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도 훨씬 지난 노배우가 머리카락에 가발을 붙이고 ‘말총머리’를 했다. 목소리는 예전 정치드라마에 나왔던 것처럼 간드러졌고 도포자락을 휘날리고 다닌다. SBS TV 월화드라마 ‘식객’에 나오는 대령숙수 최불암(68)의 모습이다. ‘식객’은 변칙 편성이라는 비난 속에서도 가장 먼저 작품성으로 눈길을 끈 지상파 방송 3사의 새 월화드라마다. 그 중심에 최불암이 우뚝 서 있다. 최불암이 연기하는 대령숙수는 영화 ‘식객’에서 김진태가 만들었던 캐릭터와는 딴판이다. 김진태의 캐릭터가 위엄을 먼저 떠올리게 했다면 최불암의 캐릭터는 친근감이 더 앞선다. 물론 한 평생 한 우물을 판 장인의 풍채는 두 캐릭터에서 공통적으로 묻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최불암은 어떤 고민으로 이 같은 캐릭터를 창조했을까. OSEN과의 전화통화에서 최불암은 “한 평생을 주방에서 산 인물이고 또 손님들을 맞이해 대접했을 시간들을 유추해 볼 때 먼저 여성성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고 밝혔다. 하이톤의 간드러진 목소리를 그런 이유에서 만들어졌다. 운암정을 찾은 손님들에게 양 손을 비비며 최고의 예를 갖추는 것도 평생을 간직해 온 서비스 정신에서 나온 모습니다. 최불암이 창조한 여성성은 운암정의 세 후계자 후보, 즉 성찬(김래원 분)과 봉주(권오중 분), 민우(원기준 분)의 ‘겨루기’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세 일급 요리사들이 만들어낸 음식을 하나하나 맛보면서 최불암이 쏟아냈던 표현들은 ‘여성화 된’ 대령숙수가 아니었으면 어울리지 않을 뻔했다. 예술가의 경지에 달한 대령숙수의 절대미각은 나비가 꽃밭을 날고 물고기가 바닷속을 헤엄치는 그래픽으로 형상화 돼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오묘한 맛을 시청자들에게 전했다. 말총머리는 ‘위생성’이라고 했다. 최불암은 “주방의 첫째 원칙은 위생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위생이 전제되지 않으면 그 가치는 반감된다. 머리를 뒤로 깔끔하게 묶은 것은 그런 이미지를 주고자 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나쁜 평이 나올까 염려스러웠는데 다행히 잘 어울린다고들 해 안심이 됐다”고 밝혔다. 위생을 강조하는 최불암의 ‘작은 액션’은 또 있다. 양 손의 위치다.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양 손의 높이가 허리 위쪽에 가 있는 경우를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최불암은 “요리사에게 손은 생명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내 손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면 절대 손을 함부로 할 수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한복을 입고 나오는 것도 이유가 있었다. 전통성이었다. “전통을 계승한 자로서 역사성을 표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한복을 입음으로써 그런 상징성을 더 높일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노배우가 분석한 캐릭터는 바로 ‘식객’의 1, 2부를 관통하는 중심이 됐다. 다소 어지러울 수 있는 도입부에 버티고 있는 최불암이라는 존재는 다양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주는 벼리였다. 젊은 배우들이 제 자리를 잡기 전, 드라마 초반부에서 최불암이 해내고 있는 일은 대령숙수 그 이상이다. 100c@osen.co.kr . . . . . 말총머리 한복 차림의 최불암 뒤로 두 젊은 배우 원기준과 권오중이 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