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락, 자신조차 말릴 수 없는 허슬플레이
OSEN 기자
발행 2008.06.28 14: 51

[OSEN=이상학 객원기자] 장면#1. 지난 27일 문학구장. 5회초 선두타자로 나온 한화 클락이 우중간을 가르는 2루타로 출루했다. 4번 김태균의 우익수 뜬공 때 재빨리 태그업하며 3루까지 진루했다. SK 우익수 이진영의 어깨도 무소용이었다. 이어 5번 이범호가 좌익수 얕은 뜬공을 쳤다. SK 좌익수 조동화가 타구를 잡는 순간 클락이 득달같이 홈으로 쇄도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타구에 태그업해 홈인, 이범호의 뜬공은 희생플라이가 됐다. 이범호는 슬라이딩 과정에서 찰과상을 입고 치료받는 클락에게 다가가 등에 얼굴을 대며 감사를 표했다. 장면#2. 8회초 1사 1루. 클락이 SK 정대현으로부터 3루수 앞 땅볼을 쳤다. 1루 주자 김태완은 2루에서 포스아웃됐고 남은 건 타자 클락이었다. 하지만 클락이 재빨리 1루 베이스를 먼저 밟았다. 이 과정에서 SK 1루수 박정권과 부닥치며 한바퀴 뒹굴렀다. 클락의 왼쪽 무릎과 박정권의 왼쪽 정강이가 충돌했다. 클락은 어떻게든 병살타를 면하겠다는 마음이었고 예기치 못한 불상사가 일어났다. 박정권이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교체되는 사이 클락은 머리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내며 일어나 교체되지 않고 끝까지 경기를 소화했다. 과연 슈퍼맨이었다. 한화 외야수 덕 클락(32)은 올 시즌 명실상부한 프로야구 최고의 외국인선수다. 사실 시즌 전만 하더라도 클락은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외국인선수였다. 그 흔한 메이저리그 경력도 통산 14경기 출장이 전부였고, 마이너리그에서만 10시즌을 보내 젊은 선수들로부터 아버지로 불린 만년 마이너리거였다. 한화에 입단한 후에도 코칭스태프에서는 크게 기대를 걸지 않았다. 시즌 초 김인식 감독은 “수비와 주루만 잘해주면 좋겠다”고 말했고, 장종훈 타격코치도 “사실 처음에는 클락에 반신반의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클락은 올 시즌 73경기에서 279타수 87안타(4위)로 타율 3할1푼2리(13위)·17홈런(2위)·54타점(4위)·75득점(1위)·18도루(6위)·40볼넷(7위)으로 전천후 활약을 펼치고 있다. 2루타도 리그에서 가장 많은 21개를 마크하며 장타율에서도 전체 3위(0.591)에 올라있다. 출루율은 4할1리로 공동 13위. 장타율과 출루율을 합한 OPS(0.992)도 전체 3위에 랭크돼 있다. 기록상으로 어느 하나 모자란 부분이 없다. 그러나 클락이 더 많은 신뢰를 받고 있는 것은 외국인선수답지 않은 진정한 허슬플레이 때문이다. 클락은 주루에서든 수비에서든 곧잘 몸을 내던지고 있다. 수비에서는 다이빙캐치를 하며 주루에서는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자주 보이고 있다. 외국인선수는 돈을 받고 고용되는 사전적 의미의 ‘용병’이다. 부진하면 가차없이 짐을 싸야하는 것이 용병의 운명이다. 자신의 선수생활을 끝까지 책임져 주지 않는 낯선 땅에서 재산이나 다름없는 몸을 사리지 않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클락은 시도 때도 없이 몸을 사리지 않는 허슬플레이를 펼치며 지켜보는 팬들로 하여금 큰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클락은 허슬플레이에 대해 “야구는 순간의 싸움이다. 순간의 차이에서 승부가 갈릴 수 있기 때문에 작은 부분이라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워낙 몸을 사리지 않는 스타일이라 주위에서 걱정이 많다는 말에는 “다들 걱정하지만 나만의 야구 스타일이자 접근 방식이다.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몸을 내던진다”고 답했다. 어쨌든 클락은 선수생활을 내내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 마이너리그 10시즌 평균 121경기에 출장할 정도로 내구성이 좋다. 장종훈 타격코치는 “워낙 성격이 좋다. 무엇보다 노력하는 자세가 마음에 든다. 저런 외국인선수는 처음 본다”고 칭찬했다. 김태균도 “클락 덕분에 타점이 더 많아졌다”고 웃었다. 클락은 올 시즌 경기당 평균 1.03득점을 기록하고 있다. 도루뿐만 아니라 한 베이스씩 더 전진하는 적극적인 주루플레이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산술적으로 클락은 올 시즌 128득점이 가능하다. 역대 한국프로야구 한 시즌 최다득점은 1999년 삼성 이승엽이 기록한 128득점. 당시 페넌트레이스가 132경기인 반면 지금은 126경기다. 보이지 않게 역사에 도전하고 있는 클락이다. 물론 그의 유니폼은 언제나 흙으로 더럽혀있다. 자신조차 말릴 수 없는 허슬플레이로 중무장한 클락에게 시계 멈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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