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한국 축구에는 중앙수비수가 없다"
OSEN 기자
발행 2008.06.17 08: 25

“저라고 포백을 쓰고 싶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한국 축구에 쓸 만한 중앙 수비수가 없다는 겁니다. 여기서 쓸 만한 중앙 수비수란 포백에 맞는 중앙 수비수를 말하는 겁니다. 만약 있다면 천거를 해주십시오. 저 자신도 정말 좋은 중앙 수비수를 찾고 있습니다”.
지난 15일(이하 한국시간) 새벽 투르크메니스탄과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3차 예선 3조 5차전이 끝난 후 아슈하바트 국제공항에서 허정무(53)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남긴 넋두리다.
최근 허정무호는 수비 전술을 놓고 오락가락하는 인상이 짙다. 허정무 감독이 대표팀을 맡았던 초기 “한국 축구에 맞는 수비전술을 찾고 있다”던 그의 주장이 이번에는 “한국 축구에 맞는 수비 전술은 결국 스리백”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된 셈이다. 이는 요르단 및 투르크메니스탄과의 3차 예선에서 허정무호가 위기의 순간 포백에서 스리백으로 변했다는 것이 증거다.
허정무 감독은 과연 스리백이 세계 축구에서 뒤지는 전술인지 되묻는다. 포백이나 스리백은 전술적 선택일 뿐 축구의 수준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 동안 허정무 감독이 주장해온 “상대에 따라 다른 수비 전술을 택한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최근 K리그에서 스리백이 아닌 포백을 사용하는 팀이 늘었습니다. 수원이나 서울, 성남 같은 강 팀이 포백을 사용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한국 축구가 포백으로 변하고 있다는 말일 겁니다. 저도 그렇게 믿었고, 그 동안 포백을 실험했던 이유입니다. 그런데 막상 포백을 쓰자니 마땅한 중앙 수비수감이 없더군요".
허정무 감독은 지나친 실험이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새로운 수비수 발굴에 힘써왔다. 허정무호의 ‘황태자’로 불렸던 곽태휘나 곽희주, 조용형 그리고 이정수, 황재원 등의 대표팀 발탁은 허정무 감독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수비 실험에 매진했던 허정무 감독의 선택은 동아시아 선수권과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을 거치며 절정에 오르는 듯했다. 그러나 부상과 추문이 문제였다.
"솔직하게 묻고 싶습니다. 한국 축구에서 포백으로 믿을 만한 선수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어차피 대표팀에서 수비수로 쓸 만한 선수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대표팀의 포백 중앙 수비수감은 없더군요. 믿었던 조병국은 고막에 문제가 생겨 중도 탈락했고, 다른 선수들도 한 가지씩은 아쉬웠습니다".
허정무 감독은 부상과 불미스러운 일로 대표팀에서 탈락한 곽태휘와 황재원의 부재를 안타까워했다. 그만큼 허정무 감독이 포백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는 이야기다. “곽태휘는 정말 믿음직한 수비수였습니다. 공격은 수비에서 시작된다는 저의 지론과도 맞는 선수였고, 축구에 대한 판단력도 대단했습니다. 여기에 황재원도 기대할 만한 선수였습니다. 물론 동아시아 선수권에서 본격적인 테스트를 하려는 과정에서 사고가 나고 말았죠. 그런데 황재원이 탈락하지 않았다고 해도 포백에 맞는 중앙 수비수감인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도 스리백에서는 훌륭한 중앙 수비수지만, 포백은 그리 경험하지 못했으니까요. 마치 조용형이 스리백에서는 과거 홍명보를 보는 듯한 플레이를 보여주지만, 포백에서는 몇 가지 아쉬운 점을 드러내는 이유와 같습니다”.
이쯤에서 허정무 감독이 생각하는 중앙 수비수감의 기준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수비수의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으로는 스피드, 태클, 제공권, 패스, 지구력 등을 들 수 있다. “포백에서 중앙 수비수는 외로운 자리입니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온갖 비난을 받습니다. 수비수가 실수를 하면 그 뒤의 스위퍼가 메워줄 수 있는 스리백과 달리 포백은 개인 능력의 비중이 높습니다. 개인적으로 스피드와 제공권 그리고 패싱력을 갖춘 선수를 중앙 수비수감으로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뛰어난 공격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면 바랄 게 없을 겁니다”.
여기에 허정무 감독은 최근 흔들리고 있는 대표팀의 좌우 풀백에도 고민이 많았다. 소속팀 경기 결장으로 경기력이 저하된 이영표와 부진한 모습으로 투르크메니스탄전에서 전반 27분 교체된 오범석이 그 대상이다.
"포백에서 중앙 수비수만큼 중요한 포지션이 좌우 풀백입니다. 풀백이 어떤 오버래핑을 보여주느냐 혹은 측면 수비를 해주냐에 따라 경기 결과가 달라집니다. (이)영표에게는 한 경기 정도 쉬면서 경기를 지켜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고, (오)범석이에게는 ‘정신차려’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이 선수들을 제외하면 대표팀에는 풀백이 아닌 윙백 밖에 없습니다. 부상으로 빠진 김동진도 스리백에서 윙백을 맡고 있는 선수고, 최효진이나 김치우도 마찬가지입니다. 3-4-3 혹은 3-5-2를 고려할 수 밖에 없던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결국 허정무 감독으로서는 스리백이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뜻이다. 이는 대표팀의 한정된 자원에서 내린 선택이자 최종 예선을 앞두고 더 이상의 수비 실험은 힘들다는 의지의 소산이다.
허정무 감독은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 가지 당부를 했다. “최근 대표팀이 보여주고 있는 경기력에 불만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월드컵 예선에서 우리가 단 한 번도 수월했던 적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베트남, 몰디브 등 약체라고 평가했던 상대에게도 고전했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한 경기 한 경기 결과에 신경 쓸 수 밖에 없는 사정도 이해해주리라 믿습니다. 최근 대표팀의 경기를 보면서 앉아 있던 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경기가 끝나고 나면 온 몸에서 힘이 빠집니다. 이제 대표팀은 최종 예선에 진출했습니다. 좀 더 지켜 봐주시면 반드시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로 보답하겠습니다”.
stylelomo@osen.co.kr
.
.
.
.
.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