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보쿰(독일), 이건 특파원] 몇 해 전의 일이다. 국가대표 축구팀 붉은악마의 한 회원이 일본에서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일본 원정 경기에서 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 할아버지는 일본에서 한국 경기가 있을 때마다 거금을 들여 붉은악마와 같은 자리의 티켓을 구매해 손자, 손녀들을 이끌고 온다. 마침 함께 응원하게 된 그에게 이 할아버지는 손을 꼭 잡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손자, 손녀들이 우리 조국인 한국에 대해서 너무 몰라요. 이대로 있다가는 일본인이 될 것만 같아서 애들 손을 잡고 나왔어요. 그나마 이런 자리가 있어서 함께 애국가와 아리랑을 부를 수 있네요". 당시 그 회원은 기자에게 일본에서 열리는 한국 경기가 재일교포에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지 알았다며 그 이후로는 경기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좀 더 엄숙해졌다고 말했다. 이같은 마음은 독일에 살고 있는 터키인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독일에는 약 300만 명에 이르는 많은 터키인들이 살고 있다. 독일이 '라인강의 기적' 이라고 일컬어지는 경제 발전 가도를 타고 있을 때 부족했던 노동력을 충원하기 위해 독일로 들어온 이들은 독일 경제 최전선에서 어렵고 궂은 일을 도맡았다. 이런 그들에게 독일은 기회의 땅이자 힘든 삶의 터전이었다. 외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이 그러하듯 이들 역시 보이지 않는 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돈을 벌어나갔다. 이들에게 터키와 관련된 모든 것들은 설움을 달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터키 축구 역시 마찬가지다. 터키축구협회는 종종 독일에서 친선 경기를 가진다. 당연히 많은 재독 터키인들이 향수를 달래기 위해 경기장에 운집한다. 그들 역시 재일 교포들처럼 경기장에서 터키의 국가를 부르고 함께 응원가를 부른다. 지난 2002년 3월 한일 월드컵을 코앞에 두고 보쿰에서 터키와 평가전을 가졌던 한국 역시 많은 터키 관중들의 응원을 경험했다. 당시 국내 언론들도 이런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6년이 흐른 뒤 지난 26일 또 다시 보쿰에서 열린 터키와 우루과이의 평가전 역시 많은 관중들이 들어찼다. 물론 거의 대부분이 독일에 사는 터키인들이었다. 이들은 오랜만에 다시 만난 터키 대표팀에 큰 박수와 함성으로 성원을 보냈다. 비록 경기에서는 2-3으로 역전패를 당했지만 그들은 패배와 상관없었다. 한 관중은 경기가 끝난 후 터키 국기를 들고 경기장에 난입했다. 그는 안전요원을 요리저리 피해가며 국기를 들고 경기장을 누볐다. 터키 관중들은 이에 박수와 함성으로 화답했다. 물론 관중의 경기장 난입은 옳지 않은 일이지만 이날만큼은 설움받는 독일 하늘 아래 터키의 국기를 펄럭일 수 있는 날이었다. 경기 후 파티 테림 터키 감독은 "독일에 있는 터키인들의 응원이 대단했다.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박수를 쳐주었다. 그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그들은 우리의 큰 힘이다" 고 감사함을 표했다. 그가 이 말을 하는 도중에도 밖에서는 터키인들의 응원이 계속되고 있었다. 현대 축구의 상업성을 일컬어 어떤 이들은 내셔널리즘이나 지역주의를 교묘히 이용한 장사꾼 놀음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한다. 분명 그런 비판을 받아야할 부분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는 일본에서 울려퍼지는 애국가를 듣고 눈물 흘리는 할아버지와 손자, 손녀들 그리고 독일에서 터키 국기를 펄럭이는 터키팬들이 있다. bbadagun@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