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아쉽지만 다시 시작해야죠.” 한화 3루수 이범호(27)에게 지난 4일은 잊을 수 없는 밤이 됐다. 2003년 8월3일 대전 SK전부터 이어온 연속출장이 615경기에서 마감됐기 때문이었다. 허리가 조금 좋지 않아 이날 광주 KIA전 선발라인업에서 제외된 이범호는 대타로 나올 예정이었으나 경기가 7회말 강우콜드로 끝나며 허무하게 기록이 끊겼다. 어렵게 연속출장을 이어오며 리그에 몇 안 되는 철인으로 명성을 굳힌 이범호로서는 야속한 비가 아닐 수 없었다. 615경기 연속출장은 역대 3위에 해당하는 대기록. 이범호는 3위는 물론 역대 1위가 될 수 있는 유력한 선수로 손꼽혔었다. 하지만 이범호는 아쉬움을 털어버렸다. 이범호는 “아쉽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다시 새로 시작하면 된다”고 웃었다. 이범호는 “그동안 5년 정도 뛰면서 615경기 연속 출장했다. 1000경기에 연속출장하려면 8년을 뛰어야 한다. 아직 나이도 젊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범호는 만 27살로 나이가 젊어 가능성이 충분히 남아있다. 최다경기 연속출장기록(1014경기)을 갖고 있는 최태원도 만 25살 때부터 기록이 시작됐다. 그러나 상당한 시간과 꾸준함이 요구되는 연속경기 기록인 만큼 당분간은 거리가 멀어지게 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범호에게는 새로운 기록이 또 하나있다. 다름 아닌 20-20 클럽이다. 홈런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3루수로는 최초로 4년 연속 20홈런을 쏘아올린 이범호는 올 시즌에도 9홈런을 기록하며 5년 연속으로 그 기록을 늘릴 조짐이다. 하지만 그동안 도루와는 담을 쌓았던 이범호가 도루에도 나서고 매우 이색적인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까지 8년간 통산 도루가 24개였다. 이범호는 “올해 도루가 늘었다. 발은 빠른 편이 아니지만 눈치를 봐가면서 도루를 하고 있다”고 활짝 웃었다. 올 시즌 이범호는 벌써 도루를 8개나 성공시켰는데 그 중 3차례나 한 경기 2도루의 멀티도루를 기록했다. 시즌이 반도 지나지 않았지만 한 시즌 개인 최다도루를 기록하고 있다. 김인식 감독도 “덕 클락·추승우가 들어와 팀 기동력이 좋아졌다. 그동안 뛰는 선수들이 없어서 도루를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범호는 의외긴 의외다. 상대팀의 눈치를 봐가며 슬금슬금 훔치고 있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범호의 궁극적인 목표는 연속출장도 아니고 20-20 클럽도 아니다. 바로 안정된 수비를 갖춘 타율 2할8푼~3할대 3루수가 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이범호는 “3루수라면 일단 수비를 잘해야 한다. 수비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 수비를 못하면 욕얻어먹는다”며 3루수 수비에 충실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 말처럼 올해 이범호의 3루 수비는 물이 오를 대로 올랐다. 이어 이범호는 “타율도 조금 올랐으면 좋겠다. 최소 2할8푼에서 3할 정도를 목표로 잡겠다”고 말했다. 비록 연속출장은 끊겼지만 건실한 3루수 이범호의 꽃은 꺾이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