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LG 트윈스 성적이 밑바닥을 헤매면서 김재박 감독에 대한 회의론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 김 감독이 현대 시절 한국시리즈 4회 우승의 업적을 이룬 것이 허상이라면서 현재 LG 성적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들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김재박 감독의 야구는 어떤 색깔일까. 필자도 이 물음에 한 동안 답변을 하지 못했다. 1996년 김 감독이 처음 프로야구 사령탑을 맡을 때부터 옆에서 지켜본 필자이지만 딱히 무슨 야구라고 정의하기가 힘들었다. 세밀하고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는 야구 스타일은 ‘스몰 볼’이고 ‘관리야구’이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그러던 차에 후배기자가 딱 맞아떨어지는(내생각에는) 표현을 썼다. 이른바 ‘시스템 야구’라는 것이다. 김재박 감독의 야구는 ‘현장과 프런트가 시스템적으로 잘 돌아가는 팀에서 빛이 나는 야구’라는 의미였다. 여기서 말하는 시스템은 코칭스태프 구성은 물론 프런트의 지원조직을 일컫는 말로 사장이나 단장의 역할과는 다른 의미가 있다. 김재박 감독이 현대 시절 최고의 감독으로 탄생하는 데에는 12년간 단장과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김용휘 전 현대사장의 힘이 컸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 사장은 창단때부터 선수 트레이드 및 스카우트, 그리고 타구단을 압도하는 물량지원으로 단기간내에 팀을 우승구단으로 탄생시킨 주역이었다. 그렇다고 김 감독이 사장의 지원만으로 성적을 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김 사장이 선수들을 데려왔다면 운영과 기용은 전적으로 감독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현장의 감독 역할에 대해 관여는 하지 않는 대신 좋은 선수들을 발굴하고 부상을 최소화하며 전력을 최상으로 유지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기 위해 선수 스카우트와 부상 관리를 위한 트레이너 체제를 갖추는데 힘을 썼다. 그 결과 김 감독은 있는 자원을 효과적으로 운영하며 성적으로 기대에 부응했던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김재박 감독의 야구는 ‘시스템 야구’라고 정의하는 것이 가장 부합되는 표현으로 여겨진다. 그럼 LG에서는 왜 ‘시스템 야구’가 가동되지 않는 것일까. LG의 지원 시스템도 현대 못지 않게 잘 짜여져 있는 팀이라는 것은 정평이 나 있다. 현대는 오랜 세월 프런트와 현장이 함께 하며 유기적으로 돌아가며 호성적을 낸 것이고 LG에서는 김 감독과 프런트가 아직까지는 시스템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김용휘 사장은 김 감독이 현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LG 전력이 이전 현대만큼 탄탄하지가 못했다. 그런데 부상선수까지 속출하니 김 감독으로서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면서 “야구단 운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카우트와 선수 부상관리”라고 평했다. 김 사장은 “현재 LG 스카우트가 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 했지만 결과가 그렇게 됐을 뿐이다. 스카우트는 실수도 하지만 믿고 오랫동안 맡겨야 한다. 트레이너도 마찬가지이다. 트레이너를 코치 못지 않게 대우하고 권한을 줘야 한다. 당장 눈앞의 성적에 연연하기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선수관리에 힘을 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사장이 현대 야구단을 운영하던 시절 현대에는 타팀보다 많은 스카우트와 트레이너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베테랑 스카우트를 우대하며 꾸준하게 밀어줬고 트레이너는 파격적으로 코치로 승격, 다른 코치들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도록 만들었다. 일부 전문가들과 팬들은 선수단 성적은 감독의 능력에 전적으로 달려 있는 것으로 평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구단의 지원 시스템이 잘 가동되는 팀이 감독 능력보다 더 강한 팀이 될 수 있다. 감독은 있는 자원을 얼마만큼 효율적으로 운영하느냐의 능력 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히들 어느 감독은 선수들을 잘 키워서 좋은 성적을 냈다고 하면서 그렇지 못한 감독은 무능한 사령탑으로 평가절하 하지만 결국 그 선수를 데려다 준 것은 구단 프런트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김재박 감독은 프런트의 지원시스템이 잘 가동됐던 현대에서는 호흡이 잘 맞았던 코치들과 함께 ‘시스템 야구’를 펼쳐 호성적을 냈지만 2년째를 맞는 LG에서는 아직 제대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서 시스템이 가동되지 않고 있는 탓에 부진에 빠진 것으로 풀이된다. 그렇다고 김 감독과 LG 프런트가 불화를 빚고 있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시간이 문제이지만 LG도 어느 구단 못지 않게 시스템이 잘 갖춰진 구단이므로 머지 않아 김 감독의 ‘시스템 야구’도 정상 가동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 정상 작동이 오래 걸린다면 김 감독이 아닌 차기 감독이 시스템의 효과를 누릴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