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무제한 연장전의 끝은 어디일까
OSEN 기자
발행 2008.09.04 09: 09

올 시즌부터 ‘무제한 연장전’이 도입될 때 한 심판원은 이런 말을 했다. “아마 연장 20회도 나올 것입니다. 연장 12회 넘어가면 타자들이 지쳐서 공을 치지를 못해요”라며 연장전 신기록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비록 후반기 막판에 와서 나왔지만 지난 3일 잠실구장 한화-두산전서 프로야구 27년 역사상 최초의 연장 16회를 돌파해 연장 18회까지 가는 혈투가 펼쳐졌다. 두산이 끝내기 밀어내기로 1-0 신승을 거뒀으나 양팀 모두 출혈이 컸다. 올 시즌 2번의 연장 15회를 포함해 총 14번의 연장 15회 경기가 이전 최다 이닝 기록이었지만 이날 연장 15회로 사상 최다 이닝 신기록이 수립된 것이다.
더불어 경기 시간도 5시간 51분으로 이전 최장 기록인 5시간 45분을 뛰어넘었다. 저녁 6시31분에 시작된 경기가 자정을 넘겨 밤 12시 22분에야 끝났다. 프로야구 역대 및 올 시즌 2번째 ‘1박2일’ 경기였다.
심판원의 예상처럼 이날 연장전은 피로가 쌓인 투수가 무너지는 바람에 승부가 결정 났다. 연장 18회말 두산 공격 때 2사 후 한화 7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우완 안영명이 4연속 볼넷으로 결승점을 헌납하면서 마침표가 찍어졌다. 연장 13회에 등판한 안영명은 17회까지는 씩씩하게 잘 던졌으나 18회 2사후 피로가 몰려온 탓인지 제구력이 흔들리면서 이성렬 볼넷, 이종욱 고의사구, 고영민 볼넷으로 만루 위기를 자초하더니 김현수마저 끝내기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 싱겁게 승부가 끝나고 말았다.
안타 한 개 없이 볼넷 4개로 경기가 결정 났다. 한마디로 타자들이 잘 쳐서 이긴 것이 아니라 투수가 제풀에 지쳐 넘어진 셈이다. 한화 타자들은 연장 12회부터 헛방망이질을 연속 해대며 안타를 만들지 못하는 등 양팀 타자 모두 스윙이 무뎌졌다. 삼진으로 물러나기 일쑤였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1920년 보스턴-브루클린의 26이닝, 일본은 1942년 다이요-나고야의 28이닝이 최다 이닝 기록으로 왜 이렇게 경기가 길어졌는 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투수들보다는 타자들이 지쳐서 쉽사리 승부가 나지 않는 것이다. 투수가 지쳐야만 결국 경기가 끝이 나는 셈이다.
경기장의 선수들은 지쳐서 힘든 기색이 역력했지만 역사의 현장을 지켜본 팬들은 집에 갈 생각도 없이 선수들을 응원하며 경기를 즐겼다. 1-0으로 두산이 이겼지만 양팀 모두 출혈이 큰 경기로 후유증을 걱정해야할 판이다. 그러나 이날 경기를 본 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됐다.
연장 12회를 지나면 무기력해지는 타자들.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18회를 넘어 20회를 넘어가는 연장혈투가 벌어질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sun@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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