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세드릭 바워스와의 재계약을 포기할 때 많은 이들이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둥글둥글한 얼굴에서 연신 비오듯 땀을 흘리며 볼넷을 주고, 이닝을 먹었던 세드릭은 한화 사상 첫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둔 외국인 투수였다. 그러나 구대성이 무릎 부상으로 수술대에 오르는 바람에 한화는 선발로 한정된 세드릭보다 마무리를 겸할 수 있는 전천후 투수가 필요했다. 그래서 데려온 선수가 바로 브래드 토마스(31)였다. 시즌 초반 다이너마이트를 짊어지고 마운드에 오르는 불안함을 노출한 토마스는 확 달라졌다. 이제는 급히 불을 진화하기 위해 소방 호스를 짊어지고 나서는 모습이 연상된다. 토마스는 사상 첫 외국인 마무리 성공시대를 쓰고 있다. 외국인 마무리들 외국인선수 도입 제도 첫 해였던 1998년에만 하더라도 한국야구에서 우선순위는 제1선발보다도 마무리였다. 많은 팀들이 팀 내 최고 투수를 마무리로 기용하기를 꺼리지 않았다. 외국인선수 제도 도입 첫 해였던 1998년 외국인 투수는 총 4명이었고 이 가운데 3명이 마무리로 기용됐다. 조 스트롱(현대), 마이클 앤더슨(LG), 호세 파라(삼성)가 바로 그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세이브 부문 5위 내에 진입했고 소속팀 모두 포스트시즌에 올랐다. 특히 스트롱은 27세이브로 이 부문 전체 2위에 오르며 현대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 감격까지 함께 누렸다. 그러나 스트롱은 엄밀하게는 불안한 마무리투수에 가까웠다. 스트롱은 53경기에 등판, 6승5패27세이브 방어율 2.95로 표면적인 성적은 매우 우수했다. 하지만 이닝당 출루허용률이 무려 1.60으로 낙제점이었고, 피안타율도 2할8푼3리로 매우 높았다. 딱히 상대를 압도한다는 스터프를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이듬해 재계약에 실패했다. 이는 앤더슨이나 파다로 비슷했다. 앤더슨은 4승7패21세이브 방어율 3.56 WHIP 1.29 피안타율 2할5푼2리로 평범한 성적을 올렸지만, 탈삼진(30개) 능력이 떨어졌다. 그나마 파라가 6승8패19세이브 방어율 3.67 WHIP 1.24 피안타율 2할2푼4리로 선전했으나 결정적일 때 약하다는 평을 받았다. 이후 한동안 외국인 마무리투수는 등장하지 않았다. 스트롱·앤더슨·파라 모두 기본 성적은 냈지만, 위압감을 심어주지 뭇했다. 외국인 투수를 마무리로 쓰기에는 아깝다는 소리도 나왔다. 2001년 삼성 벤 리베라가 전반기에만 21세이브를 올린 후 부상으로 퇴출됐고 2002년 KIA 다니엘 리오스도 전반기에만 마무리로 뛴 뒤 선발로 이동했다. 2002~2003년 한화 레닌 피코타, 2004~2006년 SK 호세 카브레라, 2007년 롯데 카브레라가 풀타임 외국인 마무리투수로 활약할 뿐이었다. 그러나 일본프로야구 ‘특급마무리’ 마크 크룬(요미우리) 같은 대박이 없었다. 오히려 불안불안한 곡예 피칭으로 벤치의 애간장을 태웠다. 이대로 외국인 마무리는 사라지는가 싶었다. 한국판 크룬으로 하지만 한화는 과감히 외국인 투수를 마무리로 쓰는 강수를 뒀다. 무엇보다도 토마스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좌완으로서 150km 내외를 형성하는 위력적인 구위를 가진 투수를 마다할 리 없었다. 김인식 감독은 첫눈에 토마스의 구위에 매료됐고, 스프링캠프 때만 하더라도 슈퍼맨이 된 덕 클락보다 더 큰 히트상품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시즌 초반에는 미덥지 못했다. 공이 높게 형성되며 타자들에게 쭉쭉 맞아나갔다. 빠르고 위력적인 공을 던지지만 제구가 되지 않으니 무소용이었다. 위력적인 강속구를 던지는 좌완투수가 제구력까지 좋았으면 한국에 올리는 없었다. 그래서 김인식 감독은 기다렸다. 그리고 김 감독은 요즘 기다린 보람을 느끼고 있다. 토마스는 올 시즌 24경기에서 1승3패9세이브 방어율 2.84 WHIP 1.14 피안타율 2할3푼1리를 기록하고 있다. 9세이브는 거의 알짜배기였다. 터프세이브가 3개, 1점차 세이브가 4개였다. 마무리투수 가운데 가장 많은 24경기·25⅓이닝도 돋보이는 대목. 특히 부인 카일리와 딸 시에나가 시구·시타를 한 지난달 27일 이후에는 11⅓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고 있다. 최근 10경기 9⅔이닝에서는 아예 무사사구를 펼치며 제구도 매우 향상됐다. 시즌 초반에만 하더라도 우규민(LG)·임경완(롯데)·정재훈(두산) 등과 함께 신춘문예 명단에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이제는 절필했다. 그것도 제대로 펜대를 꺾었다. 높게 형성되던 공이 낮아지자 무시무시해졌다. 김인식 감독은 “시즌 초반에는 이상하게 볼이 높게 형성돼 고전하더라. 보기와는 다르게 마운드에서 움츠러든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적응을 끝내고, 이제는 완전히 살아났다. 상대팀에서도 ‘이거 치기 어려운데’라는 말이 나오더라”며 껄껄 웃었다. 유지훤 수석코치도 “토마스의 공은 낮게 깔리면 더욱 묵직해지기 때문에 쉽게 때릴 수 없다. 맞더라도 장타는 절대 안 나온다”고 거들있다. 실제로 토마스는 아직 피홈런이 없고, 장타도 2개밖에 맞지 않았다. 일본에서도 94이닝 동안 피홈런은 3개뿐이었다. 구위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25⅓이닝 동안 탈삼진도 23개나 잡아냈다. 안타도 대부분 빗맞은 타구들이었다. 토마스도 이제는 자신감이 붙었다. “초반에는 각 구장마다 마운드 위치도 달랐고, 날씨도 추웠다. 하지만 어느 정도 적응되고 날이 풀리니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난 원래 여름에 강한 체질이다. 여름을 기대해 달라”는 것이 토마스의 말이다. 토마스는 따뜻한 호주 출신으로 온도에 민감하다. 스프링캠프 때부터 온도기를 들고 다니며 온도를 체크할 정도였다. 예부터 한화는 유독 외국인 투수와 인연이 없었다. 마무리도 다를 바 없었다. 2001년 호세 누네스, 2002년 파라, 2002~2003년 피코타는 모두 실패작이었다. 피코타의 경우에는 첫해와 이듬해가 극과 극이었다. 하지만 올해 토마스가 모두 해결할 태세다. 김인식 감독은 “구대성이 돌아오더라도 아직 확신할 수 없다. 상태를 봐야겠지만 당분간 마무리는 토마스”라고 말했다. ‘한국판 크룬’의 길을 걷고 있는 토마스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