 배우는 자세로 임했다. 시즌 전 클락은 “타격이 안 되면 주루로, 주루도 되지 않는다면 수비라도 팀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시범경기에서도 “한국야구가 쉽지 않다. 배우는 입장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야구를 우습게 알고 거들먹거리나 자만한 외국인선수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클락은 계속되는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운이 많이 따르고 있을 뿐이다. 감독님·코치님이 도와주신 결과”라며 지나칠 정도로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클락에 대해 보면 볼수록 빛이 난다던 김인식 감독은 “참 성실하고, 성격도 좋다”고 말했다. 실제로 클락은 소위 말하는 ‘엄마 친구 아들’이다. 메사추세스 대학 출신으로 생물학 학사 학위도 받았다. 비시즌에는 종종 교사로도 나섰다. 메이저리그 시절에는 백전노장 펠리페 알루 감독이 인정할 정도로 성실파이자 노력파였다. 한화 구단에서도 “1루에 헤드퍼스트 슬라이딩하는 외국인선수를 보았느냐”고 말한다. 물론 가르시아와 윌슨 발데스(KIA)도 했지만 그들과 클락의 위상은 다르다. 클락은 야구장 밖에서 야구선수 티가 나지 않는다. 큰 키와 떡 벌어진 어깨만 보고 ‘운동 좀 했군’하고 생각하고 넘길 정도로 밖에서는 평범하다. 미국인 선교사를 연상시킬 정도로 예의바르게 생겼다. 실제로 대전구장 근처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클락은 경기를 마치고 집에 갈 때에도 알아보는 팬들은 많지 않다. 가끔 와이프·딸을 대동하고 다니는 토마스 가족과 함께 있으면 그제서야 알아봐 주는 수준. 야구선수로서 클락에게 모든 것을 준 신이지만, 애석하게도 아직은 밖에서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인기는 주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시계(Clock)가 멈추지 않는 한 클락(Clark)의 질주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물론 시계는 웬만해서는 멈추지 않는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