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들에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름다운 연인이 옆에서 사회 정의를 구현할 수 있게 도와준다. 국내 드라마 속의 토종 영웅들 역시 악의 무리를 물리치면서도 가슴 속에 애련하고 가슴 떨리는 사랑을 하나씩 품고 있다. 규수(閨秀). 남의 집 처녀를 정중하게 이르는 말이며 학문과 재주가 뛰어난 여자를 말한다. TV사극 속 여주인공들은 모두 규수들이다. 과거에는 전자의 의미가 강했지만 요즘에는 후자에 가깝다. 과거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영웅들의 그녀는 한가지 모습이었다. 양반집 규수라는 배경이 대부분이었고 참하고 얌전하고 마음씨 곱고 가족에 순종했다. 그러나 요즘 TV에 등장하는 그녀들은 변화된 사회상을 반영하듯 당차고 비상하며 독립적이다. 조금 과한 설정으로 푼수 같고 뻔뻔스럽기까지 하다. KBS 2TV 미니시리즈의 자존심을 회복하며 인기리에 종영한 ‘쾌도 홍길동’에서 홍길동(강지환 분)의 그녀 허이녹(성유리 분)은 혀를 내두를 만큼 엉뚱하고 뻔뻔스럽다. 식탐이 많아 웬만한 장정들보다 밥을 많이 먹고 덤벙대고 남자 옷이 편해 남장하고 살아간다. 단순하고 조금 멍청하기까지 한 이녹이는 ‘뜨악’ 입이 벌어질 만큼 전례없이 안예쁜 여주인공이다. 그러나 길동이와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 잡은 것은 뛰어난 머리와 학식을 가지고 있는 양갓집 서은혜(김리나 분)가 아니라 따뜻하고 뜨거운 심장을 가진 덤벙쟁이 이녹이다.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SBS 수목극 ‘일지매’의 그녀들은 서로 확연히 다른 인물이지만 진화된 캐릭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일지매(이준기 분)의 가슴 떨리게 만드는 주인공 은채(한효주 분)는 지적이고 야무지고 똑똑한 여인이다. 일반 사대부 여인네들과 달리 세상일에 관심 많고 조선 최초로 여관을 생각해내 큰 수익을 남길 만큼 장사 수완도 좋다. 또 남몰래 가난하고 힘없는 양인들을 후원하는 따뜻한 마음씨와 악에 맞설 수 있는 당당함을 지녔다. 일지매와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봉순(이영아 분)은 이녹이보다 더욱 가관이다. 공갈스님인 양아버지와 부녀공갈사기단으로 사기치며 떠돌아 다닌다. 공갈에게 “아무짝에 쓸데 없는 방구탱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 왈가닥이지만 가슴 아픈 과거와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을 지녔다. 9일 첫방송되는 KBS 2TV ‘최강칠우’에서 칠우(에릭 분)의 유일한 여인 소윤(구혜선 분)은 소위 말하는 화냥녀다. 몰락한 양반집 딸로 중국에 공녀로 건너갔다 돌아와 칠우와 재회한다. 소윤은 전통적으로 사극에서 보여졌던 여인상에 가장 가깝지만 외유내강형으로 어떤 시련과 역경이 와도 다부지게 이겨내는 인물이다. 영웅들의 이야기를 다룬 사극에서 여주인공의 존재감은 미약하다. 그러나 TV속 영웅들의 모습이 현대에 맞게 인간적인 모습이 추가되면서 상대 여배우들의 캐릭터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과거 그림 속의 여인 같이 다소곳하고 단아한 모습을 벗어 버리고 현실 속에 대중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편안하고 친근하면서도 강한 캐릭터로 진화하는 중이다. miru@osen.co.kr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