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한 주말의 서울 청담동 로데오 거리. 프라다 매장 앞을 걷던 여고생 한 무리가 갑자기 '꺄악' 괴성을 질러댔다. 인터뷰 사진 촬영차 카페 앞 인도로 나간 이범수(38)를 보고서다. 웬만한 스타는 소 닭보듯 한다는 강남 한복판 여학생들의 입에서 악 소리를 내게 한 그 남자, 요즘 이범수가 뜨고 있다.
자리로 돌아온 그에게 물었다. "중년으로 접어드는 나이에 이건 무슨 조화죠?" 대답은 한 탬포 늦춰 신중하게 나왔다. "매력 입니다. 영화배우로 자리를 잡았던 저에게 빠져있던 건 바로 매력이었어요."
그는 무려 5편의 영화를 찍은 2006년을 보내며 인생에서 두 번째 목표를 세웠다. 영화배우로서 성공하자는 게 첫 번째였다면 둘째는 호감가고 매력 있는 스타가 되자는 것이었다. "연기 잘한다고 칭찬은 듣는데 인기는 안따라줍니다. 매력이 부족하고 호감을 못얻기 때문인거죠."
자기만의 매력을 찾기 위해 그는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 하루 1시간씩 웨이트를 하고 거기에 두 시간씩 러닝머신을 달렸다. "남들이 턱을 깍든 성형을 하든, 저도 나름대로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범수의 얼굴과 몸은 2006년 말을 경계로 확실히 달라졌다. 둥글둥글 코믹 연기('오브라더스')와 피도 눈물도 없는 악역('짝패"), 부드럽고 감동적인 멜로('안녕 UFO') 등으로 스펙트럼을 넓혔던 천의 얼굴에서 윤곽이 또렷하게 잡힌 매력남 장기준 대표('온에어')로 변신하게 된 계기다.
또 몸짱이 됐다. "고구마와 닭가슴살 등 식이요법을 철저히 합니다. 주량이 약한 편은 아니지만 일을 할 때는 입에도 대지 않고요. 배우는 상품성을 가져야 합니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설레임을 느끼게 할려면 열심히 제 몸을 가꿔야죠. 웨이트는 고통받은 만큼 결과가 나옵니다."
이범수는 잃어버린 10년을 갖고 있다. 1990년 단역으로 영화에 데뷔한 그는 '접속' '퇴마록' '태양은 없다' '고스트 맘마' '은행나무 침대' 등 숱한 히트작에서 이름없는 배우로 등장했다.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남아 있지만 아무도 배우 이범수를 기억하지 못하는 영화들이다.
그의 연기 인생이 바뀌기 시작한 건 대형 기획사 싸이더스HQ에 들어가면서 부터. 배우로서의 잠재력을 발견한 싸이더스는 먼저 이범수의 인지도를 올리기 위해 TV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권했고 '동고동락'에서 예능인 이범수를 널리 알렸다.
TV를 통해 영화의 주연으로 우회상장한 이범수. 2000년 '하면된다'를 시작으로 '정글쥬스' '일단뛰어' '몽정기'(2002)에 이어 2003년 '싱글즈'와 '오브라더스'로 한 획을 그었다. 이후 수많은 히트작을 낸 그는 영화배우로서 톱에 오르기 전에 2007년 '외과의사 봉달희'와 2008년 '온에어', 두 개의 TV 미니시리즈 출연으로 정상에 먼저 올랐다. 늘 영화인을 자처하는 그로서는 아이러니한 일이다.
"영화배우지만 TV에서도 보란듯이 해보고 싶었어요. 드라마가 시스템 측면에서 '심하게 고생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남들도 다 고생하는데 못할게 뭐냐고 했죠. 처음 봉달희 출연을 결정할 때 제 활동 범주를 확장시킨다는 개념이었고 결국 좋은 결과 이어졌습니다."
사람을 앉혀놓고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은 '온에어' 장기준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사실 아직도 장기준으로 살고 있다"는 그의 마지막 말이 답변이 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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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용호 기자 spjj@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