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환 감독, 퇴장과 맞바꾼 '기록되지 않은 홀드'
OSEN 기자
발행 2008.06.11 07: 38

"욕은 안했어. 선수들이 말 못하니 내가 대신 해준거지뭐". 10일 목동 KIA전에서 승리한 우리 히어로즈 이광환(60) 감독의 표정이 달랐다.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근엄한 목소리였다. 이 감독은 평소 경기의 승패를 떠나 한결같은 웃음으로 사람들을 맞았다. 너그럽고 소탈한 미소가 가득한 감독이다. 그러나 이날 이 감독은 올 시즌 첫 감독 퇴장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 때문인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밝아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고수들이 대결전 슬쩍 흘리는 미소 속의 '비장함'이 비쳤다. 히어로즈가 3-1로 앞서 있었지만 7회 2사 만루에서 KIA가 절호의 득점 기회를 맞고 있었다. 타석에는 김원섭이 서있고 볼카운트는 0-2. 무조건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하는 히어로즈 투수 송신영은 김원섭의 몸쪽으로 바짝 붙는 139km짜리 직구를 꽂았다. 그러나 강광회 구심의 손은 올라가지 않았다. 의아한 표정을 지은 송신영은 볼 판정에 아쉬운 듯 모자를 벗었다. 이 때 히어로즈 덕아웃에서는 이 감독이 걸어나오고 있었다. 이 감독은 곧바로 강 구심에게 어필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격앙된 목소리가 오가더니 이 감독이 배를 강 구심에 들이밀었다. 결국 냉정함을 유지해야 하는 강 구심도 참기 힘든 듯 이 감독의 퇴장을 선언했다. 그러자 이 감독은 곧바로 모자를 벗어 던져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이에 뒤로 한 발 물러났던 강 구심도 참지 못하고 폭발, 곧장 이 감독에게 달려들 기세를 취했다. 중간에 히어로즈 이순철 수석코치가 없었다면 일이 더욱 커질 뻔한 순간이었다. 이 감독은 당시 순간에 대해 "(강 구심에게) 퇴장시키라고 했잖아. 그랬더니 퇴장시키더라"고 껄껄 웃은 뒤 "다른 의도는 없었다. 선수들이 연패를 끊기 위해 이기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고 밝혔다. 또 "다들 알다시피 선수들 연봉도 깎이는 등 힘든 과정 속에 창단했다. 선수들 사기도 올려줄 겸 해서 어필에 나섰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감독은 강 구심과 나눈 이야기에 대해서는 "(심판에게) 좀 긁는 소리를 했다. 그냥 감독과 심판들 사이에서 오가는 말이라 여겨달라"며 더 이상의 확전은 삼가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이 감독의 감독실 벽에는 항상 별표 모양의 그래프가 그려져 있다. 소위 '스타시스템'이라는 것으로 누가 봐도 투수 운용 방침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항상 백업 선수, 2군 선수, 부상 선수 들의 명단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그런데 이날 경기 전 감독실에는 별 모양의 그래프만 있을 뿐 나머지 선수들의 명단이 보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 감독은 "이제 모든 선수들을 파악했다. 누가 어떤 상태인지 적지 않고도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지웠다"고 설명했다. 또 이날 경기 전 히어로즈 선수들은 종전에 보지 못한 팀플레이 훈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시즌 전 제주 캠프에서 한 이후 처음이다. 이 감독은 "이제 어느 정도 짜임새를 갖춰가고 있는 만큼 저런 훈련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생각했다"고 경기장에 모여 있는 선수들을 찬찬히 둘러봤다. 황재균, 유재신, 강정호를 대상으로 여느 때 처럼 손수 펑고까지 쳤다. 결국 이 감독은 뭔가 새로운 변화를 주고 있었고 마침 분명한 선을 그을 수 있는 찬스가 생겨난 셈이다. 이 감독의 어필 때문이었을까. 송신영은 연거푸 스트라이크 2개를 꽂아 2-3를 만든 뒤 바깥쪽 변화구로 김원섭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히어로즈 타선은 8회 공격 기회가 오자 기다렸다는 듯 장단 8안타를 쏟아부어 7득점,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그동안 이 감독에 대해 좋지 않은 글로 채워졌던 우리 히어로즈 홈페이지도 순식간에 칭찬글이 점령했다. "까맣게 타던 속이 하얗게 변해가더라. 십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간 느낌이다", "사랑스럽다. 오늘은 칭찬해주고 싶다" 등의 글들이 빼곡하게 올랐다. 또 각종 포털사이트의 댓글도 이 감독의 어필을 지지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제목은 '오늘 홀드는 이광환'이었다. 이광환 감독의 어필 장면이 이날 경기의 승부처였으며 결과적으로 이겼기 때문에 홀드를 줘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가벼운 어필이었으면 더 좋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7연패를 끊은 후 다시 5연패의 깊은 수렁에 빠진 히어로즈 선수들에게는 이 감독의 보기 드문 극강의 카리스마가 '하나'라는 일체감을 분명하게 각인시켜준 셈이다. 의도됐든 의도되지 않았든 5분 정도의 이날 어필은 히어로즈의 저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훌륭한 촉매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올 시즌 히어로즈가 거둘 성적을 떠나 앞으로 '2008 시즌 첫 감독 퇴장'이라는 불명예 기록은 '기록되지 않은 홀드'와 함께 나란히 야구팬들에게 회자될 전망이다. letmeout@osen.co.kr . . . . . 10일 열린 목동 KIA전에서 우리 히어로즈 이광환 감독(가운데)이 강광회 주심(왼쪽)에게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목동=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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