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시절이 그립습니다. 그러나 그만둬야 할 시기는 언제나 있는 법이고, 시작을 제대로 했다면 마무리도 좋았으면 하는 심정이었습니다. 이제 제 꿈은 월드컵에 있습니다. 어떤 일이라고 상관없습니다. 심판에 관련된 일로 월드컵에 나갈 수 있다면 제 평생의 영광일 겁니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문로 대한축구협회에서 열린 제 2차 K리그 전임심판 전체교육이 끝난 후 만난 권종철 전 심판의 고백이다. K리그 최고의 심판으로 명성을 날리던 그는 지난해 FA컵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최근 권종철 전 심판은 현역시절보다 더 바쁘다. ‘버림받은 종족’이라고 칭할 정도로 부담스런 짐이자 평생의 업이었던 심판을 그만뒀지만, 심판위원이란 새 직함을 달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의 역량을 그냥 놔두기에는 아깝다는 심판위원회의 결정이었다. “심판의 마지막 단계는 국제 심판입니다. 그리고 국제 심판으로 가장 큰 영광을 꼽자면 월드컵에서 심판으로 활약하는 것이겠지요. 아깝게도 전 2002 한일 월드컵 그리고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모두 후보에서 탈락했습니다. 심판으로는 못 이룬 꿈을 심판감독관 혹은 보조강사로도 월드컵에 출전하고 싶었습니다. 심판위원회에서 이런 기회를 주셨지요”. 꿈이 있는 사람은 현실의 벽에 무너지지 않는 것일까? 심판위원이라는 직함이 무보수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날도 그는 K리그 전반기 동안 심판들의 판정을 모아 54개 동영상으로 만드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동영상 작업 자체는 심판위원회의 역할이 컸지만, 일일이 고르고 규정에 따라 잘잘못을 설명하는 것은 오롯이 권 심판위원의 몫이다. 이를 위해 그는 10여 일간 고민을 거듭했다고 한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요? 은퇴하자마자 수석 강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현역으로 계신 분들 중에서 이상용 심판 같은 경우 저보다 고참이시고 역량도 뛰어난 분이 많습니다. 그런 분 앞에서 아는 척을 하려니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보수요? 심판위원에 따로 보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따로 개인 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사업에 신경 쓰랴 심판 교육에 신경 쓰랴 정신이 없지만 마음만은 즐겁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잖아요?”. 권 심판위원은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바로 심판에게 자긍심을 심어주지 못하는 지금의 환경이다. ‘버림받은 종족’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손가락질만을 받는 심판에서 벗어나 존경을 받는 심판으로 바꾸는 것이 심판위원으로서 그의 또 다른 목표다. “심판이란 참 어려운 직업입니다. 매 순간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서 무조건 옳은 판정을 내리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사실 오늘 몇몇 판정은 동영상으로 보는 것으로도 판단이 쉽지 않았습니다. 심판이 그만큼 힘들다는 증거일 겁니다. 현역 때 하지 못했던 것들을 심판들에게 요구하는 것 같아 미안합니다. 그래도 심판은 더 집중해서 판정에 임해야 합니다. 그래야 심판이 존경을 받는 직업으로 변할 수 있을 테니까요”. stylelomo@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