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출선수 돌풍, '버린 선수들도 다시 보자'
OSEN 기자
발행 2008.05.27 17: 01

[OSEN=이상학 객원기자] 해마다 가을이 되면 각 구단들은 선수들을 정리한다. 더 이상 팀에 필요가 없다고 판단된 선수들은 방출시킨다. 졸지에 실업자가 된 선수들은 다른 팀에서 불러주지 않으면 유니폼을 벗어야 하는 운명이다. 이들에게는 가슴속 한켠에 한이 맺히기 마련이다. 이 한은 종종 방출선수들이 한편의 드라마를 쓰는 촉매제로 작용하곤 한다. 올 시즌 프로야구에는 방출선수들의 활약이 그 어느 때보다 눈에 띄고 있다. 누가 어떻게 활약하나 지난 가을 가장 주목받은 방출선수는 역시 ‘마포’ 마해영(롯데)이었다. 한 해 전 LG로부터 방출 통보 후 철회라는 해프닝을 겪었던 마해영은 결국 또 다시 LG로부터 버림받았다. 이후 테스트를 거쳐 고향팀 롯데에 입단했다. 롯데의 전설은 그렇데 다시 롯데로 돌아왔다. 부산팬들로부터 뜨거운 지지를 받은 마해영은 그러나 활약상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25경기에 출장, 61타수 11안타로 타율 1할8푼·2홈런·7타점을 기록하는 데 그치고 있다. 하지만 삼진(8개)보다 더 많은 볼넷(12개)에서 나타나듯 볼을 고르는 선구안으로 투수들을 괴롭히고 있다. 개인통산 900타점도 대타로 나와 밀어내기 볼넷으로 만든 것이었다. 경기외적으로 선수단 ‘멘토’ 역할을 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선수단에서 ‘큰 형님’으로 통한다. 최고선수들만 수집한 삼성은 선동렬 감독 부임 후 외부 FA 영입 불가 방침을 선언했지만 대신 방출된 선수들에게는 적잖은 투자를 펼치고 있다. 이상목과 조진호가 바로 그들이었다. 이상목은 삼성 마운드에 없어서는 안 될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롯데에서 방출된 뒤 연봉 1억 원에 삼성에 입단한 이상목은 올 시즌 12경기에서 3승3패 방어율 5.01을 기록 중이다. 방어율이 다소 높지만, 선동렬 감독이 유독 이상목만큼은 마운드에 오래 둔 탓이다. 이상목은 선발등판시 평균 투구이닝이 5.81이닝으로 팀 내 1위. 이상목은 “체력적으로 문제없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이상목과 함께 보험용 투수로 연봉 5000만 원에 삼성 유니폼을 입은 조진호도 3경기에서 1승1패 방어율 6.59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4일 대구 한화전 6이닝 무실점으로 따낸 승이 컸다. 선동렬 감독은 “구자운도 있다”고 껄껄 웃으며 방출선수들을 재기시킨 것에 대한 자부심을 엿보였다. 방출과는 친숙한 관계인 KIA 최경환도 올해 또 한편의 재기 드라마를 쓰고 있다. 지난해 가을, 롯데에서 방출된 뒤 테스트를 거쳐 연봉 7000만 원을 받고 KIA에 입단한 최경환은 24경기에서 58타수 19안타, 타율 3할2푼8리·9타점으로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아직 내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던 최경환은 자신의 의지를 행동으로 실천했다. 추승우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가을 LG에서 방출, 연봉 2500만 원에 한화 유니폼을 입은 추승우는 방출선수들 중 가장 극적인 드라마를 쓰고 있다. 연봉 대비 활약상이 뛰어난 데다 방출선수 중 거의 유일하게 풀타임 주전멤버가 됐기 때문이다. 올 시즌 43경기에서 92타수 26안타, 타율 2할8푼3리·8도루로 활약 중이다. 특히 도루실패가 단 하나도 없다. 김인식 감독도 “외야 전향이 완전히 성공했다”고 만족스러운 모습. 덕 클락과 함께 전혀 ‘한화스럽지’ 않은 선수가 한화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극적인 방출 스토리 올해 KIA에서 새로운 방출 성공 스토리를 쓰고 있는 최경환은 이미 방출의 아픔을 겪은 바 있는 경험자. 1996년 빅리거의 꿈을 안고 태평양을 건넌 최경환은 그러나 보스턴으로 트레이드된 뒤 1999년을 끝으로 방출됐다. 결국 2000년 LG로 컴백했지만 불과 2시즌만 뛰고 또 다시 방출되고 말았다. 그때 최경환에게 구원의 손길을 보낸 팀이 바로 ‘출발 재활 드림팀’ 두산이었다. 2002년 두산 유니폼을 입은 최경환은 두 차례나 한 시즌 100안타 이상을 때려내며 주전으로 활약했다. 두산에서 뛴 4년 반 동안 타율 2할7푼7리. 특히 몸을 사리지 않는 허슬 플레이로 팬들에게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이즈음부터 두산에는 ‘허슬두’라는 말이 생겼다. 최경환은 비록 두산을 떠났지만 허슬이라는 이름을 남겼다. 최경환뿐만이 아니다. 두산은 유독 많은 선수들이 방출 이후 아름다운 재기 드라마를 썼다. 지금은 삼성 투수코치로 있는 조계현이 대표적이었다. 1999년을 끝으로 삼성에서 방출돼 오갈데 없는 신세였던 조계현은 연봉 5400만 원에 두산의 부름을 받았다. 조계현은 2000년 7승3패 방어율 3.74라는 기대이상 성적으로 깜짝 활약을 펼쳤다. 포스트시즌에서도 5경기에 선발등판해 2승2패 방어율 2.48로 맹활약했다. 미련이 남지 않는 대활약으로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사이드암 정성훈도 삼성에서 방출된 뒤 두산에서 꽃을 피운 케이스다. 2002년을 끝으로 삼성에서 정리대상이 된 정성훈은 두산으로 옮긴 2003~2004년 특급 셋업맨으로 명성을 떨쳤다. 2005년 상무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현대로 컴백했으나 곧바로 방출된 이종욱도 방출선수 성공신화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됐다. 선수를 잘 키우기로 소문난 현대였지만, 이종욱을 버리는 우를 범했다. 이종욱은 이제 두산을 넘어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톱타자로 위상이 격상됐다. 하지만 현대는 실패보다 성공이 더 많은 팀이었다. 지금은 우리 히어로즈가 된 현대도 방출선수를 탈바꿈시키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김동수와 황두성이 대표적이다. 2002년 시즌 후 SK에서 방출된 김동수는 마흔이 된 올 시즌에도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2001년 KIA에서 방출된 황두성은 현대에서 김시진 투수코치를 만나 투수로 전업해 성공신화를 쓰고 있다. 이외에도 가득염이 2006년 시즌 마친 뒤 방출과 함께 코치직을 제안한 롯데를 뒤로하고 SK에서 당당히 한국시리즈 우승멤버로 활약하며 극적인 반전 드라마를 연출했고, 1996년을 끝으로 삼성에서 방출된 뒤 이듬해 한화 유니폼을 입으며 선수생활을 이어간 전상렬은 두산으로 이적하며 꽃을 피웠다. 지난 6일 목동 우리전에서는 만루홈런을 쏘아올리며 존재를 다시 한 번 알렸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조경환도 2006년 시즌 중 SK에서 방출돼 KIA로 이적한 후 잠시나마 강렬한 불꽃을 피웠다. 2004년 KIA에서 방출된 김인철도 2005년 한화에서 짧지만 강렬한 활약으로 한화의 돌풍을 이끌었다. 지난해 방출된 뒤 최근 새로운 팀을 찾은 진필중(우리)·오상민(LG)도 방출선수 재기 드라마를 쓰겠다는 의지다. ‘재활의 제왕’ 김인식 감독 방출선수를 가장 유용하게 활용한 사령탑은 단연 한화 김인식 감독이다. 김 감독은 방출선수들을 재활용하는 데 재미를 맛봤다. 과거 두산에서부터 이 같은 능력을 십분발휘했다. 최경환·조계현·정성훈 등은 모두 김인식 감독 작품이었다. 최경환은 요즘에도 김인식 감독에게 깎듯한 인사를 마다하지 않으며 존경심을 보내고 있다. 한화에서는 부임 첫 해였던 2005년 김인철과 방출선수는 아니지만 무적신세였던 조성민을 데려와 재미를 톡톡히 봤다. 그리고 올 시즌에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추승우를 싼값에 영입, 기대이상의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사실 김 감독의 방출선수 리스트에는 몇몇 선수들이 더 추가될 수 있었다. 2004년 가을 김인철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김 감독은 또 하나의 선수를 영입하려 했다. 바로 우완 정통파 정원이었다. 당시 김 감독은 KIA에서 김인철과 함께 정원이 방출 통보를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는 두 선수를 한꺼번에 영입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한 코치가 KIA 구단 관계자에게 직접 연락하는 바람에 일이 꼬였다. KIA는 정원의 방출을 없던 일로 만들었고 김 감독은 김인철을 영입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김 감독은 요즘도 “정원이가 있었으면 불펜이 이렇게 부담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SK 가득염, 삼성 구자운 등도 사실은 모두 김 감독이 먼저 접촉한 선수들이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한화는 구단에서 투자를 많이 하지 않는다. 우리는 5000만 원밖에 못 주는데 다른 팀에서는 1억 원을 준다고 하니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한화뿐만 아니라 두산에서도 그래왔던 일이다. 김 감독은 종종 “난 투자를 많이 하는 팀을 맡아 보지 못했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김 감독의 능력이다. 괜히 ‘재활공장장’ 또는 ‘재활의 제왕’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다.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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