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대구, 이상학 객원기자] 지난 21일 대구구장. 경기 전 뉴욕 양키스 모자를 쓴 한 사내가 LG의 한 선수를 불렀다. 지난 3월 공익근무요원으로 군입대한 롯데 내야수 손용석(21)이었다. 이날 직무 교육기간 첫 날을 맞아 대구에 온 손용석은 야구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지인과 함께 기어이 대구구장을 찾았다. 경기 전에는 롯데 시절 삼촌처럼 따랐던 LG 손인호와 해후했다. 손용석에게는 낯선 야구장 나들이였다. 선수는 그라운드에 있을 때 가장 빛이 나는 법이다. 손용석은 이날 지정석에서 경기를 관전하며 그라운드를 응시했다. 말할 수 없는 고통 손용석은 지난해 12월14일 오른쪽 어깨 수술을 받았다. 고질적으로 안고 있는 어깨 통증을 완전히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어쩔 수 없는 결정은 3개월 후 다시 한 번 더 찾아왔다. 어깨 수술 및 재활로 한 시즌을 통째로 날려먹게 되자 과감하게 군입대라는 결단을 내렸다. 시즌 개막 한달여를 앞둔 지난 3월3일 전격 군입대를 선언했다. 젊은 선수들에게 병역문제는 큰 고민이다. 손용석은 “부상으로 시즌을 뛸 수 없게 된 만큼 하루빨리 군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다”고 말했다. 손용석은 그래도 짐을 빨리 덜어냈다는 표정이었다. “우리팀에서는 군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선수가 많다. (정)보명이형, (김)주찬이형, (문)규현이형, (이)승화형 등 군대다녀온 선수들을 빼면 전부 군대에 갈지도 모른다. 군대가 문제이긴 정말 문제다.” 손용석은 요즘 어깨 재활 훈련에 한창이다. 지리한 자신과의 싸움이다. 현재 어깨 상태가 약 50% 정도 회복됐다. 그러나 아직 가야할 길이 많다. 올 한해는 재활에만 모든 시간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손용석이 진정으로 괴로운 것은 재활이 아니었다. 그라운드에 대한 열망이 피어오르는 것을 억제하는 것이 더 큰 고통이었다. 손용석은 “사실 롯데 경기를 잘 보지 않는다. 보고 싶어도 잘 보지 않게 되더라”고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유는 굳이 두 번 물어 볼 필요가 없었다. “경기를 볼 때마다 몸이 근질거려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것이 손용석의 변이었다. 이제 만 21살 피끓는 젊은 선수가 수술과 재활로 뜨거운 그라운드가 아닌 차가운 수술대에 오르고 지겨운 재활을 반복하는 것은 고문이다. 그래도 손용석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경기 전 띠동갑이 되는 손인호를 오랜만에 만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손용석은 “손인호 선배는 나에게 삼촌 같은 존재다. 나이 차이가 많은데도 다가가기 쉬웠다. 워낙 잘대해주셔서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인호는 이날 조카뻘 되는 후배가 보는 앞에서 4타수 2안타로 맹활약했다. 손용석은 “타구가 잘 뻗어나간다”며 함께 기뻐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손용석의 표정에는 지루함이 몰려왔다. 급기야 휴대폰을 꺼내들어 야구게임을 했다. 선수가 아닌 관중의 입장에서 지켜보는 야구는 손용석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과 같았다. ‘관중 입장에서 야구를 보는 것도 시각이 넓힐 수 있는 기회가 아니냐’는 질문에 손용석은 나즈막히 말했다. “저는 그냥 그라운드에서 뛰고 싶습니다.” 손용석은 어떤 선수였나 부산고를 졸업한 손용석은 지난 2006년 당당히 1차 지명을 받고 고향팀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손용석이 처음 유명세를 탄 것은 1차 지명도 1차 지명이지만, 아버지를 빼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18년간 롯데 야구단 1군 버스를 운전하고 있는 손경구씨가 바로 손용석의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운전하는 구단버스에 아들이 선수로 탑승하는 장면이 연출되며 적잖은 화제를 모았다. 때마침 손용석의 활약상까지 더해져 이 같은 스토리가 더욱 많이 알려졌다. 모든 구단버스 기사들이 고생하고 있지만 손씨는 이동거리가 가장 긴 롯데의 구단버스 기사다. 손용석은 그런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부산 사나이’끼리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무언가가 있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걷어낸다면 손용석은 또 어떤 선수일까. 데뷔 첫 해였던 2006년에는 1군에서 4경기에 출장해 3타수 1안타 1타점 1득점을 기록한 것이 전부다. 손용석이 제대로 된 진가를 나타낸 것은 2년차가 된 바로 지난해였다. 44경기에서 70타수 24안타로 타율 3할4푼3리·12타점을 기록했다. 대부분 경기에서 대타로 나와 터뜨린 안타와 적시타들이었다는 점에서 돋보이는 기록이었다. 특히 6월16일 대전 한화전에서 1점차로 뒤진 9회초 2사 1·2루에서 대타로 등장해 구대성으로부터 좌중간을 가르는 극적인 역전 결승 2타점 2루타를 터뜨리며 포효했다. 손용석은 어제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했다. “처음에는 볼카운트 2-0으로 몰렸지만, 2-2를 만든 뒤 직구를 공략했다. 정말 짜릿했다.” 손용석은 자신의 타격 스타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노려치는 타입”이라고 말했다. “대타로 나와서는 생각할 겨를이 많지 않다. 1군 투수들은 구석구석으로 잘 던진다. 1~3구에서 승부를 보는 것이 가장 주효한다”며 지난해 유독 대타성공률이 높았던 비결을 설명했다. 그러나 5볼넷·21삼진으로 비율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2007시즌 전 롯데의 스카우팅 리포트에서는 손용석의 타격에 대해 ‘선구안이 좋은 편으로 볼넷을 잘 고른다’는 평가가 있다. 손용석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어리둥절해했다. 분명한 건 손용석이 대타로 많이 나섰다는 점. 대타에게는 볼넷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기회만 주어지면 손용석의 선구안은 빛을 발할 여지가 충분히 남아있다. 손용석도 “지난해에는 우완 투수를 상대해 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정태가 만드는 근성가이 롯데팬들은 손용석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전설이 된 박정태와 일견 흡사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투수를 잡아먹을 듯한 눈빛과 저돌적인 승부근성은 박정태의 강력한 트레이드마크였으며 롯데의 ‘근성마저 없다면 거인 유니폼 입을 자격도 없다’는 플래카드를 걸게끔 만들었다. 손용석도 승부근성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선수로 통한다. 그러나 손용석 본인은 정작 고개를 가로 젖는다. 손용석은 “팬들이 그렇게 봐주는 것은 고맙지만, 고정관념처럼 굳어진 것도 없지 않다”고 웃어보였다. ‘포스트 박정태’라는 평가에도 손용석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박정태 코치님은 롯데의 전설이고 부산의 전설이다. 내가 감히 이름을 같이 할 수 없다”고 손사래쳤다. 하지만 손용석은 가장 고마운 지도자로 박정태 2군 타격코치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2007년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제외돼 국내에 남아 훈련할 때 손용석에게 구원의 손길을 보낸 이가 바로 박 코치였다.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몸을 불렸고 밀어치기를 향상시키는데 주력했다. 손용석이 매일 500회 이상 스윙을 돌릴 때 그 곁에 바로 박 코치가 있었다. 손용석도 “박 코치님 덕을 많이 봤다. 코치님 지시로 웨이트 트레이닝의 중요성을 실감했고 밀어치기도 늘었다. 많이 부족하지만 코치님께서 장점을 많이 살려주시기 위해 노력하신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군입대로 팀을 떠났지만, 요즘에도 박 코치는 손용석에게 안부를 전하며 훈련을 게을리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경기는 삼성의 승리로 끝났고, 이날 경기 히어로는 선제 결승 홈런을 터뜨린 박석민이 됐다. 박석민은 손용석이 거의 유일하게 친한 삼성 선수. 손용석은 “나도 (박)석민이형처럼 2년 뛰고 군입대했다”고 웃으며 강조했다. 박석민도 고졸로 데뷔한지 2년만에 군입대했고, 올해 기량을 꽃피우고 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였다. 손용석도 의식적으로 이를 강조했다. 손용석은 당장 급한 마음을 먹지 않았다. 손용석은 “사직구장 관중들의 함성이 그립다. 만원관중이 된 사직구장에서 즐겁게 야구했다”며 “아직 2년이 남아있다. 서두르지 않고 몸을 다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재활이 끝나는대로 김해상동구장에서 훈련할 것이다. 휴가도 모두 미뤄 전지훈련 때 쓰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낯선 야구장 나들이를 마치고 뒤돌아서는 손용석의 뒷모습에는 ‘근성(根性)’이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