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AZING' 한화의 놀라운 전반기
OSEN 기자
발행 2008.08.04 11: 04

[OSEN=이상학 객원기자] 한화 김인식 감독은 엄살이 심하다. 그러나 올해는 엄살이 아니었다. 김 감독은 개막을 앞두고 “작년보다 전력이 많이 떨어진다. 선수들도 아프다고 한다. 꼴찌 후보”라며 자조섞인 말을 내뱉었다. 전반기를 마친 김 감독은 “꾸역구역 해온거야”라고 말했다. 시즌 전 최하위 후보로도 거론됐던 한화는 전반기를 마친 현재 2위 두산과 승차없이 승률만 5리가 뒤진 3위에 올라있다. 한화의 전반기를 축약하자면 ‘어메이징’이라 할 수 있다.
① 김인식의 힘
시즌 전 김인식 감독의 엄살은 창단 첫 개막 5연패로 현실화됐다. 롯데에게 개막 2연전을 완패했고, 우리 히어로즈와의 원정 3연전에서 싹쓸이로 패배했다. 지금은 ‘프로야구 흥행의 키를 쥔 롯데와 히어로즈를 위해 개막 5연패를 당해줬다’며 즐겁게 떠올리고 있지만 그 때 당시만 하더라도 심각한 상황이었다. 김인식 감독의 안 그래도 빨간 볼은 더욱 붉게 상기됐고 선수들도 패배의식에 젖어드는 듯했다. 그만큼 부담이 심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특유의 뚝심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김 감독은 “연패를 당할 때에는 정말 화가 났다. 하지만 어려울 때 선수들 앞에서 화를 내거나 질책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개막 5연패 후 김 감독은 선수단을 집합시켰다. 그 자리에서 김 감독은 한 선수가 돌린 캔커피의 양이 작다는 농담을 던진 후 해산시켰다. 무겁게 가라앉은 팀 분위기를 일신시키기 위한 노감독의 필살책이었다. 이후 개막 5연패에서 벗어난 뒤 4번 타자 김태균이 복귀한 한화는 그 길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베테랑 이영우는 “감독님이 워낙 팀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어주시는 것이 큰 힘이다. 지금껏 모신 감독님들 중 가장 편하다”고 말했다. 대놓고 질책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뒤끝이 없어 선수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추승우는 “감독님이 바보 같은 놈이라고 질책해도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인식 감독은 결코 조급해 하지 않았다. 당장 1승이 급한 상황에서는 감독의 작전이 많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김 감독의 시즌 첫 희생번트 지시는 연패에서 벗어나 상승일로로 접어든 4월15일 청주 히어로즈전에서 나왔다. 시즌 15번째 경기였다. 게다가 외국인선수들도 믿고 기다렸다. 브래드 토마스와 덕 클락은 시범경기와 시즌 초반에만 하더라도 불안요소가 많았지만 김 감독은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줬다. 김 감독의 유머와 여유를 닮은 한화 선수들도 느긋하게 외국인선수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기다렸다. 그 결과가 올 시즌 최고 마무리 토마스와 공수주 삼박자 슈퍼맨 클락이었다. 그 중심에 바로 김인식 감독이 있었다.
② 클린업 쿼텟
올 시즌 한화의 가장 큰 힘은 역시 다이너마이트 타선이었다. 빙그레 시절 ‘원조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심장이었던 장종훈 타격코치는 “그때보다 지금이 더 낫다”고 말할 정도로 파괴력이 대단하다. 가공할 만한 홈런 대포도 대단하지만 한 번에 휘몰아치는 응집력은 구단 역사상 최고가 아니냐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웬만하면 소속팀 칭찬을 하지 않는 김인식 감독조차도 “타선은 그래도 괜찮다”며 만족을 표할 정도다. 하지만 한화의 타선은 그냥 괜찮은 수준이 아니다. 타이론 우즈-김동주-심정수로 이어진 과거 두산 시절부터 강타선을 이끈 김 감독은 “그때보다 더 좋은 것 같다”고 인정했다.
김 감독이 두산 시절보다도 올해 한화 타선을 더 강하게 치는 이유는 대포가 하나 더 있다는 점 때문이다. 클락-김태균-이범호로 이어지는 클린업 트리오에다 공포의 6번 타자로 급성장한 김태완이 든든히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클린업 쿼텟’의 등장이었다. 클락은 부상 이후 급격한 슬럼프에 빠졌지만 클린업 쿼텟의 선두주자로 자주 출루하며 빠른 발로 86차례나 홈베이스를 밟았다. 지난해까지는 별명만 많은 선수였던 김태균은 부상 중에도 별명수만큼 압도적인 26홈런·83타점을 몰아쳤다. 이범호는 야구의 꽃이라는 홈런은 클린업 쿼텟 가운데 가장 적었지만, 67타점으로 그 자신이 곧 꽃임을 입증했다. 김태완은 당당히 22홈런을 작렬시키며 자신을 부른 팬들을 아주 뜨겁게 만들었다.
클린업 쿼텟의 힘은 어마어마했다. 한화는 팀 타율(0.263)·출루율(0.343) 모두 전체 6위에 그쳤지만 102경기에서 102홈런을 터뜨리며 이 부문에서 압도적인 1위에 올랐으며 자연스럽게 팀 장타율(0.412)에서도 1위를 차지, 리그 전체에서 가장 많은 511득점을 기록했다. 클린업 쿼텟이 타율 2할9푼1리·81홈런·276타점을 합작했다. 물론 클린업 쿼텟이 한화의 전부는 아니다. 굴러들어온 복덩이 추승우는 김인식 감독의 말처럼 75경기 정도 굉장한 활약을 보였다. 특히 클락과 함께 뛰는 야구를 주도하며 굼벵이 군단인 한화에 새로운 공격 옵션을 추가시켰다. 한상훈-신경현-김민재 등 시즌 초반 부진했던 하위타순 타자들도 후반부터 바짝 힘을 내며 제2의 클린업 트리오를 형성했다.
③ 역전의 명수
올 시즌 한화가 재미있는 것은 폭죽처럼 펑펑 터지는 홈런과 김태균의 몸개그 때문만은 아니다. 자고로 가장 재미있는 야구는 마무리투수들이 괴로울 때다. 마무리투수들에게 한화는 저승사자나 다름없었다. 한화는 올 시즌 리그에서 가장 많은 24차례 역전승을 기록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건 7회 이후 역전승이 13차례나 있었고, 이 가운데 무려 8차례가 9회 이후 승부를 뒤집었다는 사실이다. 가히 역전의 명수라 할 만하다. 특히 김태균은 3차례나 끝내기 적시타를 작렬시키며 확실한 해결사로 자리매김했다. 선수들은 언제든 뒤집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7회 이후 가장 많은 171득점이 바로 자신감의 원천이다.
하지만 한화가 역전의 명수로 자리매김한 데에는 불펜 투수들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경기 초반 끌려다녀도 불펜 투수들이 최소한의 점수로 막아주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구대성·윤규진·마정길·안영명·최영필·김혁민 그리고 소방수 토마스로 이어지는 불펜진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막강한 힘을 자랑하고 있다. 무릎부상을 털고 복귀한 베테랑 구대성은 여전히 자주 등판해 많이 던지고 있지만 과거에 비하면 아주 가벼운 짐을 떠안고 있을 뿐이다. 이와 함께 안정적인 수비도 큰 힘이다. 실책이 50개로 가장 적은 팀이 한화다. 실책으로 결승점을 내준 경기가 2경기로 역시 가장 적다. 한상훈-김민재의 키스톤 콤비와 핫코너 이범호 그리고 외야의 클락으로 이어지는 견고한 수비라인으로 1점을 막는 야구에서도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한화가 역전의 명수가 된 데에는 불안한 선발진이 한 몫 단단히 하고 있다. ‘에이스’ 류현진이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두며 기본은 해내고 있지만 예년만 못하다는 평이 많다. 올 시즌 유독 부침이 많았다. 그 와중에도 류현진밖에 믿을 투수가 없었던 것이 한화 선발진의 현실이었다. 송진우와 정민철은 한 차례도 선발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았지만 전성기와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유원상과 양훈은 좀처럼 늘지 않는 제구력과 느린 성장세로 고전했다. 문동환은 이제 잊혀진 에이스가 되어가고 있다. 김인식 감독도 “투수가 없어”라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프로야구 역사상 온전히 타선의 힘으로만 대권을 누린 팀은 거의 없었다. 2001년 두산이 예외라 할 만하다. 당시 사령탑도 김인식 감독이었다. 하지만 성적 자체를 떠나 한화 야구는 볼 맛 나고 재미가 있다. 이범호는 “전반기 동안 정말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가 즐거우면 보는 팬들도 당연히 즐거울 수밖에 없다. 그게 전반기 한화 야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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