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탬파, 김형태 특파원] "시원섭섭하네요". 지난 22일(이하 한국시간)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방출대기된 백차승(28)은 시애틀을 떠나게 된 심경을 위와 같이 밝혔다.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했던 만큼 이제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정든 구단과 마침내 이별을 고하게 됐다는 감정이 묘하게 얽혀 있는 표현이었다. 1998년 9월 태평양을 건넌 뒤 10년 만에 시애틀 유니폼을 벗게 된 감정이 복잡한 듯했다. 백차승은 29일자로 남부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선수가 됐다. 우완 중간계투 재리드 웰스와 맞트레이드를 샌디에이고가 이날 공식 발표하면서 백차승은 이제 '파드리스맨'으로 변신했다. 구단은 백차승이 곧바로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에 포함됐으며 이날 열리는 워싱턴과의 홈경기부터 불펜 대기한다고 전했다. 시애틀에서의 10년간 백차승은 많은 일을 겪었다. 선수 생명을 건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과 2번의 방출대기. 무려 7년간 고국땅을 밟지 못하는 외로움과 싸움에 구단의 외면까지 경험했다. 쉽게 좌절할 수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백차승은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미국 무대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건 현실에서 차선책은 있을 수 없었다. 남들보다 열심히 운동해 경쟁자들을 제쳐야만 했다. 구단이 요구하는 거의 전부를 그는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마이너리그 8시즌 동안 선발투수로만 활약했던 기억을 지우고 롱릴리프로 변신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몸이 늦게 풀리는 점을 감안, 매 경기 등판한다는 각오로 경기 시작 전부터 트레이너와 땀방울을 흘렸다. 그러나 시애틀은 백차승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가용할 수 있는 불펜 자원이 바닥난 22일 선발 미겔 바티스타를 받쳐줄 투수가 없자 트리플A에서 R.A. 디키를 불러올리며 백차승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단 한 경기를 위해 선수를 교체해야 했는데, 디키와 보직이 겹치는 백차승이 선택되고 말았다. 존 매클라렌 감독이 "백차승 입장에선 부당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롱릴리프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한 배경이 여기에 있었다. 시애틀을 떠난 백차승은 이제 캘리포니아에서 야구 인생의 '2막'을 시작한다. 샌디에이고는 여러모로 백차승이 안착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 우선 메이저리그에서 투수에게 가장 유리한 펫코파크가 홈구장이다. 통산 땅볼과 플라이볼의 비율이 1.58인 백차승에게 광활환 외야의 펫코파크는 안성맞춤이다. 장타 허용에 대한 두려움을 지우고 타자와의 싸움에 집중한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만하다. 둘째, 샌디에이고 선수단은 대변혁의 전환기에 있다. 내셔널리그 최악의 승률(0.377)에 그치고 있는 샌디에이고는 조만간 대대적인 선수단 정리 작업에 돌입할 계획이다. 7월말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맞춰 몸값 비싼 노장들을 팔아치우고 젊은 선수들로 물갈이를 단행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통산 350승에 빛나는 그렉 매덕스도 트레이드 대상으로 거론될 만큼 케빈 타워스 단장의 의중은 확고하다. 좌완 랜디 울프도 트레이드 카드로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플레이오프 진출이 어려워진 탓에 내년 이후를 대비하는 체제로 바꿔가겠다는 의지다. 더 이상 유망주로 불리지는 않지만 빅리그 경력이 많지 않고 몸값이 저렴한 백차승(39만 2500 달러)에게 좀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여지는 충분하다. 셋째, 샌디에이고 선발진은 현재 부상의 악령에 시달리고 있다. 에이스 제이크 피비가 부상자명단(DL)에 올라 있는 상태에서 크리스 영 또한 22일 앨버트 푸홀스(세인트루이스)의 직선 타구에 안면을 강타당해 역시 DL에 등재됐다. 영은 코뼈와 광대뼈 일부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어 복귀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백차승에게 생각보다 빨리 선발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 샌디에이고는 현재 울프-저스틴 저마노(션 에스테스)-윌프레도 레데스마-매덕스로-이어지는 선발진을 가동하고 있다. 영의 이탈로 빈 한 자리는 신예 조시 뱅크스가 맡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 자리를 백차승이 차지할 확률도 무시 못한다. 버드 블랙 감독의 언급은 아직 없지만 지역 신문 은 일단 '백차승이 불펜투수로 기용되면서 임시 선발로 나설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백차승은 시애틀 시절 번번이 약속을 어기는 구단의 처사에 마음 고생을 해야 했다. "내년에는 너를 선발로 쓰겠다"며 배려하는 듯했던 시애틀은 그 때마다 약속을 어겼다. 좀처럼 선발 등판 기회를 잡기 어려운 상황에서 해결책은 단 하나. 시애틀 탈출 뿐이었다. 결국 5월이 가기 전에 트레이드가 성사되면서 새롭게 도약할 호기를 잡았다. 비 내리는 시애틀을 떠나 샌디에이고에서 새 출발하는 백차승. '빅리그 선발 10승'이란 목표를 햇살 가득한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이룰지 지켜보자. workhorse@osen.co.kr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