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승' 김성근, "야구 때문에 신장암 극복했다"
OSEN 기자
발행 2008.09.04 20: 01

"내 생명과 바꿀 수 있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난 3일 프로 사상 두 번째로 1000승을 달성한 SK 김성근 감독이 밝힌 소감이다. 당시만 해도 그 만큼 소중하다는 의미라고 어렴풋이 예상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4일 문학 히어로즈전을 앞두고 10년 동안 밝히지 않았던 '비밀' 한 가지를 털어놓았다. 왜 1000승이 생명과 바꿀 만한 가치를 지녔는지 알 수 있게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김 감독은 1000승을 쌓아오는데 있어 고비는 없었냐는 질문에 한참 뜸을 들인 뒤 "그동안 몇 명에게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야구인들은 모를 것"이라며 "1998년 쌍방울 시절 초기 신장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김 감독은 "소변을 보는데 통증과 함께 피가 나오더라. 처음에는 전주 병원에서 요도염이라며 약을 지어줬다. 큰 병원에서도 처음에는 방광염이라 하더니 이상하다며 CT와 MRI까지 찍었다"며 "결국 신장암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접한 김 감독은 겁이 덜컥 났다. 아무리 간단한 수술로 제거가 가능하다지만 생명을 앗아가는 '암'이 아니던가. 김 감독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시즌이 한창이던 7월이었기에 김 감독으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자칫 이 소식이 알려지면 감독 생활을 계속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구단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건강을 지닌 감독에게 구단을 책임지는 사령탑 역할을 계속 맡길 리도 만무했다. 김 감독은 아직 초기라는 말에 수술을 미룬 뒤 8월에야 수술을 받았다. 아직 전이가 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만약을 위해 오른쪽 신장을 모두 드러내야 했다. 지금도 김 감독의 가운데와 오른쪽 배 부위에는 서슬퍼른 수술자국이 남아 있다. 대수술이었다. 그러나 주위 사람에게는 간단한 결석을 빼내는 수술이라고 안심시켰다. 당시 쌍방울 소속으로 일했던 현재 SK 관계자들 누구도 알지 못했다. 당시 쌍방울 운영팀에서 일했던 김찬무 SK 마케팅 팀장은 "어렴풋이 서울의 한 병원에서 간단한 수술을 하신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누구도 그런 대수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쌍방울 홍보팀 출신 박철호 SK 홍보팀장 역시 "나도 그 이야기는 오늘 처음 들었다"며 "절대 약한 모습을 안보이시는 분이니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고 이해된다"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박 팀장의 말처럼 김 감독은 수술 다음날 병상에서 일어나 걸었고 곧바로 경기장에 나와 평소와 같은 생활을 했다. 김 감독은 "왜 안아프겠나. 죽을 거 같았다. 병원에서는 무조건 쉬라고 했다. 그러니 선수들에게 노크를 쳐줄 때도 생명의 위협을 느껴졌다. 하지만 야구인이니까 야구장에서 쓰러지는 편이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10년전 자신의 심정을 더듬었다. 또 "아파도 정면으로 돌파해왔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다"며 "내가 약하다는 모습은 절대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수술 후 잠깐이지만 병원에 있을 때 많은 것을 느꼈다. 김 감독은 "뜻이 있으면 하늘도 돕는 것 같다. 수술실로 들어갈 때 간호사가 '감독님 운동장으로 돌아가셔야죠' 그래서 나도 '운동장으로 돌아가야죠'라고 답했다. 결국 그 약속이 나를 운동장으로 인도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못볼 것도 봤다. "그 때 세상이 무섭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꼈다. 병문안차 나를 찾아왔던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더 이상 감독생활 못하겠구나'였다. 모든 사람들이 매정하게 돌아서더라. 그래서 더욱 경기장에 나가서 서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내가 감독생활을 그만두고 나서 '감독님'에서 '님'자를 빼고 부르는 후배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도 내 후배들이니 내가 그 사람을 욕해봤자 결국 내가 욕듣는거나 마찬가지다. 아무말 하지 않았다. 언젠가 이해하겠지 하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후 꼬박꼬박 정기검사를 받아오고 있는 김 감독은 지난 1일 병원에서 조직 검사를 받았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러면서 "이제 내게 있어 하루하루가 얼마나 귀중한지 알 것이다. 1000승은 그저 얻어질지 모르지만 내겐 생명과 야구를 바꿀 수 있는 의미가 있다"고 잠시 말을 끊은 뒤 "팀을 이끄는 지도자로서 현장에 있는 원로 감독으로서 의무와 사명감이 크다. 야구가 없었으면 벌써 쓰러졌을지도 모른다"고 말해 사투 끝에 얻은 값진 1000승의 의미를 되새겼다. 김 감독은 "도망가면 안된다. 항상 공격적이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며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돈은 들겠지만 하루라도 빨리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면서 주위사람들의 건강에도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김 감독이 지금까지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비어있는 오른쪽 신장 자리를 야구로 채워놓았기에 가능했지 않았을까. letmeout@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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