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승' 김호, 한국 축구의 '신화'를 쓴다
OSEN 기자
발행 2008.05.12 09: 15

'축구계의 영원한 야인에서 신화로...'. 어느새 백발이 성성한 얼굴에 여유로운 몸짓과 부드러운 미소가 몸에 밴 김호 감독(64)을 보면 인자한 할아버지가 연상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축구에 관한 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그리고 축구를 위해서는 쓴소리도 아끼지 않는 그의 손에서 한국 축구의 신화가 다시 한 번 쓰여지고 있다. 김 감독은 지난 11일 부산 아이파크전 승리로 통산 200승을 기록했다. 그가 1984년 한일은행을 시작으로 현대와 수원 삼성을 거쳐 대전 시티즌에서 기록한 200승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밟아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경지다. 야인의 길 김 감독은 축구계의 주류가 아니다. 그는 흔히들 말하는 고려대나 연세대 출신도 아닐 뿐만 아니라 대학 진학도 스스로 거부했다. 그러나 그런 점이 그에게 '축구'외에는 중요하지 않다는 철학을 가지게 만들었다. 포항제철서 은퇴한 뒤 1975년 모교인 부산 동래고에서 지도자의 길에 들어선 김 감독이 34년간 지켜온 철학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의 철학은 선수 발탁과 기용에서도 드러났다. 오직 실력만을 요구하는 김 감독의 밑에서 수많은 선수들이 자라났다. 이른바 '김호의 아이들'이라고 불리는 고종수, 권집, 김두현, 손대호, 신영록, 조병국, 조성환, 조재진 등이 그의 손에서 자라나 한국 축구의 기둥이 된 이들이다. 200승에 이르기까지 걸린 25년의 세월 김 감독은 지난 1984년 한일은행 감독으로서 그 해 5승을 따낸 것을 시작으로 한국 프로축구 신화 작성의 행보를 걸었다. 한일은행 시절 12승, 현대 시절 23승, 수원 시절 153승 그리고 지난해 대전에서 8승을 챙겼다. 여기에 올 시즌 고난 끝에 4승을 더하며 200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그러나 200승까지 오는 길은 너무나 험난했다. 2003년을 끝으로 수원에서 떠났을 때는 "다시는 승부의 세계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다짐 아닌 다짐을 해야 했고, 올 시즌 200승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는 '맞수' 김정남 울산 감독과 조광래 경남 감독을 맞아 지독한 아홉수에 치를 떨어야 했다. 하지만 김 감독의 가슴에 가장 큰 생채기를 남긴 것은 잇단 패배가 아닌 지난 7일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며느리와 네 살배기 손자의 죽음이었다. 지난 어린이날 만난 손자의 재롱을 자랑하며 축구를 시켜야겠다고 환하게 웃던 그는 며느리와 손자를 가슴에 묻고 묵묵히 선수들을 이끌었고, 선수들은 김 감독에게 200승으로 보답했다. '명장' 김호의 마지막 꿈 한때 히딩크 감독의 "아직 나는 배가 고프다"는 말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자신의 한계를 정하기 않고, 끝없이 도전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것은 김호 감독도 마찬가지다. 김 감독의 목표는 200승 달성이 아니라 바로 시민구단 대전 시티즌을 이끌고 다시 한 번 아시아 정벌에 나서는 것이다. 과거 수원 삼성(현 수원 블루윙즈)으로 달성했던 역사를 대전과 함께 다시 한 번 이루겠다는 생각이다. 김 감독은 만약 대전으로 아시아 정벌을 성공할 수 있다면 한국 축구도 다시 한 번 성장할 것이라 믿고 있다. 그렇게 ‘명장’ 김호는 한국 축구의 신화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stylelomo@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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