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토마스에게 정말 미안했다.”
한화 신인 포수 이희근(23)에게 지난 3일을 기사회생의 밤이었다. 이날 두산과의 대전 홈경기에 이희근은 8번 타자 겸 포수로 선발출장했다. 지난달 22일 목동 우리 히어로즈전 이후 무려 11일·9경기만의 출장이었다. 한화 코칭스태프는 체력적으로 부친 이희근에게 쉬어가는 타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때마침 주전 신경현이 공수양면에서 상대팀의 신경질을 돋구는 맹활약으로 이희근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그리고 이날 경기에서는 오랜만에 바통터치했다.
그러나 시작부터 좋지 않았다. 1회초 무사 1·3루에서 3번 김현수를 타격방해로 출루시키며 만루 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다. 주자들이 뛰는 것을 의식해 포수 미트가 김현수의 방망이를 건드렸다. 다행히 베테랑 정민철이 병살타를 유도하며 1실점으로 실점을 최소화했지만 불안했다. 1·2회초 각각 이종욱과 오재원에게 도루를 허용하며 우왕좌왕했다. 하지만 타격에서 4타수 2안타로 멀티히트를 터뜨리며 경기 초반 부진을 만회하는 듯했다. 특히 5회부터 구원등판한 구대성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3이닝 퍼펙트를 만들어냈다. 이희근은 “구대성 선배의 제구가 완벽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6-5로 1점차 살얼음 리드를 지키던 9회초가 고비였다. 호흡이 잘맞는 마무리투수 브래드 토마스가 마운드에 올랐지만 첫 타자 유재웅을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내보냈다. 후속 오재원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한숨돌리는가 싶었지만 대주자로 출장한 김재호가 도루를 시도했다. 이희근은 급한 마음에 송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어설프게 던진 공은 원바운드로 날아갔고 외야까지 이어지는 사이 김재호가 3루까지 내달렸다.
1사 3루. 1점차 상황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뼈아픈 실수였다. 1회에 이어 9회에도 뼈아픈 실책을 기록하는 순간이었다. 신인 포수에게는 가혹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화 코칭스태프는 벤치의 신경현을 긴급출장시키는 대신 이희근을 그대로 홈플레이트에 앉혀두었다. 자칫 역적이 될 수도 있는 위기에서 이희근은 집중력을 발휘했다. 1사 3루에서 절묘한 볼 배합으로 채상병과 이대수를 연속해 삼진으로 잡아내 위기를 탈출했다.
이희근은 “너무 오랜만에 경기에 출장해서 그런지 정신이 없었다. 마치 첫 경기를 치르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희근은 “토마스에게 정말 미안했다. 제대로 송구를 못해서 위기를 초래했다. 하지만 위기에서 커브가 기가 막히게 떨어졌다. 상대 타자들이 분명히 직구만을 노릴 것으로 판단해 결정구로 커브를 요구한 것이 주효한 것 같다”며 상기된 얼굴에서 연신 흘러나오는 땀을 닦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실 포수 입장에서 결코 쉬운 볼 배합은 아니었다. 채상병과 이대수 모두 삼진으로 처리하기 직전 토마스의 공들이 모두 변화구가 손에서 빠져 엉뚱한 곳으로 제구돼 하마터면 폭투로 동점을 허용할 뻔했다. 하지만 이희근이 거의 몸을 내던져 공을 잡아냈고 바로 다음 공으로 또 다시 변화구를 요구, 상대 타자의 허를 찌르는 대담한 볼 배합으로 팀 승리를 지켜냈다. 스스로 위기를 자초했지만 스스로 위기를 극복해냈다.
이희근은 “경기 후 토마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며 웃어보였다. 하지만 토마스는 “이희근이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준다”며 공을 돌렸다. 신경현은 “(이)희근이가 어려서 토마스가 좋아하는 것이다. 나한테는 그러지 못한다”며 웃었다. 이희근은 그렇게 한 단계 더 성장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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