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을 일삼고 백성들의 피고름을 짜내는 탐관오리의 재물을 빼앗아 생활고에 시달리는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백성들을 괴롭히는 비겁한 양반들을 혼쭐내주는 영웅들의 이야기는 언제 봐도 재미있고 통쾌하다. 예나 지금이나 답답하고 내 뜻대로 세상이 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새 처럼 훨훨 날아다니고 마음에 안 드는 놈 시원하게 때려줄 수도 있는 TV 속 영웅들의 모습이 이토록 반가운가 보다.
요즘 한 명의 의적이 안방극장을 장악하고 있다. SBS 새 수목드라마 ‘일지매’의 일지매(이준기 분)가 그 주인공이다. 뿐만 아니라 6월부터는 KBS 2TV ‘최강칠우’, 하반기 MBC에서는 고우영 화백의 만화 ‘일지매’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일지매’도 만들어 진다고 하니 당분간 이 고전 영웅들의 활약은 계속 될 전망이다.
사실 의적들의 활약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그동안 의적들의 이야기는 여러차례 드라마 소재로 사용 됐고 언제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기존 안방극장에서 활약했던 의적은 누가 있을까. 대표적으로 SBS 드라마 ‘임꺽정’(1997)의 주인공 임꺽정(정흥채 분), ‘홍길동’(1998)의 홍길동(김석훈 분), ‘장길산’(2004)의 주인공 장길산(유오성 분)을 들 수 있다.
지난 3월 종영한 KBS 2TV ‘쾌도 홍길동’을 통해 다시 한 번 안방극장에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한 홍길동은 조선 광해군(光海君) 때 허균이 지은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주인공이다. 양반의 서자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재주가 있으나 재주를 펼치지 못하다가 도적의 우두머리가 돼 민중의 편에 서 그들을 도왔다. 임꺽정은 조선 중기 황해도 함경도 등지에서 활동하던 도둑으로 백정 출신이며 곡식을 백성들에게 나눠줘 의적이라고 불렸다. 장길산 역시 조선 숙종 때 해서(海西) 지방의 구월산(九月山)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활동한 도둑의 우두머리로 사회 하층민들에게 희망이 됐던 실존 인물이다.
2008 일지매와 90년대 그려졌던 홍길동, 임꺽정, 2004년 그려졌던 장길산은 의적이라는 점은 같지만 이들의 성격이 다 달랐던 만큼 비교하는 것이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늘 흥미를 일으키는 ‘의적’이라는 한 뿌리를 두고 있는 만큼 이들의 차이점을 비교해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 떼지어 다녀요! VS 혼자 다녀요!
일지매는 조선시대 후기에 살았던 도적으로 실존여부는 확실치 않다. 일지매는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 등이 도적의 우두머리로 무리를 이끌고 다녔던 데 반해 홀로 다녔다. 무리로 다녔던 기존의 영웅들이 남성다움의 으뜸으로 꼽히는 힘에 기인한 리더십을 보여준다면 일지매는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개인의 민첩함, 영민함을 과시하며 그로 인한 외로움으로 대변되는 보호 본능을 일으킨다.
# 묵직한 몸싸움! VS 화려한 CG!
임꺽정, 홍길동, 장길산과 현재 방송되고 있는 일지매가 기본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을 이들을 담고 있는 그릇 부터가 다르기 때문이다. 2008 ‘일지매’는 퓨전 사극이라는 이름으로 보다 현대인들의 입맛에 맞게 화려하게 차려진 퓨전음식 같은 느낌이 든다면 ‘임꺽정’‘홍길동’‘장길산’ 은 묵직한 정통 사극의 느낌으로 그려졌다.
2008 일지매가 현란한 CG로 무장하고 지붕 위를 사뿐하게 날아다니며 ‘투명 망토’까지 입고 다니는 신출귀몰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 임꺽정, 홍길동, 장길산 등은 무리들을 이끌고 다니며 싸울 때도 몸을 맞대고 장사 같은 힘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일지매가 신비함을 가미했다면 그 이전의 의적들은 보다 인간미가 나는 현실에 있을 법한 사람 냄새나는 의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 의상부터 달라요!
퓨전사극인 ‘일지매’는 의상부터가 화려하다. 일지매의 의상은 전통적인 의상에 현대적인 색채를 가미해 아름다움을 더했다. 갑의부터 마스크까지 첨단을 달린다. 반면 임꺽정, 홍길동, 장길산은 전통 사극에서 기대되는, 그들 영웅이 실제로 그 시대에 입었을 법한 의상을 입는다. 특히 도적 무리들 속에 섞이며 허름한 의상은 어찌 보면 민중의 대표로서의 상징성을 갖는다.
# 그 시대 최고의 인기 아이콘!
지금까지 이 같은 의적을 연기했던 배우들은 그 해에 가장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인기를 모았다. 굵직굵직한 이목구비에 우렁찬 목소리로 임꺽정을 연기했던 정흥채는 그 해 신인연기상을 수상하며 팬들의 집중 관심을 받았다. 김석훈 역시 꽃미남 같은 외모로 여린 것 같으면서도 강하고 사랑에 아파하는 사랑스러운 홍길동을 멋지게 연기해내 여성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유오성 역시 장길산으로 연기파다운 면모를 다시 한 번 입증 했다.
이번 이준기도 그와 같은 인기를 재현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아직 1, 2회 밖에 방송이 되지 않았음에도 시청자들은 그에 대해 뜨거운 관심을 보이며 샤프하게 생긴 얼굴이 일지매에 딱 어울린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시대는 달라졌어도 가슴의 응어리를 안고 민중을 돕고 자신을 희생한다는 의적들의 이야기는 답답한 현실에서 한 줄기 돌파구로 작용하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앞으로는 또 어떤 의적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그 변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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