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정말 큰 일이다. 2위는 커녕 이제는 4강 진출도 안심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전반기를 2위 두산에 승차없이 3위로 마친 한화의 후반기 시작이 암울하다. 대전 홈 3연전에서 롯데에게 싹쓸이를 당했다. 3위를 유지하며 2위 두산과 1.0경기차를 유지하고 있으나 오히려 4위 롯데에 1.0경기, 5위 삼성에 1.5경기차로 바짝 쫓기고 있다. 거의 확실시됐던 4년 연속 4강 진입마저 불투명해진 것이다. 김인식 감독의 안 그래도 빨간 볼은 더욱 붉게 상기되고 있다. 와르르 무너진 마운드가 가장 큰 붕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김인식 감독은 “투수가 너무 없다”며 한탄하고 있다. 한화의 팀 방어율은 리그 전체 7위(4.62)다.
무너진 마운드
지난 26~28일 후반기 첫 3연전. 롯데 타선은 3연전 동안 116타수 40안타로 타율 3할4푼5리와 함께 6홈런을 터뜨리며 29득점을 기록했다. 경기당 평균 9.7득점으로 무려 두 자릿수에 육박했다.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한화 마운드는 3경기에서 평균 9.7실점을 했다. 29실점 중 28점이 자책점으로 방어율은 9.33. 볼넷도 16개나 허용해 이닝당 출루허용률은 2점대(2.07)였고 피안타율도 3할대(0.345)였다. 선발투수들이 3경기 연속 5회 이전 조기강판되는 등 매경기 6명씩 투수를 투입하는 물량작전을 펼쳤으나 모두 허사였다. 손광민과 이승화는 나란히 시즌 첫 홈런을 한화를 상대로 터뜨렸으며 카림 가르시아는 홈런과 고의4구를 2개씩 기록했다. 한화의 다이너마이트는 엉뚱하게도 방망이가 아닌 마운드에서 폭발해버렸다.
김인식 감독은 “상대 타자들이 잘 쳤다기보다는 우리 투수들이 못 던진 것이다”며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 3연전에서 한화 는 모두 10명의 투수가 투입됐는데 실점하지 않은 투수는 김혁민과 윤규진이 유이했고, 그것도 투구이닝은 각각 1⅓이닝·1이닝밖에 되지 않았다. 정민철-송진우의 노장 원투펀치에 이어 젊은 피 안영명까지 고비를 넘기지 못했고 3연전 내내 나온 구대성·마정길·유원상은 3일 내내 똑같은 패전을 반복하며 뭇매를 얻어맞았다. 마무리투수 브래드 토마스는 얼굴도 보이지 않아 잊어먹을 정도. 김 감독은 “올림픽 후유증이라고 볼 수 있지만 결국 핑계다. 피처 때문에 정말 큰 일이다”고 말했다. 정녕 류현진밖에 없다.
무엇이 문제인가
아주 오랜 시간 한화 마운드를 지킨 노장 투수들은 힘에 부치는 기색이 역력하다. 송진우·정민철·구대성 모두 후반기에 실망스러운 피칭을 보이고 말았다. 올림픽 휴식기를 가졌지만 전반적으로 볼이 높아 장타와 연타를 맞으며 순식간에 무너졌다. 전혀 베테랑답지 못했다. 그러나 정민철-송진우를 후반기 원투펀치로 기용하고, 구대성을 불펜의 핵심으로 쓸 수밖에 없는 것이 한화 마운드의 차가운 현실이다. 문제는 이들의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것. 그만큼 젊은 투수들의 성장세가 더디다. 김혁민을 제외하면 뚜렷하게 성장한 투수가 보이지 않는다. 볼 스피드는 점점 더 하락하는데 제구력마저 불안해졌다. 28일 경기에서 안영명의 직구 최고 구속은 140km였고, 사사구는 5개를 내줬다. 3연전에서 한화 투수들의 사사구는 무려 19개였다. 올 시즌 사사구 부문 전체 1위도 한화(274개)다.
현역 시절 사상 최고의 컨트롤 아티스트로 명성을 떨친 한화 이상군 투수코치는 “투수에게는 볼 스피드가 우선 필요하다. 하지만 투구 밸런스가 안 잡혀 제구가 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김혁민은 볼 스피드를 조금 낮추는 대신 밸런스를 잡아 제구가 안정되며 한 단계 성장했다. 그러나 나머지 한화 투수들의 밸런스, 제구력은 기대치를 크게 밑돌고 있는 형편이다. 설상가상으로 퀵 모션까지 느려 수시로 2루·3루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 당장 롯데와의 3연전에서 무려 9개의 도루를 허용했다. 포수 신경현에게 화살이 가고 있지만 도루저지는 투수가 타이밍을 뺏기지 않는 게 관건이다. 이는 고질적인 문제라 쉽게 고쳐지지도 않는다.
세대교체 언제쯤
한화 마운드의 본질적인 문제는 결국 젊은 투수들이 치고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발투수 가운데 제 몫을 해내고 있는 젊은 피는 류현진밖에 없다. 그 류현진도 올 시즌에는 지난 2년과 비교할 때 부진하다는 인상을 줄 정도로 완벽하지 않다. 제3선발로 기대를 모았던 유원상은 ‘경기시간 지연의 달인’이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붙었고 양훈은 이제 1군보다 2군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김 감독이 야심차게 준비한 안영명의 올 시즌 첫 선발등판도 일단 실패로 돌아갔다. 선발투수로 시즌을 시작했던 윤규진은 김 감독의 결정에 따라 시즌 초반 불안했던 불펜을 메우려다 이제는 아예 붙박이 구원투수로 고정됐다.
김 감독은 젊은 투수들이 최대한 많이 던지면서 언젠가 스스로 깨우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언제가 될지 모른다는 점이 답답하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다. 김 감독은 “젊은 투수들은 많이 던지면 어느날 갑자기 알아서 깨우치게 된다. 그런데 유원상은 그렇게 던지고 또 맞았으면 나아질 기미를 보여야 하는데 아직도 안 보인다. 내년에야 잘 던지려나”며 쓴웃음을 지었다. 김 감독으로서는 “어떻게 이 투수진으로 지금까지 시즌을 치러왔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딱 맞다. 그러나 한화의 이 투수진은 몇 년째 그대로다. 아무리 타선이 막강해도 마운드가 약하면 한계점이 뚜렷할 수밖에 없다. 타자뿐만 아니라 투수도 적극 육성해야 한다. 한화는 지난 2차 지명에서 선수 6명 중 5명을 투수로 뽑았다. 그러나 당장 올 시즌을 어떻게 마치느냐가 한화의 당면 과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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