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주-박진만, 아픔을 딛고 이겨낸 투혼
OSEN 기자
발행 2008.08.24 08: 33

[OSEN=베이징, 올림픽취재반]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최고의 스타 이승엽 그리고 병역혜택을 받고 투혼을 발휘한 14명의 젊은 선수들에게 향했다. 하지만 이들이 없었더라면 금메달 또한 없었다. 이들을 빼놓고는 결코 한국야구의 사상 첫 금메달을 설명할 수 없다. ‘대표팀 터줏대감’ 김동주(32·두산)와 박진만(32·삼성)은 아픔을 딛고 투혼을 발휘하며 더욱 아름다운 금빛 물결을 연출해냈다. 김동주는 대표팀 합류를 놓고 고민을 거듭했다. 아내가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김동주 본인도 팔꿈치가 좋지 않은 상태였다. 지난 3월 대만 타이중에서 열린 올림픽 최종예선에서도 김동주는 대표팀에 합류했으나 대회 중 어머니의 건강악화로 중도 귀국한 바 있다. 하지만 김동주는 또 다시 나라의 부름을 거절하지 않았다. 진통제를 맞아가며 대회를 준비했다. 대표팀 개근상이 있다면 당연히 그에게 주어져야 할 정도로 국제대회는 그에게 숙명이었다. 김동주는 올림픽 6경기에서 17타수 5안타로 타율 2할9푼4리를 기록했다. 타점은 하나도 없었지만 4득점 4볼넷을 곁들였다. 예선에서 장딴지 부상을 당하며 3경기 연속 결장한 김동주였지만 제대로 걷지 못하는 가운데에도 준결승 일본전·결승 쿠바전에서 5번 타자 겸 3루수로 자리를 지켰다. 특히 예선 일본전에서 9회 결승 득점 포함 3타수 2안타 2득점 1볼넷으로 활약하더니 준결승 일본전에서도 4타수 2안타 1득점으로 일본 킬러다운 명성을 재확인시켰다. 박진만은 올 시즌 데뷔 후 최악의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올 초 전지훈련 중 당한 어깨 부상이 재발하는 바람에 정상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하지 못했다. 결혼 4년 만에 얻은 첫 아들의 몸이 안 좋아 심적으로도 힘들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지난 3월 최종예선에 참가를 강행하는 결단을 내렸다. 김경문 대표팀 감독이 부진했던 박진만을 데려간 데에는 이 같은 희생정신을 높이 샀기 때문. 박진만도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이후 모든 국제대회에 빠지지 않고 참가한 개근생이다. 박진만은 부상 후유증으로 큰 활약을 보이지는 못했다. 예선 첫 경기였던 미국전에서 어이없는 송구 실책으로 국제대회 무실점이 36경기에서 마감되기도 했다. 타격에서도 15타수 1안타로 타율이 1할도 되지 않는 6푼7리에 그쳤다. 유일한 안타도 결승 쿠바전 마지막 타석에서 나왔다. 하지만 7회초 2사 후 나온 박진만의 안타 뒤 이종욱의 볼넷, 이용규의 적시 2루타가 터져 한국은 3점째를 얻으며 승부에 쐐기를 박을 수 있었다. 수비에서도 9회말 1사 만루에서 침착하게 병살타를 연결시켜 금메달 종지부를 찍었다. 김동주는 지난 1997년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를 시작으로 이번 베이징 올림픽까지 무려 10번째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출장경기수만 무려 45경기나 된다. 지난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어깨 부상을 당한 후 이렇다 할 보상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태극마크를 숙명처럼 심장에 새겼다.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부터 국가대표가 된 박진만도 베이징 올림픽이 8번째 국제대회로 출장경기수만 해도 43경기. 부상과 개인사를 딛고 투혼을 발휘한 김동주와 박진만에게도 뜨거운 박수 갈채가 필요하다. ▲ '무패의 한국야구…결속력의 금메달' 日언론. ▲ 하일성 총장, "강민호 퇴장이 흐름 바꿔줬다". ▲ 'Monster of Monster' 류현진, 한미일 최고 괴물. ▲ 박찬호 "모두가 한국 야구를 칭찬한다". ▲ 올림픽 금메달, 추신수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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