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타자가 8번타순에?, 신시내티 '황당 해프닝'
OSEN 기자
발행 2008.05.13 04: 41

[OSEN=탬파, 김형태 특파원]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죽었다. 다른 타자는 아웃된 뒤 곧바로 이어진 타석에 다시 들어서 안타를 쳤다. 만화에서도 나오지 않을 황당한 사건이 메이저리그에서 있었다. 지난 12일(한국시간) 뉴욕 메츠즈의 홈구장 셰이스타디움. 뉴욕 메츠에 3-8로 뒤진 신시내티는 9회초 마지막 공격을 시작했다. 타석에는 우타자 데이빗 로스. 로스는 메츠 마지막 투수인 좌완 페드로 펠리시아노에게 우익수 플라이로 물러났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라인업 카드를 바라보던 윌리 랜돌프 메츠 감독이 덕아웃을 박차고 나와 데일 스캇 구심에게 따졌다. 세상에. 엉뚱한 타자가 타격을 한 것 아닌가. 신시내티의 9회초는 8번타자부터 공격이 시작돼야 했다. 신시내티의 8번은 8회말 수비 때 중견수로 투입된 코리 패터슨. 그런데 패터슨 다음 타자인 9번 로스가 타격을 할 때까지 아무도 눈치 못챘다. 로스가 죽은 다음에야 랜돌프는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구심에게 다가간 것이다. 랜돌프는 "타순밖 타자가 공격을 하다 아웃됐으니 지금 상황은 2아웃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죽은 로스와 원래 타석에 들어서야 했던 패터슨에게 동시에 아웃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캇 구심은 규정을 들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야구 규칙 3장 2항에는 '라인업카드와 교체'에 관한 항목이 있는데 '원래 타순이 아닌 선수가 타석에 들어설 경우 원래 타자에게 아웃이 주어진다'는 내용이 다. 혼란 원인은 '더블스위치'였다. 더스티 베이커 신시내티 감독은 6회말 3번째 투수 재리드 버튼을 구원 투입하면서 포수 폴 바코도 로스로 동시에 교체했다. 기록상 버튼은 앞선 투수인 빌 브레이가 아닌 바코와 교체됐고, 로스는 투수인 브레이와 교체한 뒤 서로 포지션을 바꾼 것이다. 이에 따라 투수의 타순은 바코가 맡던 8번, 포수인 로스는 투수 타순인 9번 타자로 임무가 정해졌다. 베이커는 이에 그치지 않고 8회말 한 번 더 더블스위치를 단행했다. 우완 데이빗 웨더스를 내세우면서 코리 패터슨도 중견수로 투입했다. 6번 타자 겸 좌익수 애덤 던이 빠지고 중견수 라이언 프릴이 좌익수로 이동했다. 새 투수 웨더스의 타순은 던이 맞던 6번, 기록상 앞선 투수 제레미 아펠트와 교체된 패터슨은 투수 타선인 8번으로 한 번 더 바뀌었다. 8회초 신시내티 공격이 7번 제프 케핀저에서 끝났으므로 9회초는 8번타자 패터슨이 들어서는 게 맞았다. 그러나 2차례에 걸친 더블스위치로 혼란을 일으킨 '9번타자' 로스는 순간적으로 착각, 시키지도 않았는데 타격을 하다 죽은 것이다. 랜돌프의 항의를 받은 스캇 구심은 교통정리를 했다. 규정에 따라 '원래 타자' 패터슨에겐 아웃이 주어졌고, 로스는 한 번 더 타석에 들어섰다. 8번타자의 타격이 끝났으니 9번 타자인 자신이 타격할 차례이기 때문. 2번째로 방망이를 잡은 로스는 이번엔 깨끗한 중전안타를 치고 나갔다. 남을 죽이고 자신이 살아나간 꼴이 됐다. 하지만 신시내티는 후속타 불발로 점수를 못냈고, 결국 3-8로 패했다. 안타를 기록한 로스야 나쁠게 없지만 타격을 해보지도 못하고 타율을 까먹은 패터슨의 심사가 편할리 없을 터. 로스는 경기 후 "타순을 착각한 내 실수다"며 패터슨에게 저녁을 사겠다고 밝혔다. 해프닝의 장본인은 로스이지만 가장 큰 실책은 베이커에게 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었더라면 9번타자가 8번 타순 공격 때 나서는 것을 만류해야 했기 때문. 그래서인지 베이커는 "내 실수다. 덕아웃 벽과 내 호주머니의 라인업 카드에는 패터슨 차례라고 적혀 있었지만 그만 보지 못했다"고 순순히 자신의 실책을 인정했다. 공교롭게도 베이커는 현역 시절 로스처럼 '부정 타자'로 나선 적이 있었다. 경기 도중 다른 선수 타순에 자신이 들어갔다가 걸린 적이 있다고 했다. 해당 타자를 죽이고 재차 타석에 나선 그는 그러나 3점홈런을 쳐내 고개를 들 수 있었다고 한다. 한편 정확한 규칙 적용으로 논란을 끝낸 스캇 구심은 "심판 생활 23년 만에 오늘 같은 일은 처음 본다"고 황당해 했다. workhors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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