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족의 비애인가. 통산 124승을 거두고 은퇴를 선언한 KIA 정민태(38)가 은퇴식 없이 조용하게 무대 뒤로 사라지게 됐다. KIA측은 아직 최종결정을 내리지 않았지만 정민태의 은퇴식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작 정민태도 별다른 의지가 없어 보인다. 정민태는 지난 3월 우리 히어로즈와의 계약과정에서 갈등을 일으켜 자유계약선수로 방출된 뒤 KIA 유니폼을 입었다. 3개월 남짓 KIA 유니폼을 입으면서 1군에서 겨우 한 경기, 2군에서는 6경기 등판에 그쳤다. 본인 뿐만 아니라 구단도 선뜻 은퇴식을 열어주기 애매하다. 정민태는 현대맨이다. 현대와 함께 자신의 전성기를 보냈다. 지난 96년 태평양을 인수한 현대 유니콘스의 출범과 함께 정민태도 에이스로 급성장했다. 92년 입단해 4년 동안 고작 17승에 그쳤지만 현대에서 10년 동안 107승을 따냈다. 다승왕과 골든글러브 각각 3회, 한국시리즈 MVP 2회 등 모두 현대에서 꽃을 피웠다. 그러나 현대는 모그룹이 흔들리면서 운영난에 직면했고 결국 지난 해를 끝으로 12년 만에 폐단이 됐다. 선수들과 프런트들은 폐족이 됐다. 폐족이라는 말은 큰 죄를 지어 더 이상 벼슬을 할 수 없는 집안을 가르킨다. 야구단의 선수들에게 이 말을 들이대기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현대 선수들이 이후 겪은 수모를 생각하면 폐족이나 다름없다. 정민태는 8구단으로 창단한 히어로즈의 삭감 칼날에 맞서다 스스로 팀을 떠났다. 정민태는 만일 현대가 역사속으로 사라지지 않았다면 누구보다도 화려한 은퇴식을 했을 것이다. 현대의 적자이자 V4를 일궈낸 최강현대의 일등공신이기 때문에 머지 않아 차기 감독으로 물망에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야구인생을 쏟아부었던 현대라는 간판이 사라지면서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다승 역대 7위로 한 시대를 풍미한 정민태는 폐족의 비애를 곱씹으며 쓸쓸하게 그라운드를 떠나게 됐다. 그의 미래가 언제, 어디에서 다시 펼쳐질 지는 아직 모른다. sunny@osen.co.kr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