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로마, 이건 특파원] '나폴리 팬 여러분, 이번 경기에서 나를 응원해 주십시오'.
지난 1990년 월드컵 홈팀 이탈리아와 준결승전을 앞두고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말이었다. 자신이 6시즌을 뛴 나폴리에서 준결승전을 갖게 됐던 마라도나는 이 발언으로 이탈리아의 지역 감정을 자극했다. 많은 나폴리 팬들은 조국 이탈리아 대신 자신들의 영웅인 마라도나를 그리고 그가 뛰는 아르헨티나를 응원했다.
아직까지 국가대표에 대한 관심이 K리그보다 앞서는 한국의 현실에서는 생소하지만 유럽 축구에서는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유럽에서는 국가대표보다는 클럽 축구에 더욱 많은 관심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모습이 모든 유럽 국가에 해당되지는 않는다. 축구를 좋아하긴 해도 어떤 나라는 클럽, 또 다른 곳에서는 국가대표에 대한 관심이 크다.
기자는 지난달 24일부터 유로 2008 진출국들의 평가전 5경기를 현장에서 취재하면서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응원 모습에 주목했다. 각 국의 국민성이 다르듯 응원 모습도 틀렸다.
▲ 네덜란드, 이탈리아 - 대표팀 경기 맞아?
네덜란드와 이탈리아는 당초 예상보다는 응원 열기가 부족했다.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와 평가전을 치른 로테르담의 더카윕에는 예상보다 빈 자리가 많이 보였다. 4만 여 명을 수용하는 경기장에 2만 8000~3만 명 정도가 들어찬 것. 당시만 하더라도 첫 평가전이었고 루드 반니스텔로이 등 주요 선수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보도가 있던 탓이기도 했다.
응원 역시 밋밋했다. 한국 축구장에서 들려왔던 '오! 필승 코리아' 나 '대~한민국' 같은 구호를 듣기 힘들었다. 다만 골이 들어갔을 때 스피커에서 나온 음악에 맞추어 박수를 치는 모습만 보여주었다.
5월 30일 피렌체에서 열린 벨기에와 평가전을 지켜본 이탈리아 관중들 역시 광적인 응원이 인상적인 세리에A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빈 자리도 많이 보였다. 경기 중 간간이 '이딸리아, 이딸리아' 라는 구호가 울려퍼지기도 했지만 한두 차례에 불과했다. 로마 제국 붕괴 후 지역 도시 국가로 오랜 시간 동안 분열되어 있었던 이탈리아의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국가보다는 지역을 대표하는 클럽에 더욱 관심을 많이 쏟고 있기 때문이었다.
▲ 체코 - 응원은 골대 뒤에서
5월 27일 체코 프라하에 위치한 에덴 스타디움 역시 만원 관중은 아니었다. 그러나 골대 뒤에서 펼쳐지는 응원 열기는 네덜란드나 이탈리아의 관중들보다 훨씬 더 뛰어났다. 리투아니아와 경기에서 양 쪽 골대 뒤쪽에 있는 관중들은 노래와 구호를 외쳐댔다. 응원 리더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 명이 노래를 선창하면 다른 사람들이 호응하는 형태. 골대 뒤에서 응원이 나오면 본부석이나 그 반대쪽 관중들은 박수를 치며 따라가는 모습이었다.
▲ 러시아-터키, 축구응원은 곧 애국심
러시아와 터키 축구팬들을 평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자가 직접 취재한 경기는 자국이 아닌 독일이라는 제 3국에서 열렸기 때문. 따라서 5월 25일 보쿰(터키 v 우루과이)과 28일 부르크하우젠(러시아 v 세르비아)에서 열린 경기를 찾은 관중들 대부분은 독일에서 살고 있는 터키인과 러시아인들이었다.
이들은 경기 내용보다는 조국의 대표팀이 뛰고 있다는 것에 설레어했다. 경기 시작 전부터 국기를 어깨에 걸친 관중들이 많았고 손자 손녀 손을 잡고 경기장을 찾은 노인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경기 내내 자국의 이름을 연호했고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더라도 박수로 격려했다.
한 터키 관중은 경기가 끝난 후 피치에 난입해 터키 국기를 흔들어댔다. 러시아 관중들은 경기에서 승리하자 동네가 떠나가라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시내를 활보하기도. 이들에게는 대표팀의 경기가 승리 여부보다는 조국에 대한 애국심을 표현할 수 있는 장이었다.
bbadagun@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