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탬파, 김형태 특파원] 20세 신출내기에게 밀린 베테랑 투수의 심정은 착잡하다. 기대했던 선발 자리를 새카만 후배에게 넘겨주고 불펜으로 원위치한 기분은 미루어 짐작 가능하다. 그러나 박찬호(35.LA 다저스)는 의연했다. '제2의 샌디 코팩스'로 불리며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클레이튼 커쇼에 밀려 롱릴리프로 원위치한 박찬호는 "원래 다 그런 것 아니냐"이라며 담담하게 반응했다. 31일(한국시간) LA 지역 신문 에 따르면 박찬호는 "(선발 탈락은) 내가 좋아하거나 원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힘쓸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선발 재진입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에도 나는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아 선발 투수가 됐다. (젊은 투수가 노장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세대가 바뀌면서 반복되는 일(I try to hang in there. When I was young, I took someone's spot. It's generational)"이라고 말했다. 올 시즌 15경기에서 박찬호는 1승1패1세이브 방어율 2.37의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 18일 LA 에인절스전에선 선발 투수로 나서 4이닝 2실점(1자책)으로 무난한 투구를 펼쳤지만 곧바로 불펜으로 복귀했다. '다저스의 미래'로 불리는 커쇼를 다저스가 선발투수로 기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범경기 부터 계속된 호투로 점점 입지를 넓혀온 박찬호로선 속이 편할 리 없다. 커쇼의 승격 소식을 듣자마자 LA 지역 한국 기자들에게 한 첫 마디가 "짜증스럽네"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박찬호는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베테랑 답게 팀의 촉망받는 후배를 칭찬하면서 선배 다운 의젓함을 내보였다. 커쇼에 대해 평을 해달라는 질문에 박찬호는 "샌디 코팩스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60년대 '황금의 왼팔'이자 다저스 역대 최고 투수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코팩스의 투구를 박찬호가 실제 본 적은 없다. 코팩스는 66년을 끝으로 은퇴했고, 박찬호는 73년 생이다. 하지만 '코팩스의 전성기 피칭이 바로 이 것이었겠구나'하는 느낌을 받을 만큼 커쇼의 투구가 인상적이었다고 박찬호는 평가한 것이다. 코팩스와 박찬호는 잘 알려진 절친한 사이다. 박찬호가 플로리다에서 스프링트레이닝 캠프에 참가할 때면 코팩스는 운동장을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지난해 뉴욕 메츠에 입단했을 당시에도 코팩스는 포트세인트루시의 메츠 캠프를 찾았고, 이 사실은 뉴욕 언론에 의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찬호의 말대로 젊은 신예가 노장의 자리를 빼앗는 것은 야구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박찬호도 97년 당시 페드로 아스타시오를 제치고 5선발 자리를 차지했다. 노장의 설움이 그래서 서럽다. 하지만 박찬호의 커리어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젊은 선수 이상의 실력을 보유했음을 올 시즌 보여주고 있다. 다만 운이 없었을 뿐이다. workhorse@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