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끝났을 때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아쉬웠다. 그러나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극복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렇게 아시안컵이 끝났다". 지난 2일 대만과의 아시안컵 B조 예선 3차전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안익수(43) 감독의 소회다. 그러나 전화 속으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의외로 밝았다. 마치 하늘의 장난처럼 불가능에 가까운 경우의 수가 들어맞아 아시안컵 4강 진출에 실패한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의 사령탑. 그는 희망을 말하고 있었다. 안익수 감독은 지난해 12월 여자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2006년 대교 코치로 합류해 여자축구와 인연을 맺은 그는 고 최추경 감독의 뒤를 이어 대교를 이끌었고, 6개 대회에서 3관왕에 등극하고 3차례 준우승을 거두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그렇게 그는 화려하게 여자 대표팀 사령탑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기대 속에 출범한 안익수호는 시작부터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는 어린 선수들을 이끌 것이라 기대했던 김여진(29, 서울시청), 강선미(29, 서울시청), 진숙희(30, 현대제철), 유영실(33, 대교캥거루스) 등 베테랑들의 부상이 컸다. 이들을 제외하면 평균 연령 22세에 불과한 어린 대표팀은 동아시아선수권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3연패, 최하위)을 거두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는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풀어냈다. "당시에는 우리 선수들이 아시아의 강호라고 불리는 북한, 중국, 일본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다. 그 때 내 역할이 선수들에게 '할 수 있다'는 의식의 전환을 심어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3개월간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최선을 다했다. 여기에 경기 내내 강팀을 상대로 맞설 수 있는 체력 그리고 전술, 조직력을 갖추고자 했다. 어떻게 보면 이번 아시안컵에서 이 성과가 조금이나마 드러난 것이라 생각한다". 아쉬움 속에 기쁨이 담겨있었다. 자신과 선수들이 거둔 성과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이는 5년 만에 승전보를 올린 일본과의 1차전(3-1 승)에 대해 말할 때 안익수 감독은 애써 숨기는 모습이었다(여자 대표팀은 지난 2003년 6월 21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 여자선수권 3~4위전에서 황인선의 결승골로 1-0으로 일본을 꺾은 후 5년 간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다). "일본과의 첫 경기는 동아시아선수권과는 많은 면에서 차이가 났다. 고무적이었던 것은 전반과 후반 내내 일관된 경기력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위기 대처능력, 체력, 경기를 풀어가는 능력에서 발전했다는 증거였다. 동아시아선수권 이후 단 한 번도 쉬지 못하고 달려온 우리 선수들의 결과물이었다". 일본전의 성과가 기뻤던 만큼 호주전 패배(0-2 패)는 아쉬웠다. 무승부만 거뒀어도 4강 진출이 사실상 확정지을 수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어느 정도 체력을 끌어 올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단 하루를 쉬고 더운 날씨에서 경기를 하는 악조건은 우리 선수들에게 버거웠다. 선수들의 발목을 잡는 잔디상태와 질척이는 그라운드 그리고 경기 도중에도 내리는 장대비 속에서 강호 호주는 버거웠다". 안익수 감독의 아쉬움은 대만전(2-0 승)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다득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결코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경기 당일 새벽에 비가 왔으니 그라운드 사정은 최악이었고, 말간 하늘 속에서 더운 열기는 선수들을 지치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 도중에 폭우까지 내리니 우리가 준비한 세밀한 축구는 힘들었다". 그러나 안익수 감독은 이내 아쉬움을 떨쳐내며 이런 것도 뛰어넘어야 진정한 강자라고 했다. "일정이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일본이 2차전에서 대만에 대승을 거뒀다. 우리도 2차전에서 호주가 아니라 대만을 만났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지나간 일에는 연연하고 싶지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다". 그랬다. 안익수 감독이 언제나 강조하는 것은 여자 대표팀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 애초 안익수 감독의 아시안컵 출사표 또한 '발전해 나가는 경기력을 보이면서 희망을 줄 수 있는 팀이 되겠다'였다. 안익수 감독의 시선은 이미 '2008 피스퀸컵 수원 국제여자축구대회'(6월 14일~21일)를 향해 있었다. "아시안컵의 가장 큰 성과는 역시 어느 상대를 만나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그리고 이 자신감을 무기로 피스퀸컵에 도전하고자 한다. 물론 이번에도 어떤 성적을 내겠다는 말은 할 수 없다"(웃음). 마지막으로 안익수 감독은 자신이 여자축구에 심고 싶은 한 가지 사명을 밝혔다. 이는 바로 국가를 대표한다는 사명감. "여자축구는 상대적으로 태동 시기가 늦어 의식적인 면에서 남자축구에 조금 떨어지는 감이 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항상 국가대표라는 상징을 강조한다. 그리고 조금씩 변해가는 선수들을 보면서 지도자로서 즐거움을 느낀다. 이런 일은 보통 제시하는 사람은 쉬운 반면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사람을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따라 와주는 선수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stylelomo@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